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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Sep 21. 2020

<테넷>이 아니라 <TENET>

과학 영화 버전의 '007 무비'

주인공과 버디

<테넷>은 일반인들이 익숙하지 않은 과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한 SF 영화이다. <인터스텔라>가 상대성이론을, <앤트맨과 와스프>가 양자역학 개념을 소개하며 일반들의 과학적 관심도를 이끌어냈다면, 이 작품은 엔트로피의 법칙, 반물질, 다중 우주 등 온갖 물리적 개념들을 차용하며 과학 영화의 새로운 레벨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필자가 주목한 중요한 개념은 자유의지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자유의지란, 물리적 인과 관계와 상관없이 인간이 의사 결정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믿기에 자신 과거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판명된 순간 스스로의 결정을 후회하곤 한다. <테넷>은 미래의 내가 과거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면 잘못된 결과를 막을 수 있다는 상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악당

우선 작품 속에 차용되는 여러 과학 개념 중 가장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함숫값이다. 어떤 물체나 물질, 혹은 공간은 모두 특정한 엔트로피 값을 갖고 있다. 엔트로피 값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시간이 지날수록’이라는 점이다. <테넷>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수 세대가 지난 미래에서 온 기술 인버전은 특정 사물이나, 사람 혹은 특정 공간에 한정하여 적용될 수 있다. 이미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이런 설정에 대한 영화적 경험을 했다. 그런데 두 작품의 설정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벤자민(브래드 피트)에게 엔트로피 ‘감소’의 법칙은 그의 신체에만 적용된다. 반면 <테넷>에서는 인버전 된 주인공 (존 데이비드 워싱톤)의 모든 물리적 상태 (신체뿐 아니라, 운동, 언어, 사고의 흐름과 기억까지)에 역 법칙이 적용된다.

여주인공 (본드걸?)

<테넷> 주인공들은 기계 장치를 통해 인버전 되는데, 이때부터 그들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여 살게 된다. 인버전 상태의 인물들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비디오를 뒤로 돌린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이들이 인버전으로 과거로 돌아가 특정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인버전을 하면, 다시 순방향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덕분에 특정 시점에 한 인물이 여럿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순방향의 인물들과 인버전 상태인 인물들이 동시에 등장하는데, 보통 이때가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는 시점이다. 이는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과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시간을 순행하는 사람과 역행하는 인물이 서로 만나 전투를 벌이거나 협공을 하는 장면은 논리적로는 이해는 어렵지만 엄청난 시각적 쾌감을 준다.

박사 (인버전 개념 설명 담당)

다시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자.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 내가 내린 잘못된 의사 결정에 대한 결과를 과거의 나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과거의 나는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미래의 나 입장에서 과거의 나에게 정보를 어디까지 주는 것이 적당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과거의 나는 그 시점에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 과거의 나 입장에서도 미래의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신뢰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많은 잘못된 결정은 그 결과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작품은 현재의 환경오염이 미래에 미칠 위험에 대해 중요하게 다룬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오늘의 우리이지만, 그 결과로 고통받는 것은 미래의 우리이다. 이는 미래와 현재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 자유의지 속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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