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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찻집 주인장 Apr 07. 2020

[안녕, 이스라엘] 예루살렘

다시 찾아온 오래된 도시에 샬롬을!

이스라엘에 온 지 일주일째다.

 

일주일 전,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입국 심사대를 지나 자동 출입문으로 나와 사방에 모음 표시가 없는 히브리어가 가득 쓰인 간판들을 보며, 이스라엘에 다시 왔음을 실감했다.


16년 전, 이른 새벽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벤 구리온 공항 문을 나서며 처음 얼굴로 맞았던 차가운 공기의 느낌이 기억났다. 2003년 10월, 제법 쌀쌀한 새벽 공기였다. 23kg의 배낭 짐을 등에 업고 호스텔을 찾아 새벽 달빛 아래를 걸었던 이십 대 초반의 당돌하고 귀여웠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배낭이 너무 무거워 몸이 뒤로 넘어갈 뻔했던 아찔한 기억에 순간 우스웠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 그때의 추억이 공항 문을 나서는 나를 반겨주어 고맙고 따뜻한 기억과 함께 두 번째 이스라엘 여정을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트램(Tram)이 생긴 덕분에 가고 싶은 주요 장소는 혼자서도 쉽사리 찾아다닌다. 가다가 길을 잘 모르면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일단 그냥 걷고 본다. 날이 따뜻해서 걷기에 더없이 좋다.


(오른쪽) 예루살렘 트램(Tram) Light Rail Route, (왼쪽) 종교인 전통복장의 유대인들



예전에 한 두어 번 다녀갔던 예루살렘 시내의 풍경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을 훌쩍 넘긴 기억을 정확하게 되살려내기가 쉽지 않지만 사람의 기억력이란 게 참 신기한 것이 몇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찾기 시작하니 기억이 살아난다. 이십 대 초반 뇌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할 때 몸소 걸어 다니며 익힌 기억이라 오래 남는가 보다 생각했다.


구도시 유대인 구역(Jewish Quarter) 골목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은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다. 예루살렘 도심의 한 부분에 불과한 구도시(Old City)는 유대인 구역, 무슬림 구역, 아르메니안 구역, 크리스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서로 다른 네 개의 종교를 믿는 서로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 성 안의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다. 외곽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성 밖의 구역과 구분되어 있고, 여덟 개의 성문을 통해 성 안과 밖으로 출입한다.  



예루살렘 구도시 구역 분할 지도 http://en.wikipedia.org/wiki/Armenian_Quarter



유대인과 아랍계 무슬림들은 자기 민족이 이스라엘 땅의 원래 주인이라고 서로 주장하며 오랫동안 분쟁해왔고, 지금까지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아랍인들의 테러와 이에 대한 유대인들의 무력 진압, 보복테러, 제재 등 두 그룹 사이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땅의 전쟁터가 바로 이스라엘이고, 예루살렘은 그 핵심에 있다.

예루살렘 구도시(Old City)의 Jaffa Gate 부근 성곽 외벽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에 갈 거라고 했을 때, 한결 같이 '위험하지 않아?'라는 반응이었다.

"응, 위험은 하지. 근데 요즘은 한국이 더 위험한 것 같아."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느끼고 경험하는 위험과 공포에 비하면, 이스라엘에서 겪는 위험은 누가 보아도 눈에 드러나 보이는 갈등과 공포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차라리 덜 위험한 것 같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거리를 매일 혼자 걸어 다니면서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본 적은 아직 없다. 오히려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대인에게든, 아랍인에게든, 다른 인종의 관광객에게든 배려받고 도움을 받는 일들이 더 많다. 나의 조국에서 종종 벌어지는 사건처럼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테러의 표적이 되는 공포는 아직 느껴본 적이 없다.


해질녘 예루살렘 구도시 성곽


이스라엘은 낮 동안 햇살이 강하게 내리고 일조량이 풍부한 편이다. 선글라스 없이 낮 동안 시내에 돌아다니면 금세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게 되어 가까운 곳에 나가더라도 선글라스를 꼭 가지고 다닌다. 해가 질 무렵의 예루살렘은 어느 곳이든 참 아름답다. 낮 동안 새파랗게 떠 있던 하늘과 붉고 노란 노을이 경계를 지으며 푸르스름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단 호텔(Dan Hotel) 테라스에서 바라 본 예루살렘 노을



이곳에선 유대인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면 '샬롬(Shalom)'이라고 한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점이든, 음식점이든, 거리에서든, 가정집에서든 만나면 '평화' 혹은 '평안'이라고 서로를 반기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수 천년 동안 이 땅은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수없이 '샬롬'을 주고받아왔다. 오늘도 거리를 거닐면서 이들이 건네는 진짜 샬롬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의 입에서 조금 더 많은 샬롬이 오가면 언젠가 가능해지려나. 누군들 알 수 있을까마는 나도 이 땅에 진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하루라도 더 빨리 보고 싶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만이라도 '샬롬'을 한 번 더 보태려 한다.


모두에게 '평화를'

Shalom!

! שלו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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