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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을 May 17. 2021

단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단 하루만 살 수 있다면?

정확히 왜 이 가정법을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정확지 않다. 다만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고민해오던 절박함이라는 화두 때문인 것만은 확실하다.

    '만일 단 하루만 산다면 그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참으로 적절한 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그 무엇보다 적절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누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시대의 지성이나 대문호가 아니라면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주제이다.

반면 '단 하루만 산다면 그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바꾸어 질문한다면 누구라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루라는 24시간으로 범위가 최소화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목표에 대한 중요성은 목표 관리에  있어서 이제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아무리 큰 목표라도 잘게 쪼개고 또 쪼개어 작게 만들면 쉽게 달성하여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자기 효능감이 커지고 점차 큰 목표 달성에 접근하게 된다는 이론으로 실제 매우 실효성이 높다. 이러한 작게 쪼개는 방식을 방식을 결국 우리 인생을 단 하루로 좁혀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이 효율적이라 여기며 자꾸 곱씹게 되는 것은 결국 오늘이라는 하루를 허투루 남발하면서 더 멋진 내일을 꿈꾸는 나 자신에 대한 역설 때문이다. 오늘 해야 할 것 또는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일 이후로 미루며 절박함을 논하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반성 때문이다.

내일이 담보되어 있다고 여기는 순간 절박함은 사라진다. 오늘 단 하루만 있다고 여길 때 그것을 비로소 겨우 실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내일 하면 되지 이 말은 달성하지 않아도 되는 절박하지 않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혹자는 어떻게 그 길고 긴 인생을 단 하루로 축약하여 비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하루 하루라는 그 짧은 시간이  없다면 인생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또한 이제 꾸준함의 전제는 절박함이 되어야 하며 절박함이란 오늘 단 하루만 산다는 그라운드룰에 따라야 그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전제가 확고하다면 이제 비로소 그 하루에 대한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계획 없는 실행은 나침반 없이 항해에 나서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럼 하루라는 인생  계획은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미지 출처  https://kb.supremainc.com/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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