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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Oct 18. 2021

007 노 타임 투 다이

다니엘 형님, 지못미

지난 59년간 25편의 007 영화가 만들어졌다. 모든 작품들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이렇게 오랫동안 관심을 받으며 영화 팬들과 산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007 살인번호> 숀 커너리도 몸이 좋았다.


첫 작품 <007 살인번호>가 만들어진 1962년은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이 때 제임스 본드는 ‘살인 면허’라는 초법적인 권리와 첨단 무기들을 이용하여 악당들을 통쾌하게 죽이고 다녔다. 제임스 본드는 ‘남자의 멋’을 상징한다. 젓지않고 흔들어서 만든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고, 오메가 시계와 영국식 수트를 입고 애스턴마틴을 모는 그의 곁에는 항상 아름다운 여성들이 몰려든다. 해외 각국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수행하는데, 어느 곳을 가도 어색하지 않게 현지 최고의 놀거리를 즐길 줄 안다. 이런 모습들은 60-70년대 관객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숀 코너리, 조지 레이전비, 로저 무어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는 이런 설정에 충실한 007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007 캐릭터는 더 이상 시대와 맞지 않게 되었고, 이 시리즈에 대한 폐지론이 생길 정도로 위기를 맞게 된다. 냉전이 끝나면서 본드가 싸워야 할 공적이 사라졌고, 본드의 폭력성과 여성관이 시대와 맞지 않았다. 고사 직전의 007 시리즈를 회생시킨 것은 ‘브루스 피어스넌’이 본드를 처음 연기한 <골든 아이> (1995)였다. 007 시리즈 중 수작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냉전의 끝을 배경으로 하고, 007의 적이 더이상 소련이 아님을 이야기하며 악당과 본드걸의 세대교체를 내세웠다. 이 작품에서 제임스 본드는 과거 자기랑 싸웠던 전직 KGB 요원과 협력하여 동료였던 006 (숀 빈)과 싸우고, 임무와 살인면허라는 방패 뒤에서 죽여온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이야기하며, 본드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후로도 007 시리즈는 다른 스파이 영화들로부터 계속된 챌린지를 받는다. 화려한 첨단 무기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미션임파서블> (1996~) 시리즈와 007을 코미디로 패러디한 <오스틴 파워> (1997~) 등이 007 왕국의 몰락을 조롱하는 듯했다. 그 중에서도 <본 아이덴티티> (2002)로 시작된 제이슨 본 시리즈가 가장 성공적이었다. 제임스 본드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전혀 화려하지않고 평범하며 특수한 무기 없이 맨몸과 빠른 판단력의 액션을 보여준 이 시리즈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007 시리즈에도 영향을 준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2006년 <카지노 로얄>로 제임스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시대상에 맞는 007을 만들어야 하는 불가능처럼 보였던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가 맡은 5편의 본드 영화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카지노 로얄>과 <스카이폴>만으로도 그는 성공적인 제임스 본드였다. 그런 면에서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초반 50분 정도까지는 또다른 최고의 007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이탈리아 사시’를 배경으로 한 인트로에서 다니엘 크레이그가 보여준 액션과 감정선을 보면서 그가 왜 대단한 007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정작 메인 빌런 사핀 (라미 말렉)의 근거지에 침투하면서부터 영화의 힘이 빠진다. 라미 말렉이라는 대단한 배우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미약한 설정과 늘어지는 스토리가 긴장감을 놓아버리게 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보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2021년 10월 11일 도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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