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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 Apr 14. 2016

중국의 옷을 입은 셰익스피어

연극 리차드 3세


 올해는 영국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맞춰 국립극단은 이미 1월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겨울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다음으로 찾아 온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좀 더 특별하다. 바로 완연한 중국의 색채를 가진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이다. 우리나라의 국립극단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화극원이 연극 <리차드 3세>를 가지고 내한해 2016년 4월 1일부터 4월 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의 무대에 올랐다.    





 무대 위엔 좌우 대칭으로 중국식의 기둥이 있다. 뒤편에는 화선지가 있고 각각의 화선지에는 Kill(살인),Benefit(이익),Power(권력),Curse (저주),Conspiracy(음모), Lie(거짓말), Appetite(욕망), Having(소유) ,Nightmare (악몽),War (전쟁), Pretense(가식), Destroy (파괴) 등의 글자들이 한자와 함께 쓰여져 있다. 또한 무대 중앙에는 왕좌가 놓여있고 상수에는 타악기가 그리고 가장 중앙에는 의자 두 개 위에 놓여진 빨간 현판이 하나 있다. 그 현판의 정중앙에는 한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문인 리차드 3세라는 글자를 적어놓았다. 이 현판은 극의 시작과 동시에 치워지지만 중국식으로 풀어낸 셰익스피어라는 작품의 의미를 잘 담고 있는 듯 했다.  

중국이라는 옷을 입은 셰익스피어

  <리차드 3세>의 연출가 왕시아오잉은 가장 중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극에 중국의 전통 연극에서 사용되는 요소를 넣어 중국느낌이 살아있게 각색했다. 리처드 3세의 전체적인 플롯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연출적인 부분만 말이다. 첫 앤 부인의 등장에서는 관객들이 아 경극을 하는구나 라고 느끼게 앤 부인 홀로 노래를 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적인 액션과 대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관객들이 중국스타일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그 누구보다 중국적이게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색 때문에 원작이 훼손되었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공연에서는 리차드 3세가 자신의 형인 클라렌스의 공작과 조카인 왕세자를 죽이기 위해 자객 둘을 고용한다. 자객 캐릭터들은 연극 속에서 그 누구보다 중국의 희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이었다. 자객들은 얼굴엔 흰색, 검은색, 빨간색을 이용한 분장을 한 채로 등장해 쌍둥이처럼 대칭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아크로바틱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과장적이면서도 역동적이어서 마치 중국의 서커스를 연상시켰다. 후에 두 명의 자객은 한 몸에 머리가 두 개가 달린 치릴이라는 또 다른 인물로 역이 등장했는데, 이는 중국의 민간예술에 나오는 형태의 인물이다. 역시나 이 때의 등장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포인트로 작용했다.

 타악기 사용과 경극도 공연을 중국의 분위기로 이끌어준 요소다. 무대 오른편에 준비된 타악기는 중국의 리듬을 연주해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경극은 앤 부인과 웨일스 왕자역할을 맡은 장신 배우만 했다. 에드워드 왕자의 부인이었던 앤이 부군의 슬픔을 이야기할 때 경극으로 표현하는데 남편의 사망 이후 권력 구도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앤의 이야기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장치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과는 다른 모습들

 중국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하였음에도 전체적으로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준 왕시아오잉 연출가는 인간의 권력욕과 욕망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인물보다 비장애인 인물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맞다고 생각한다 했다. 이러한 이유로 연출은 주인공 글로스터 공작을 곱추, 다리를 저는 장애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잘생기고 위풍당당한 남성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야심과 욕망을 드러내는 추악해진 내면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곱추로 표현했다. 남들 앞에선 추악한 속마음을 숨기는 글로스터의 이중적인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또한 비장애인의 모습으로 인물을 표현했기 때문에 권력의 허무함이라는 메시지를 더욱 극명하게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이 극에서는 원작에선 나타나지 않는 마녀 세 명이 등장한다. 아마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를 차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녀 셋은 리처드의 야망을 부추기고 나중에는 죄의식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마녀 셋을 맡은 배우들은 극에서 마가렛 전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 그리고 앤이다. 그리고 공연 후반부에 이르러 마녀들이 실은 그녀들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권력과 야망에 희생당한 여성들의 한을 가진 목소리가 마녀가 되어 복수로 나타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개인적으로 마녀들의 등장에는 반감이 들었다. 공연 내에서 마녀들의 역할과 존재하는 모양새가 맥베스의 그것과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세 명의 마녀들이 등장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차라리 어딘가 덜 유명한 것을 차용해왔다면 모르겠으나 이 마녀들의 출처는 너무나 쉽게 떠오르는 것이었고 이들의 등장 이후 작품의 서사가 맥베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리차드의 악행들

 죽은 인물들의 죄명이 쓰여 있는 다섯 장의 흰색 화선지 위에,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한 장씩 핏물이 흐르는 연출도 눈을 사로잡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표현하는 데에 빨갛게 흐르는 피 만큼 직설적인 오브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공연은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죽을 때마다 그 인물의 죄가 적힌 화선지 위로 한 장씩 피로 물들게 했다. 이 장면들은 다음엔 누가 죽을까 호기심을 유발하기도하며 마지막 한 장이 남을 때 리차드 3세를 도운 버킹엄 공작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란 것을 예측하게 해준다. 마지막 장면인 나라를 줄테니 말을 달라고 외치는 리차드 3세의 뒤로 검은 먹물이 모든 화선지 위에 쏟아지는데 리차드가 저주받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이 밖에도 리차드의 성장하는 욕망을 점점 커져가는 그림자로 표현한 연출과 리차드가 붉은 장갑을 착용하는 모습 또한 기억에 남았다. 나는 아무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을 죽이는 것이 가장 추악하며 잔인하고 인간답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나 리차드 3세 또한 자신의 조카를 죽이면서 완벽한 왕이 되는 것과 동시에 이때부터 붉은색으로 물든 장갑을 끼지 않는가. 또한 웨일스 왕자가 쓰고 나온 말채찍 장식은 리차드 3세가 죽으면서 외친 말을 다오! 라는 대사와 묘하게 연결되기도 했다.    

 연극 <리차드 3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짧고 강렬했다. 과도한 권력욕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이 극이 주는 메시지는 영국에서도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세계적으로 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연극 <리차드 3세>가 셰익스피어의 원작 <리차드 3세>만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매력을 잘 뽑아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플롯은 맥베스와 너무 비슷해져버렸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꼽히는 장애인 리차드 3세가 가지고 있는 외양과 그 외양에서 비롯된 그의 악한 내면에 대한 묘사는 사라져버렸다. 혹여 한자처럼 보이는 영문 글자를 만드는 작업들처럼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중국의 색을 입히는데 치중한 나머지 다른 것들을 놓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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