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에 가고 싶다

by 내일 만나

번화한 강남의 어느 상가 지하,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칠, 강 남치고를 요란한 파트텔 톤의 간판이 있다. 'TURN'. 우리는 강남역의 'TURN'이라 강턴이라 부른다. (홍대에도 있다) 그냥 강남의 흔한 빌딩 고깃집 지하 1층이다. 보랏빛 페인트로 칠해진 벽을 따라 반층 정도 내려가면 미세하게 들리는 진동 소리, 입구에서 입장료 만원을 내고 들어 가면 주는 음료 교환권을 받고 왼쪽 유리창을 슬쩍 보니, 밝은 조명 아래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슬쩍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둥둥 울리기만 했던 진동소리의 발원지인 라틴음악이 터져 나온다. 격하게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서 바깥쪽을 따라서 제일 안쪽 바 앞으로 간다. (바 앞과 입구는 고수 존이다.) 바 바로 앞에 여자 탈의실에 들어간다. 바깥에서 입은 단정한 옷을 춤추기 좋은 옷으로 바꿔 입는다. 기본적으로 레깅스에 운동복차림. 고수들은 훅파지거나 타이트한 원피스도 입는다. 전문 댄서처럼 의상도 화장도 화려하다. 물론 춤도 엄청 잘 춘다. 7cm의 턴 돌기 좋은 힐을 신고 나가면서 거울을 슬쩍 한번 보고 커튼을 걷어 바로 입장. 일단 목을 축일 맥주부터 한잔 교환한다. 다른 사람들과 혼동되지 않기 위해 맥주 라벨에 내 닉 네일을 적는다. '엘리 왔어?' 이곳에서는 본명을 쓰지 않는다. 반겨주는 아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서 슬쩍 춤추고 있는 사람들을 훌어본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유명한 인스트럭터 누가누가 왔는지. 그리고 익숙한 아는 사람이 다가오면 그렇게 첫 춤을 춘다.

처음 살사를 시작한 건 무한도전을 보고서 였다. 무한도전에서 추는 스포츠 댄스가 뭔지도 모르고 비슷한 줄 알고 처음 살사 바에 방문했다. 라틴댄스를 검색하니 나오던 곳. 실제적으로 배우고 보니 스포츠 댄스는 정해 놓은 안무를 파트너와 함께 추는 것이고, 살사는 서로 어떤 춤에 관한 신호를 배우고 나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남자가 주는 신호에 따라서 턴을 돌기도 하고 웨이브를 하기도 빠른 스텝을 밟기도 한다. 살사가 왜 좋았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 그냥 여름에 더운 날 빠른 음악은 그 더운 여름을 완벽하게 즐기기에 최적화된 음악으로 느껴졌다. 실제적으로 춤을 배우고 나니 음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박자를 찾게 되고, 빠른 음악일수록 빠른 박자에 춤을 추지 않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살사를 추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내 나이도 내 이름도 상관없이 그저 얼마만큼 이 음악에 나를 뽐낼 수 있는지, 살세로(남자 파트너)의 리딩에 얼마만큼 팔로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춤을 잘 추면 사람이 더 멋있고 예뻐 보이기도 하고, 춤을 못 추면 아무리 잘생기고 예뻐도 답답이로 보이기 마련이다.

춤을 출 때의 나는 내가 아니다. 그냥 살세라 '엘리', 춤을 출 때는 자뻑이 좀 필요하다. 표정과 동작에서 표현되는 자신감이 춤의 반이상이다. 나는 처음에 춤에 미쳐서 다들 연애하고 눈빛을 주고받을 때 거울 앞에서 베이식 스텝만 밟았다. 다들 호감 있는 상대로 파트너 하고 싶을 때, 나는 더 호응이 잘 맞아서 공연을 잘할 수 있는 파트너를 원했다. 그래서 다행히도 나름 긴 춤 생활에 연애한 적이 없다. 어느 춤판을 가든 전 남자 친구를 마주칠 일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거다. 아는 사람과 춤을 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과 춤을 춘다. 이제 연차가 되다 보니 손을 잡기만 해도 아, 라이트턴을 한번 돌기만 해도 아, 이 분의 레벨이 느껴진다랄까. 춤을 출 때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좋다. 그저 귀에 들려오는 음악의 박자와 내 손끝에 느껴지는 파트너의 텐션만에 집중할 뿐이다. 한껏 내 흥을 돋우는 음악이 나올 때, 위트 있는 파트너를 만나면 그 음악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장난스럽게 추기도 하고 때로는 느릿하게 웨이브를 추기도 한다. 빠른 라틴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한곡을 추고 나면 가쁜 숨을 마시며 데낄라 한잔! 아 맥주도 좋은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마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