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애가 만들어낸 나의 성격들 (2)
6.
제대 후
2년 6개월 동안 갇혀있다 풀려나와 세상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의욕에 가득 찬 그 친구와, 4학년 1학기가 된 나의 기대치는 달랐다.
그 친구는 학생회장, 꽈생활, 술자리에 목말랐고
나는 연락두절, 약속파토, 술자리 여자 문제 같은 지긋지긋한 싸움을 다시 또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진작부터 진저리가 쳐졌다.
나 스스로 조금 더 차분해지기에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상태였고
무엇보다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안다고 생각했으나 돌아보니 아니었다.)
그러나 스스로가 어리다는 것 또한 나이를 먹은 뒤에나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걸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야만 할 뿐
7.
나의 모든 말은 잔소리었고
난 그야말로 '재미없는 여친'이었다.
난 단어의 뉘앙스와 말의 양을 조절할 수 없었고
'잘못'하면 혼을 내거나
화나지 않게 하기 위해 꾹 참기만 해야 한다는 것밖에 몰랐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보다 잘 놀고, 누구보다 웃기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친구 앞에선 내가 생각해도 재미없는 존재가 되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데
'너만 잘하면' 난 다른 사람에게 하듯 너에게도 '쿨'하고 재미난 사람인데
너의 말썽 때문에 내가 이상해지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만 들었다.
인간은 하고 싶어 하는 걸 못하게 할수록
더 엇나간다는 것 따위 알 수 없었고
아니 막연하게는 알고 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8.
싸움, 추격, 이별
또 살 빠지고 쓰러지고
무엇이 그토록 괴로웠을까 되돌아보면
"군대 다 기다렸다가 제대하자마자 차였다" 라는 말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던 것 같다.
나는 '멋진 연애'를 해야하는 사람인데
그 친구가 군대 있던 동안
그토록 수많은 사람이 내게 지겹게 훈수두던 '군대 기다려봐야 제대하면 채인다'라는 말이 그들 말마따나 현실이 된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울고, 괴롭고, 눈만 뜨면 아픈 그 모든 것을 '이별', '사랑', '상실'이라는 단어로 이해하는 거 말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규정된 언어는
곧 나의 감정이라 여겼다
9.
당연한 이야기지만 돌아보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건 내가 연애에서 어떤 평가를 받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바깥에서 볼 때 붕어빵처럼 똑같아 보이는 연애도
속을 열어보면 각자의 인생만큼이나 다양해서, 남들 이야기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닌데
난 당시
난 '내 자신의 길' 보다 '연애자로서의 배샛별'이 세상에서 어떻게 보이느냐가 훨씬 중요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추구하고 있던 것이 '망신당하기 싫은 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시기었다
환장하게 자존심 쎘지만
어처구니 없이 자존감은 낮았다
이후로 나의 연애들를 요약하자면
수많은 아픔 가운데서 '나'를 알아가며
다른사람의 눈을 통해 바라본 나의 연애와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사랑이 균형을 잡아가던 여정일 것도 같다
10.
몇 달 지나 후회한 그 친구가 울고, 빌고
나는 죽도록 미웠기에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라 떠벌렸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선 그저 내가 힘들었던 시간만큼의 '사과'만 받으면
언제든 마음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된 사과러가 된 그 친구는 인생을 다 해 '사과'했고
나는 '용서'했고
우습게도 난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우리가 정말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줄 알았다.
하지만 곧바로 결국 같은 문제로 싸우기를 반복
다시 이별
이번 이별에는 오버랩으로 그 친구에게 새 여자친구까지 생기고
그 여자친구가 옆에 꽈 후배이기까지 한 바람에
그야말로 전쟁이 벌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다 순리라는 걸 머리는 알았지만4년간 쌓인 서로를 향한 자괴감이 완전 폭발해버렸다.
가슴에 불이 끓어오르는 것을 도저히 다스릴 수 없었던 난 어느날 마음 먹었다.
'너 죽고 나 죽자. 끝까지 가자'
어차피 헤어지면 다 부질없단 생각 역시 할 수도 없을 만큼 미치게 어린
그때 나이 23살이었다.
11.
그 친구는 그저 어리고 못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연인으로서 자신을 맞추고 서로를 배려할 깜냥도 의욕도 없었고 그렇다고 헤어지는 결단을 낼 판단력과 용기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것도 거짓말하고, 변명하고
맞는 말을 하는 날 바보 취급하고, 의심병 취급하고,
그게 안 되면 무시하고 잠수를 탔다.
특별히 괴상하고 미친 것도 아니고
놀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데
늘 자기를 감시하는 것 같은 여자친구 숨 막혀서 도망 다니는 남자애들의 전형적인 철없는 행태였을 뿐이었다.
당시에 내게 그는 제일 못난 존재였고,
그는 어디 가서도 받아본 적 없던 못난 존재 취급을 나에게 받는 것이 당연히 견딜 수 없었을 터였다.
이 모든 것에 너무 자괴감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어야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아닌 '최고의 커플'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꿈꾸던 나의 강박은, 그렇게 되지 못하고 서로 괴로워만 하는 것을 견딜 수 없게 했다.
12.
나는 어렸지만
상대적으로 좀 더 철없던 이들을 보며 내가 대단히 철들고 강한 사람이라 여겼고, 그럴 수 없을 땐 스스로를 통제하고 혐오했다.
그런 내 안의 짐을 누군가와 진솔하게 나눌 줄도 몰랐고 그저 알아주지 않음에 괴로웠다.
우리가 서로 그냥 부족한 어린 존재들이었음을 인정했다면 진작 그쯤에서 인연이 아님을 인정하고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앞뒤 없이 '절대 헤어지는 건 안돼' 라 생각하던 나는
혹시나 바뀌지 않을까, 언젠가 바뀌지 않을까
아니 안 바뀌어도 그냥 어쨌든 못 헤어지겠다는 마음으로 붙들며 나는 상처받지 않았고 지금 잘 해내고 있다는 정신승리로 버텼지만
내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다.
13.
이미 헤어진 상태로 서로 원수처럼 싸운 거만 6개월이었다.
나는 그즈음 알콜중독 상태였고, 분노 조절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친구는 단칼에 날 자르고 전화번호 차단해야 한다는 방법도 모르고
나는 쓸데없는 지랄 따위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아도 내 안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사실 내게 미안할 필요도 없는데 엄청난 죄의식에 시달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내 분노가 사라질 때까지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매일 나오라면 곧이 곧대로 나왔고
우린 매번 싸워댔다.
중간에 낀 그 친구의 새 여자친구는 분명 그 일로 속상했을테고
할 일 없던 대학생 셋은 한 학기를 꼬박 싸움으로만 보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캠퍼스를 떠나게 되자
싸움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종료되었고
4년간의 내 연애(싸움)도 비로소 끝이 났다.
2008년 여름
나는 그 2008년 두 번째 연애의 끝을 기점으로
성격이 다소 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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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