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속먼지 Aug 25. 2019

올해는 말하리라. 그 귀한 장남에게 강남집을 물려주셔요

결심한 걸 어떻게 아셨는지 요즘 말을 아끼신다.

남편의 누나가 아기를 가졌을 때도 나에게 임신을 이야기하고, 남편의 누나가 아기를 낳았을 때도 "신의 선물은 많으면 좋으니 너희도 얼른 가져라"라고 하신 것들이 나는 신경쓰지 않는 척 하였지만 사실 싫었다.


축하해주던 마음에 재뿌리는 기분이기도 하고, 당장 애기 낳는다면 이 집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뭔데요, 돈 아깝다고 아기 내복도 충분히 안 사다 놓고 기저귀는 늦게 갈아가며 아등바등 우당탕탕 아기 겨우겨우 키우면서 살기는 싫은데, 그렇게 안살도록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싶었다.


“요즘 아이 키우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데요. 제 커리어는 또 어떻게 하라구요” 이렇게 말하면 어머님은 아이는 낳으면 다 커. 너무 애를 귀하게만 키우려고 하면 안돼 하신다. “저는 아기 낳고 등에 엎어매고 이사다니면서 애 키우기 싫어요. 안정되면 키울래요.” 말하면 어머님은 얘, 그렇게 애 키우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된다그러니, 다 그렇게 키우는거지 하신다.


어머님이잖아요, 그렇게 애 키운 사람.


아이 낳으면서 바로 시부모님이 살던 강남 집 물려받으시고 시어머님은 경기도에 있는 주택으로 농촌살이 하러 가셔서 단번에 강남 주택 소유자로 일평생 이사 걱정 없이 아이 키우신 분, 어머님이잖아요.


이런 말은 당연히 여지껏 못하고 몇 년을 보냈다.






또 한때는 “저희 부모님이 뭐를 선물해주셔서요.” “이 차도 곧 바꾸려구요.” 이런 말을 할 때면 어머님은 “어휴, 그러지말고 집을 사는 건 어떻니” 하시는 것을 듣고 어라, 이상한데. 우리 부모님 돈으로 뭔가를 하려하는데 거기서 집 얘기가 왜 나와? 싶었다. 그럴때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 주름 깊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정확히 뭐가 문제인진 모르겠고, 생각해본적도 없어 그냥 그 느낌을 기억해두었었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만나 얘기를 하다가, 어 그러고보니 우리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했는데 좀 이상해. 가볍게 엄마아빠가 뭐만 사준대도 저러시니까. 하니 내 제일 친한 친구 중 하나, 에에?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피식하며 말한다. “그래도 좀 기대하신 게 있나보네. 믿을 구석 있다고 생각하시나보지.”





결혼하면서 집을 구할 때, 우리는 사회인이 된지 1년만에 결혼을 했기때문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어차피 우리가 5년 뒤에 결혼해도 우리 돈으로는 절대 자립 못하니 일찍 결혼하며 철없을 때 각자 부모님에게 부탁하여 결혼하자는 전략(?)으로 나를 결혼의 세계로 꾀어내었고 나름의 타당성에 설득(?)되어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구할 집의 절반 금액을 당연히 내주셨고 내가 몫 좋은 곳의 집과, 가성비 좋은 집을 고민할 때 당연히 더 가고싶은 곳을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본인들의 예산은 1억이 넘지 않는다고 하셔 우리는 가성비 좋은 집을 골랐다. 그냥 가능하신 선에서 가능한 만큼만 도와주시면 나머지는 우리 집에서 해가겠다고 할까 싶기도 했으나 아니, 효도는 공평히 할텐데, 2주에 한 번씩 양가 들리는 것도 공평히 할텐데 싶어 그때마다 공평하지 않았던 집 생각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님 본인은 강남 집 떡하니 받아놓고 집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1-2억만 준다는 심보가 밉게 느껴져 그냥 우리 집에서도 딱 그만큼만 받아왔었다.


그런데 집을 절반씩 도움받아 구하고 나니 남편과 가구 넣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머뭇거리며 자기 어머니는 혼수는 여자쪽에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단다. (지금 생각해도 열받네) 무튼 내가 그런 법이 어딨냐며 그럼 집 다 돈 내시라고 했고 남편은 자기가 해결하겠다며 어머님과 전화하더니 반 구해오겠다 했다. 그걸 들은 우리 엄마 왈, 그 짠순이 시어머니한테 혼수 맡겼다가 다 쓰러져가는 가구 해올까 무섭다, 그냥 엄마가 다 해줄게!


하지만 나는 결혼할 때 이미 시어머니에게 심술이 나있던터라 그럴 순 없다며 남편에게 반을 꼭 받아오라 하였고, 결국 타협점은 전자기기는 남편네, 그 외는 우리 집이 하기로 하였다. 근데 우리집은 결혼할 때 축의금을 받지않아 내 친구들은 나에게 각종 청소기며 가습기며 전자레인지 등을 선물을 주었고 결국 구매해야하는 전자기기는 TV와 냉장고밖에 없었다. 사실 에어컨과 세탁기도 필요했는데 어머님 왈, “너가 더위를 많이 타니? 2인가구인데 세탁기를 어떻게 놔야하나? 나중에 새집 구하면 거기 다 빌트인일텐데 사는게 좀 애매해..”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조만간 저한테 반포 자이 사주실 계획이라도 있으세요? 깔깔깔” 나는 해맑게 철없는 모습으로 이런 말 하는것이 주특기다. 무튼 결국 우리 이모가 최고급 드럼 세탁기를 선물해줬고 어머님 아버님은 티브이와 냉장고를 선물해주셨다. 집은 반반이었으나 혼수는 시댁 200만원, 우리집 2,000만원쯤 되었으려나. 쳇.




처음엔 그래도 우리 시댁이 많이 어려운가보다. 운좋게 나를 며느리로 받게되셨으니 내가 그럼 좋은 구경 많이 시켜드려야지 싶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보니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물려받은 온갖 아파트며 상가가 다 재개발 중이라고 하고, 전혀 어려운 가계의 분들이 아니셨다. 오히려 부모대를 비교하면 우리 엄마 아빠보다 훨씬 부유한 가정에서 크고, 할머니 돌아가시고 유산으로 받은 것이라곤 할머니 앨범 하나이던 우리 아빠에 비해 정말 ‘유산’이 있는 집이었다. 어머님은 용돈벌이로 1억원짜리 오피스텔을 사서 의대생들에게 세를 놓고 월세를 70에서 90으로 올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집이 잠깐 비는 시간에 잠시 남편 친구가 들어가서 살면 안되겠냐는 남편 제안에 어머님은 “그 집은 비는 시간이 없어. 바로 내놓자마자 나가거든”이라고 대답하는.


여하튼 여러모로 가까이에서 보니 시댁이 모든 것에 돈을 아끼고 인자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인심이 곳간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곳간이 작아서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곳간에 더 많은 곡을 쌓고 싶어하는 욕심 때문 같았다. 그러고나니 안쓰러운 마음보다는 탐욕스럽게 보인다는 생각이 더 주가 되었고, 그만큼 시댁에 대한 존경심은 줄어만 갔다.


가만히나 있으면 좋으련만 가끔 만나면 딸 낳은 형님에게 “그럼 얘 다음에 동생으로 아들 낳으려고?” 라고 말하는 할머님이나, 사위가 차례지내러 못온다는 말에는 “No problem!” 이라고 대답하더니 며느님이 못온다는 말에는 “하이고.. 나참..” 이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네 남편은 장남이잖아. 장남은 또 빨리 애기를 낳아야지”라고 말하는 이모나, “남자가 세대주를 해야지, 왜 너가, 무슨 여자가 한국에서 세대주를 하니”라고 말하는 어머님을 볼 때면 나의 빠직함을 그 누구도 달랠 수 없다.





하여 나는 어느 순간 이런 것을 결심한 것이다.


또 아들이 귀하다고, 장남이 귀하다고, 너가 그 귀한 장남과 결혼한 며느리라고, 그러니 아이를 낳으라고 아니면 맏며느리의 도리를 다하라고 말씀하시거든 저는 이렇게 말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어머님 그럼 그 귀한 장남한테 어머님이 물려받은 강남 집을 물려주세요! ^^




나는 준비가 되었는데 본능적으로 쎄함을 느꼈는지 요즘 시댁에서 별 말 없으시네. 이토록 시댁의 채근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다니 마법의 문장이로소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업하는 사위는 "김원장" 사업하는 며느리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