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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Jun 26. 2020

<더 플랫폼> 혹은 '구멍'

먹는 걸로 차별받는 게 제일 서럽다

2월 10일의 환호를 기억하는가?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 4개 부문을 석권한 그 날은 한국 영화계의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모든 영화인들과 관련 업계 사람들은 한국 영화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전성기를 꿈꾸었다. 그로부터 8일 뒤 대구 신천지 31번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후 영화계는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려오는데 겨우 8일이 걸렸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는 평소라면 전혀 주목하지 않았을 영화들을 보게 되었다.


#닥먹1

신작 대신 재개봉이 자리를 채운 극장가에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이 5월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더니, 6월 달 이후로는 VOD 순위에서도 꽤 선전하고 있다. 솔직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감독이나 배우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작품이 이 정도의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꽤 볼만했다. 특히 잔인한 장면이나, SF 스러운 설정, 사회적 문제를 다룬 점 등, 필자의 개인 취향과는 잘 맞는 편이었다.

#닥먹2

<더 플랫폼>은 수직 감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수직 감옥의 원래 이름은 구멍 (El Hoyo)이다. 자발적으로 '구멍'에 들어간 주인공 고랭은 지하 48층에서 눈을 뜨고 약간 짜증 나는 캐릭터의 노인 트리마가시로부터 이 곳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두 명씩 생활하는 각 층 한가운데 커다랗고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고, 이 구멍을 통해 진수성찬으로 가득 채운 상차림이 지하 1층부터 바닥으로 내려가며 각 층의 수용자들은 짧은 식사 시간을 갖게 된다. 운이 좋아 윗 층에서 깨어난 이들은 배부르게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밑으로 내려가면서 위에서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어야 하고 더 하층의 수용자들은 굶어야 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둘은 '살아있는 한' 매달 다른 층에서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48층이라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층에서 두 남자의 불안한 브로맨스는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다음 달 202층에서 눈을 뜨면서 그 관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구멍

모든 상징이 너무 직설적이다. 고랭의 두 번째 파트너인 이모구리는 원래 '구멍'의 관리자였다. 고층과 저층 간의 불평등한 분배의 문제를 윗 층 사람들의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래층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나마 아래층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고랭의 협박이다. 게다가 이모구리는 적진 관리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너무 직접적인 은유로 영화 자체의 세련도는 떨어지지만 그 메시지는 한번 곱씹을만하다. 

#그만먹자

코로나 때문에 엄청남 양의 재화를 정부가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그 재화를 꼭 필요한 곳에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실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양적완화는 주식 시장의 폭등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시스템을 못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안 만드는 것일까?. 내가 고랭이었다면 그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려 했을까 고민해보았다. 아니 과연 바꿀 시도를 하긴 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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