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옆집 누구는 돌 때 두 발로 아장아장 걸어서 자기 돌 떡도 돌렸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 아직도 못 걷지?'
실제로 저희 딸은 걸음마를 좀 늦게 뗀 편이어서 18개월 됐을 때 처음 걸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지만, 그 시절엔 아이가 못 걸으면 어떡하나 무릎뼈에 문제가 있나 정말 많은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미운 4살을 지나 5살이 되고 6살이 되면 주변에 한글을 깨친 친구들이 하나 둘 나옵니다.
'우리 아이는 내가 계속 책을 읽어줘도 그림만 보는데, 아니 한 살이나 어린 누구는 벌써 스스로 책을 읽고, 일기를 쓴다고?...'
그 시절엔 한글을 빨리 깨친 아이들이 '천재' 같아 보였고, 우리 아이만 왜 이렇게 늦나 걱정했습니다. 아이를 붙잡고 한글을 가르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고, 학습지 선생님 도움으로 한글 스티커 딱지 떼어 붙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7살이 되어서야 한글을 뗐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지난 시간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를 비교하고, 조급하게 생각했던 게 참 후회가 됩니다.
우리 아이가 비록 걸음마를 늦게 떼서 남들보다 늦게 두 발로 걸었지만 뼈가 더 단단해진 상태에서 걸음마를 시작했기에 넘어지거나 다친 적이 없었습니다. 늘 안정감 있게 두 발을 내디뎠고, 덕분에 사고 한 번 없이 잘 컸습니다.
한글은 7살에 뗐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말하기와 쓰기가 동시에 성장해 말하는 능력만큼 손가락에 힘이 있어 본인의 생각을 거침없이 글로 표현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땐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어느 날 목을 가누고 네발로 아장아장 기어 다니면서 '엄마' '아빠'를 부르고 기저귀를 떼는 시간들 속에 엄마는 '감사'를 잊고 내 아이를 다른 아들과 비교하며 '욕심'으로 마음 졸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남들보다 조금 먼저 세상의 빛을 본 아인데 엄마 마저 아이를 더 품어주지 못하고 조급증에 시달리며 쓸데없는 걱정을 했죠.
아니, 팔다리가 건강한데 어른이 되어서도 네 발로 다니는 사람 있나요?
무상교육이 실시되는 대한민국에서 어른이 되어서도 한글을 몰라 고통받는 사람이 있나요?
머리로만 알았지 마음으론 조급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 반성합니다.
엄마의 기준에 아이를 세워놓고 스스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너무 후회됐습니다.
# 육아도 경력이다
육아 휴직 기간에 아이를 오롯이 돌보면서 1년 가까이 주변에 마음 맞는 엄마들과 공동육아를 했었습니다.
시장에서 장 봐와서 아이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오감 발달 놀이, 정서에 도움이 된다는 체험 들을 모두 '엄마표'로 준비하고 기록하면서,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했습니다. 적어도 아이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엔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아이가 울때면 분유 먹은 시간을 체크하거나 기저귀를 보면 다 우는 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아이에게 '말'을 하는데, 아이는 '말'이 아닌 '소리'로만 답하니 가끔 말동무가 너무 그리웠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정신없는 신랑에게 전화해 아무 용건 없이 몇 마디하고 싱겁게 전화를 끊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가끔 밤잠을 설칠 때면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1년 뒤 직장에 복귀하면 내 자리는 있을까? 1년 가까이 경력이 단절됐는데 어느 부서에 가서 일을 하나? 몇 년 후엔 차장대우 진급이 있는데 승진이 누락되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은 가끔 악몽으로 나타났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업무 복귀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 불안감은 더 커졌습니다. 한 동안 잊고 살았던 회사 사람들에게 연락해 '혹시 이번에 인사가 언제쯤 있는지?' '어느 부서가 업무 분위기는 좋은지?' '복직 때 어느 부서를 희망해야 하는지?' 등 세상에 모든 근심 걱정은 혼자 짊어지고 가는 사람 같았습니다.
복직을 했고, 낮 뉴스 팀에 들어가 '취재' 업무가 아닌 낮 뉴스 출연자를 섭외하고, 원고를 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시절엔 회사 상황도 있고 해서 다시 취재부서에 못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놨습니다. 내 힘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선 마음을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게 나의 유일한 선택지였으니까요.
2017년 봄, 회사에선 정기 승진인사 발표가 있었고 '차장대우'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우리 회사는 정치적인 이유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진급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보다 훨씬 일 잘하는 선배들의 이름은 없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차장대우가 되니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마음 잡기가 힘들더라고요.
다행히 이듬해 '대우' 꼬리표를 떼고 회사가 '차장 – 부장 –국장'제도로 변경해 차대 1년 만에 바로 차장이 됐고, 그땐 일 잘하는 선배 동기들과 함께 다 같이 '차장'으로 진급했습니다.
2021년 겨울.
차장 4년 차 직장인으로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니 지난 시간 '기우(杞憂)'로 밤잠을 설친 시간들이 너무 아쉽습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우유 한 컵 벌컥 마시고 숙면을 취할걸...
# 슈퍼맘? no 초보맘
제 휴대폰 번호 뒷자리가 2021인 사연은 공개했었죠?
젊은 날 그토록 바라던 2021년을 보냈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스스로에게 인사를 건넨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애썼다."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과 직장이 나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겹치다 보니 많은 내적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잘할 자신도 없으면서 무엇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끌고 가는 나 자신이 때론 미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가까운 취재원들조차 '슈퍼맘 아니냐'고 묻곤 하는데, 아닙니다.
늘 시간 빈곤에 허덕이며 하루를 살았던 '초보맘'입니다.
직장에서 깨지고 욕먹는 날들도 퇴근해서는 웃으며 티 낼 수 없던 시간들.
갑자기 잡힌 회식을 거부할 수 없어 아이와 퇴근 후 함께 놀아주겠다던 약속을 깼던 수많은 날들. 그 시간 동안 버티고 견디며 내 자리를 만들고, 이겨낼 수 있었던 동력은 '마음의 근육'입니다.
비록 흔들릴지라도 꺾이지 않는 생각의 유연함.
'괜찮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야' 스스로 다독였던 위로의 말들.
나의 작은 생각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꾸준히 '마음의 근육'을 키웠습니다.
누군가 부정적인 말들로 내 의지, 내 노력, 내 희망을 꺾으려 하면 '거리두기'를 했습니다.
그게 나를 지켜낼 수 있었던 방법인 거 같습니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면 명대사가 나오죠.
Always protect yourself!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
2022년에도 브런치 독자님들 모두 '마음의 근육' 키우며 '기우(杞憂)'와는 거리두기 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