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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 Apr 03. 2017

활자 중독이 시작된 20대 중반

지난 연애가 만들어낸 나의 성격들 (3) 


14.


앞에서 언급한 연애문제 외에도 

당시 집안과 내 자신을 향한 총체적 고뇌로 

2008년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을까'만을 고민하던 시기었다. 

어쨌든 살아서 기어나오긴 했지만

그 이후 내게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감정표현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난 성격이 급하고, 감정표현이 굉장히 강했다.

말로 표현하기 전에 이미 울고, 웃고 모든 게 얼굴을 넘어 온몸에 드러났기에

기쁘면 펄펄 뛰고 슬프면 엉엉 울었다. 


2008년 나는 나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생존 방식이었다.

모든 것의 근원인 나를 먼저 알아야했고

얽히고섥히고 꼬인 나 자신을 이해해야만 했다.


내가 겪은 일들, 내가 느낀 감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 대한 변명, 정신승리를 되도록 버리려했다.

왜, 왜를 되물으며 썼다. 



15.



무엇도 내 가슴에 그 꽉막힌 느낌을 풀어줄 수가 없었는데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쓰는 순간 만큼은 응어리가 내려갔다.


나를 멋있게 포장하고 변명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고, 나를 둘러싼 문제는 나를 변명해선 해결될 수 없었다.


내 자신의 추잡함을 있는 그대로 써야 하는 건 일견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그걸 숨기고 정신승리하며 생기는 문제들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는 시원했다. 자유로웠다. 


그렇게 

나는 읽고 말하고 쓰는 것에 집착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쓰는 동안 

표정은 필요없었다.



16. 


이 과정에서 난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나는 지금 슬프고 고통스럽다" 라고 타자를 치는 게 

더 빠른 사람이 됐다. 


태생이 사랑에 목숨 거는 병자에 감정 과잉이다.


글씨로 내 감정을 정리해버릇하지 않았다면

난 주변에 흔히 보는' 음악하는 미친인간'이 됐을 것이다. 



17. 



모든 인생을 그저 현재의 관점에서 결론적으로만 본다면

좋은 게 좋은 것이고 순리일지도 모른다. 

노년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겠지


하지만 어떤 일은 

'정말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텐데'하고 

끝없는 후회를 불러온다. 




표정을 잃고, 모든 것을 글로 정리해야 하는 나를 결과적으로는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그것이 완성되지 못했던 그때,

그때를 생각해보면 차라리 떼쟁이에 욕심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건 사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하지 않던 행동들이었으니

무엇도 아무 것도 소용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만 없었다면

나는 정말 후회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고 

내 고통도 그로인해 만들어진 내 어떤 모습도 순리대로 받아들였을텐데 




내게 유일한 후회와 슬픔인 사람을 만난 건 

어떤 상처도 아물지 않은 아니 가장 썩어가고 있던 그 2008년의 여름이었다 


그 이후로 막막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와 싸워야했다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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