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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y 22. 2018

내가 갑자기 EOS에 빠지게 된 사연

HCI석사과정이 불현듯 블록체인 산업에 뛰어든 장황한 이야기

3년 전 이맘때쯤에도 정확히 이와 같은 일종의 '부르심(calling)'을 받았다. 종교적인 '부르심'이 아니라(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무교에 가까우니 아니라고 하겠다), '아 이걸 해야겠다'라는 강렬한 느낌 말이다. 3년 전에는 한국 HCI학회에 갔었다. 정확히는 Will Odom의 Slow Technology 논문(photobox)을 보고 단숨에 매료되었다. 마치 첫눈에 누군가한테 반하는 느낌처럼, 머릿속에서 무언가 파밧-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걸 해야만 한다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똥고집 말이다. 그리고 2년간 HCI랩에서 인지과학을 공부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슬로우 테크놀로지를 연구하진 못했지만, 나름의 열정과 흥미를 갖고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CHI 학회에 가게 되어 포스터 발표도 하고, 논문도 몇 편 썼다. 


하지만 2년 내내 마음 한 구석엔 의문이 있었다. 


Artificial Things

머신러닝의 개념에 대해 배우고, 인공지능 디바이스와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탐구하면서, 과연 이 방향이 모두에게 좋은 방향일지를 고민하는 것 말이다. 내가 애초에 슬로우 테크놀로지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자동화에 대한 강한 반발이 있었다. UX를 탐구한답시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거라는 뉴스를 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연 저 멀리서 봤을 때 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인공지능은 많은 부분 유저가 하던 action들을 자동화하고,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인데 다 알아서 해주는 게 꼭 좋은 걸까? 하는 당시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 혼자 마음속에서 품고만 있었다. 


또 구글 광고를 차단할 수 없을까를 매번 생각하고, 내 데이터를 왜 맘대로 인공지능에게 feed 하는 건지 의문을 가졌지만 인지과학과 HCI 연구가 순수하게 참 재밌어서 계속했다. 하지만 모바일/인공지능 패러다임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제대로 의문을 가지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미 자동화와 대체가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연구원들이 딥러닝을 연구하는 상황 안에서 내가 품었던 질문은 굉장히 순진(naive)하고 쓸데없는 질문이라 여겨졌다. 모두가 질문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개선할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질문을 글로 써두긴 했었다. 아래의 글만 보면 기본적으로 불만이 많아 보인다.

The reason for the Existence: A Common Dystopian View on Automation

The Technology that Embraces the Irreplaceable

A thought on Reciprocity in the Mixed World of Human Drivers and Autonomous Cars


우연히 블록체인

3년 전 연구실에 들어오기 전, 우연한 기회로 한 학기 동안 비트코인을 공부했었다. 비트코인으로 당시 몇 안 되는 비트코인을 받아주는 카페에서 거래도 해보고, 비트코인을 사두기도 했었다 (물론 얼마 못 가 팔았다. 샀다는 사실을 까먹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 당시엔 호기심이었고 별 생각이 없었다. 마이닝 풀이 커지고 어마어마한 전기를 까먹는 것을 보며 이건 길이 아니야,라고 단순히 접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EOS와 댄 라리머를 알게 되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 든다. 지금껏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가 하는 일이 Aligned 된 느낌이 든다.

우선 Block.one의 CEO Branden Blumer의 유튜브 영상으로 EOS와 댄 라리머, 브랜든 블루머를 소개한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아래의 영상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s9xaZCScNL0
"Decentralizing usually refers to decentralizing power,  so when you say decentralize everything, we want to make everything resilient not just to corruption but to any type of interference. The way delegated proof of stake works, the real-time consensus is controlled by over 20 people, which is significantly more decentralized in terms of censorship resistance and real-time control and influence how many people are verifying things."
- Dan Larimer

 

"This technology allows us to all come together and start governing ourselves in a way that we want to be governed. This allows the masses to continually be part of the spending process, the budgeting process, the governance process." - Brendan Blumer


구글 같은 서비스가 굳이 광고 수입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다는 생각은 애초에 UX scene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했다. 최소한 내가 배운 UX는 당연한 가정(구글은 광고수입이 있어야 하고, 광고를 접하는 경험이 어딘가에 존재해야만 한다)을 수용한 채로 사용자 경험을 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억지로 보이는 광고가 짜증 나면, 그걸 없애는 것은 새로운 BM을 만드는 일이고 UX researcher가 하기엔 조금 멀리 나간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런데 EOS를 공부하며 깨달은 것은 무한 광고의 불쾌함이 인터넷 2.0 서비스들이 UX를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인터넷 이코노미의 문제이며, 근본적인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OS 블록체인은 그런 이코노미 모델을 가능하게 하며, 그래서 뛰어들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으로, 라리머가 쓴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관한 글을 읽었다. 블록체인으로 새로운 'Economy Model'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내가 마음 한편 깊숙이 갖고 있던 질문을 건드렸다. 자동화는 분명히 '위협'이 될 수 있고, UX를 한답시고 눈과 귀를 닫고 있어선 안된다. 그렇다고 자동화를 막는 것이 답은 아니다. 


대신, 자동화된 편리한 세상이 와도 사람들이 여전히 돈을 벌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라리머의 이오스는 그래서 멋지다. 아름답다. 그는 유토피안인 동시에 UX를 고민하는 블록체인 디자이너이며, 설령 EOS 메인넷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라리머는 이미 성공했다 (라리머가 왜 UX를 고민하는 블록체인 디자이너인지는 추후 미디엄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새로운 이코노미 모델의 비전을 보여주었고 EOS 커뮤니티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오스 ERC-20 토큰의 가격과는 관계없이,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실제로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걸 떠나서 내가 지금 EOS에 뛰어든 이유는 라리머의 EOS가 너무도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정말 단순히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너무 재밌다.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 디바이스를 만드는 데에 한몫하는 것보다, EOS를 알리고 다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그리고 UX필드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EOS의 가치를 알고 뛰어들 수 있도록, 쭈욱, 열일할 것이다.


P.S. 아직 EOS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 글을 추천한다.

크립토버스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EOS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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