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ms dia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squeen Oct 30. 2021

무대 뒤에서

작은 선생님

      




# 엄마 자격증      


"초보 운전입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운전하다 보면 차량 뒷 유리에 종종 눈에 띄는 문구들이죠.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지만, 신호를 보고 차선 변경하는 능력이 서툴러서

주변 운전자에게 배려를 요하는 메시지들.     


"초보 엄마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마음의 소리입니다.


운전면허 자격증처럼 시험을 봐서 부모 자격증을 얻는 것도 아니고...     

운전면허 시험은 그래도 필기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문제집이라도 한 권 사서 풀어보는 정성이라도 쏟는데, 좋은 부모가 되는 이론은 모범 답안이 없더라고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어느덧 학부형이 되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에게 '초보 엄마'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느낍니다. 누구나 그 과정을 거쳤겠지만, 누구도 그 과정의 노하우는 잘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가정환경이나 여건이 집집마다 다르고, 또 아이들 캐릭터마다 다르니까요. '몇 살 땐 뭘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선 문제를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를 일괄 적용하는 게 쉽지 않죠.

     

가끔 아이가 이런 얘길 합니다.     


"엄마, 나 한 살 아기 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땐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다 예뻐했잖아."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말이겠죠.          



# 부모의 거울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뜻이 이해되더라고요.


초보 운전자가 명소를 검색해 내비게이션을 따라 운전하며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뿌듯함처럼 아이의 성장과정마다 느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비록 서툴러도 노력하는 모습,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도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고, 그래서 더 긴장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부모가 된 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됐습니다.     

꽃게가 자기는 옆으로 걸으면서 "너는 앞으로 똑바로 걸어라" 아무리 외쳐본 들, 꽃게 자식은 옆으로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옆으로 걷는 모습만 보고 자랐으니까요.     


어젠 참 마음이 뭉클한 하루였습니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업무를 보고 있는데, 늦은 오후 아이 공연 작품 발표가 있었거든요.     

6살부터 8살까지 한 무대에서 작품을 공연하는 영어 뮤지컬 수업인데, 6살 때부터 꼬박 2~3년을 석 달에 한 작품씩 발표했던 수업이었습니다.     


6살 땐 <신데렐라>에서 일곱 난쟁이 중 난쟁이 역할을 맡더니, 시간이 지나 <미녀와 야수>에서 주인공 미녀를 맡았지요. 그리고 코로나19로 몇 달 수업이 중단됐다가 다시 수업이 시작됐을 땐 <타잔>에 등장하는 동물 , <피터팬>의 그림자 등 다시 단역을 맡아 발표했습니다.     


아이는 단역을 맡을 때나 주인공을 맡을 때나 자기 역할보단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자기 대사만 외우는 게 아니라, 대사를 주고받는 역할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대사도 외우고, 다른 사람의 대사를 들어야 내 대사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봐야 내가 무대에 나설 타이밍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것 같더라고요.     


초등학생이 되고도 굳이 6살 7살 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을 꼭 하고 싶다고 해서 등록하고 보냈는데, 어제가 아이의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동생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큰 우리 아이를 보면서, 이젠 무대를 내려올 때가 됐다는 것을 아이도 엄마도 느낀 시간이었죠.

     

6살 때는 공연하는 날이면 직장에 반차라도 내서 꽃다발 사들고 가 축하해줬는데, 8살 아이는 '스스로 하겠지' 하는 믿음에, 작품 발표날도 "선생님께서 긴 양말 꼭 챙겨 오라셨어"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출근했던 엄마였습니다.      




# 작은 선생님


영어 뮤지컬 선생님께서는 우리 아이를

<작은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셨지요.

주 1회 2시간 수업인데, 쉬는 시간 동생들이 화장실 갈 때 챙겨서 데려가 주고, 선생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잘 따르는 누나, 언니였는데 자기는 <작은 선생님>으로 불리는 게 좋았답니다. 동생들이 시끄럽게 하면 선생님 혼자 힘드신데, 자기가 있어야 선생님이 덜 힘드시다며...     


어제 공연장에 가진 못했지만 아이들의 공연이 담긴 영상을 잠깐 모니터 하면서, 아이의 표정이나 말투, 행동에서 '엄마의 잔소리'처럼 '작은 선생님의 잔소리'가 느껴지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공연을 마치고 싶은 본인의 바람처럼, 무언가 여건이 따라 주지 못하니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이 엄마 눈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퇴근 후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곧 9살이 되면, 이 수업을 들을 수 없는 나이야. 만약 한 작품만 더 하고 싶으면 석 달 정도는 더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나이 제한으로 안 되는 데, 재등록해서 한 작 품 더 할래? 아니면 아쉽지만 이제 영어 뮤지컬 졸업할까?"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합니다.     


"선생님은 보고 싶을 것 같은데, 이제 작품은 그만하는 게 맞는 거 같아."



2019.8.29 <미녀와 야수> 공연

          

# 무대 뒤에서       


아이가 3년 동안 영어 뮤지컬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내 직장생활을 돌아봤습니다.     


무대 위에 서있는 사람은 조명 감독 기술 감독 촬영 감독의 수고를 알 수 없지만

무대를 내려올 때쯤 무대 위 주인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보이는 것처럼

젊은 연차 기자 때는 회사에 있는 데스크나 부장이 기사를 멀끔하게 고쳐주시고, 카메라 기자 등 다양한 스탭들의 도움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방송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마감 시간 다 되어서 기사를 송고하면, 안에서 "기사를 이제 보내면 어떡하냐!" 소리쳐도, 정말 '개떡'같이 쓴 기사도 '찰떡'같이 고쳐주는 선배들이 계셨기에 데스크와 부장을 믿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기자 생활한 지  만 15년이 넘으니, 이젠 내가 쓴 기사도 내가 출고하고 남이 쓴 기사도 내가 데스킹을 봐야 하는 <작은 선생님> 위치가 됐더라고요.     


답답한 건 많지만 입 밖으로 말을 꺼내면 '꼰대' 소리 듣는 연차가 됐고, 무대 위에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서 얼굴을 빼꼼 내밀지 않아도, 눈에 띄는 <작은 선생님>처럼, 역시 현장에서 한 출입처를 너무

오래 경험하다 보니 이제 이 출입처를 떠날 때가 됐구나 싶더라고요.

     

영어 뮤지컬 선생님께서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작은 선생님>을 독사진으로 몇 장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사진 속 아이 얼굴에 미소가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그 미소.     


저도 <작은 선생님>의 미소를 닮고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