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여행길을 시작하다.
#2015/12/19-12/22 - stop over 3박 4일
오전 11시 보딩 해야 하는 비행기는 여지없이 지연되어 1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12시간의 비행이지만, A380 2층 창가 좌석은, 그 자체만으로 쾌적하고 기대에 찬 여행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했다.
남미로 들어가는 여정을 위해서는, 경로상의 유리함으로 대부분은 중부나, 서부를 경유하는 루트를 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선 오래전에 만나 아쉽게 헤어진 ‘뉴욕이 그리웠고, 옛 친구와 짧은 만남을 기획하게 되어 별다른 고민 없이 뉴욕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12/19 Newyork, again:
2001년, 911 직전에 방문했던, 14년 만이다. JFK공항에 내려 Express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19일에 떠났지만 시차로 아직도 19일이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일단 가성비 있는 도미토리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이 도시는 별로 변한 게 없다. (2001년보다는) 좀 깨끗해진 듯하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뉴욕은, 확실히 반짝반짝, 생동감이 가득했다.
일단 뉴욕의 밤거리를 만끽하기로. 짐을 대충 던져두고 밤거리를 느끼러 나섰다.
#12/20 뉴욕에서의 2일 차
신나게 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실컷 유물들을 관람하고, 휘트니는 벅차서 패스. 그래도 MOMA는 들러주어야지 싶어, 열심히 <진품을>보고 나왔다. 오후에는 번화한 브로드웨이, 첼시 거리 등등 예전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장소들을 찾아 헤매다, 맛집! 사라베스에서 달달한 메뉴로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뉴욕에서 가장 중요한 미션: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있는 동창 W를 만났다. 재즈 연주 동호회에서 알게 된 현지 분께서 몇몇 좋은 클럽을 추천해주셨다. 그중에서 재즈가 낯설 친구를 위해 조금은 부담 없을 듯한 Groove Bar라는 라이브 클럽을 물색해 두었다.
우리가 이 만남을 실행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나눈 채팅 만으로도 얼마나 설레었는지, 사실 졸업 전 내가 학교를 자퇴한 후, 간간히 소식만 들었을 뿐, 얼굴을 마주한 적 없었기에 더 신이 났다. 이십 대와 사십 대의 그 시간 사이를 메꾸기엔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살랑거리는 재즈가 흐르는 클럽에서 여전한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찾고, 그간의 회포를 풀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 살과 같은 풋풋함으로 추억을 곱씹었다.
친구와의 관계는 신기하게도 처음 맺어진 그 나이, 그 순간의 그 성정으로 고스란히 되돌리는, 알 수 없는 작용이 있다. 직장에서 만난 이들과, 어릴 적 만난 친구가 다르듯, 우리의 그 시절,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착각이 물씬 올라왔다. 바로 며칠 전, 지구 반대편에서 십여년을 모른척 살아온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한참을 맥주와 안주를 엄청나게 주문해서 오랜 얘기를 나누고. 라이브 연주는 뒷전! 보사노바 스페셜 무대는 아랑곳없이, 맥주와 수다로 몇 시간을 보냈다.
연주자들께 매우 죄송할 따름.
2차로 근처 골목의 작은 라멘집에서 못다 한 수다를 마무리하고, 작별을 했다. 또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렀고, 그녀는 여전히 잘 있겠지.
#12/21 뉴욕에서의 3일 차
그야말로 전형적인 뉴욕 여행객의 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브루클린 브릿지에서의 관광객 모드. 오랜만에 다리 위에서 자유의 여신상님도 저 멀리서 뵈어 주고. 멋있게 생긴 뉴욕우체국에 들러 조카님들 크리스마스선물도 배송처리 완료. 여행에 미처 준비 못한 것들을 사러 다니느라, 아쉬운 시간이 흘러갔다.
숙소 근처에서 뉴욕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충만하게 보낼지, 고민했다. 마침 걸어서 5분 거리인 링컨센터(정확히 말하면 Dizzy's Club — Jazz at Lincoln Center https://2021.jazz.org/dizzys-club)에 공연이 있는 걸 알아냈다. 다소 즉흥적인 시도였는데, 맥신 그린의 <블루 기타 변주곡>을 읽으면서, 그녀의 예술교육에 대한 내용도 좋았지만, 그들이 일하는 링컨센터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기억도 다시 솟아났다.
링컨센터의 재즈라니, 매일 이런 장소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동네 사람들, 참 부럽네. 프로그램을 진작 봤다면, 아니, 하루만 일찍 왔다면, 빅밴드 스페셜 공연을 볼 수 있는 멋진 기횔 놓친 게 안타까웠지만.
운 좋게 아주 정돈된 공간에서 멋진 뉴욕 야경을 배경으로 노 피아니스트 Dick Hyman이라는 분의 여유로운, 원숙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전석 매진이어서 간신히 바 자리를 대기 선착순을 걸어 아슬아슬하게 입장한 터라 아마 더 감격했는지도 모르겠다. 전날 갔던 바에서는 서민적 대중적 재즈였다면, 링컨센터는 그야말로 백인들만의 고급문화를 만끽하려는 '그들만의' 세계가 느껴졌던 게 차이랄까. 100여 석이 넘는 식당에서 솔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며 음식과 술을 마시는데, 어느 누구도 연주에 방해가 될만한 제스처, 잡소리를 내지 않고 온 신경을 그에게 집중하는 것도 경이로웠다.
앙코르 즈음, '누구 거 연주해줄까?' 대뜸 묻는 연주자!
(관객 중 누군가) '엘링턴'을 외쳤다!
연주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엘링턴 중에 뭘 할까 하니, 여기저기서 온갖 곡명이 나왔고.
아무래도 듀크 엘링턴은 그들에게는 70-80 가요 같은 전통이려나. 물론, 연주자는 악보 따위 없지만, 요청한 곡들을 과하지 않게, 때론 유머스럽게 친숙한 멜로디 라인을 메쉬 업해서 너무 멋진 솔로 연주를 보여주었다. 연속 감동!
그렇게 가볍게, 미션들을 완주하고, 진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뉴욕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