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애가 만들어낸 나의 성격들(1)
1.
고3때였다
화이트데이는 개학 2주 뒤
안그래도 들떠있던 학교에 화이트데이는 대이벤트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여고였는데 아침부터 택배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모두 창문에 붙어 누구에게 꽃바구니가 왔는지 웅성였다
2.
설마 혹시나 기다려봤지만 당연히 내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무슨무슨데이에 솔로인 걸 서러워하지만
그건 둘이어서 더 서러운 걸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동갑내기었던 나와 당시 남자친구는
따로 데이트할 시간을 내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학원을 같이 다니고 있었다.
늘 만나던 지하철역에서 그날도 그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제나 그랬듯 늦게 나타난 남자친구는 빈손이었다.
3.
예나 지금이나 난 사랑에 목숨 거는 무비판적인 군중심리를 경멸했다.
그래서 '남들은 화이트데이에 다 받는데 나는 뭐야'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
내가 슬펐던 건 언제고 따뜻했던적 없었던 그 친구가
너무나 예상대로 너무 당당히 "나 돈 없는데" 라고 했던 모습이었다.
실제로 돈이 없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무성의와 철없음의 문제였고
더 슬픈 건 그 우스운 철없음 앞에서도
속상해 입을 다물던 것 말고 아무 것도 할줄 모르고 헤어지기도 싫어하던
무식한 내 모습이었다.
알사탕 하나를 준들 어땠으랴
아니 선물 따위 없어도 어땠으랴
고딩이 돈이 어딨냐
(물론 난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발렌타인 데이에 선물을 줬었다)
편지까지도 심지어 바라지 않았다.
오늘이라도 따뜻한 모습을 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첫사랑을 하던 여고생 나는
내게 관심없는 사람은 기념일에 미안해서 잘하는게 아니라
모든 원기옥을 모아 극도의 상처를 안겨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유진의 <차차>를 부르며 머리채를 휘휘 흔들어줬을 것을
자존심 상하고, 서러워 울기만 했다.
4.
잔소리만 하는 여자친구가 지겨워서 잘해주고 싶지 않고
자존심은 챙기고 싶던 남고생은
그럴 때 어떤 제스처를 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몰랐고
모르는 두 명은 늘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내 입에서 결국 헤어지자고 할 때까지
5.
소위 말하는 "말만 내가 했지 걔가 헤어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었다"로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고 나는 그 친구와 헤어졌고
뺨 때리고, 7킬로 빠지고, 온갖 일을 겪고, 뭐 그러한 스토리를 겪었다.
누구나 겪는 이별이었고
누구나 그렇듯 아팠던 첫사랑이었다
6.
대학에 들어갔다
두 번째 연애이자 대학에서의 첫 연애였다.
CC, 군입대, 온갖 난리.
또 그랬듯 로맨스에 목숨 걸었던 나는 온 세상이 보라고 사랑꾼 노릇을 했다.
군대에서 한 푼 두 푼 모아 내 생일에 휴가를 나와 선물을 줘서 날 펑펑 울게도 했고
7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고
커플옷을 입고, 수많은 사진을 찍고, 싸이월드 가득 올렸다.
청춘의 누구나 그랬듯
정말 그게 끝사랑일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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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