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영진 Dec 19. 202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주인공이 한 명 밖에 없는 영화를 어떻게 멀티버스로 구현하는가?

(주의: 스포일러들이 전혀 조심성 없이 난무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주인공이 한 명 밖에 없는 영화를 어떻게 멀티버스로 구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교과서 같은 영화이다. 억지 질문처럼 들리지만, 지금 모든 히어로 유니버스들이 풀고 싶어 하는 문제이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하나의 히어로 밖에 없는 ‘소니 콜롬비아’가 수십 명의 히어로를 보유한 디즈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오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이 작품 하나로, 이런 싸움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처음 등장한 MCU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이후 단독 작품 <스파이더맨: 홈 커밍>에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후원을 받지만, 어벤저스의 정식 팀원으로 받아주지는 않았다. 토니의 죽음 후 그가 아이언맨의 뒤를 잇는 어벤저스 리더가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신빙성은 없었다. 이는 곧 스파이더맨 시네마틱 유니버스(SCU)가 MCU와의 파워게임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스파이더맨 팬들에게 전하는 헌사이다. 지난 스파이더맨들이 멀티버스를 넘어 한자리에 모여 어벤저스 못지않은 팀워크로 세상을 구한다. 그들은 다른 유니버스에서 왔지만 유사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어린 현재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다른 선배들이 겪은 상실과 극복의 경험을 양분으로 자신의 시련을 극복한다. 지난 두 편의 영화에서 그가 의지하는 인물이 아이언맨이었다면, 이제는 스파이더맨 자신이다.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부터 시작된 SCU 사가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증명한다.  

또한 지난 스파이더맨 작품 속 악당들이 실제 배우 그대로 출연하여 새로운 SCU를 구성한다. 흥미로운 것은 악당들이나, 스파이더맨들이 디에이징 기술을 쓰지 않고 현재의 외모 그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토비 맥과이어는 중년의 삶을 사는 스파이더맨으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색함이 없다. 반면, 빌런들은 각자 스파이더맨과 싸우다 지금의 유니버스로 넘어오는 설정인데도, 외모에서 세월의 격차가 느껴지는 것은 옥에 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MCU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SCU의 사가를 과시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스파이더맨은 너드들의 히어로이다. 과학 덕후이고, 스포츠보다는 레고 만들기를 좋아한다. 미국 고등학교 풋볼팀 주장 같은 이미지의 캡틴 아메리카와는 다른 히어로이다. 스파이더맨이 기하학 실력을 발휘해서 닥터 스트레이지를 그 자신의 마법 속에 가둘 정도로, 이과 공부의 위대함을 칭송한다. 스파이더맨의 전통적인 코믹스부터의 팬들은 너드들이 많았다. 어릴 때는 너드지만 나중에 성공하고 큰 힘을 얻게 되었을 때도,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스파이더맨을 관통하는 주요 사상이다. 

이번 작품의 기본적인 구성은 빌런들의 힘을 빼앗아 그들을 원래의 착한 성품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스파이더맨에게 ‘힘’은 중요한 주제이다. 메이 큰 엄마의 말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피터는 힘 때문에 큰 희생을 치르지만, 책임을 지고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진정한 영웅의 탄생이다. 그 와중에 이 작품에서 비롯된 멀티버스로 세상의 위험은 커져간다. 그걸 다시 디즈니+ 오리지널 콘텐츠인 <완다비전>으로 풀어내는 마블을 보며 다시 한번 감탄한다. 새로운 축제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007 노 타임 투 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