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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알라 Apr 29. 2020

영국에서 느낀 코로나 봉쇄령

20200429

전 세계가 코로나 뉴스로 가득 찬 2월에도 런던은 조용했다. 아무렇지 않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출퇴근을 했다. 소수의 회사들이 슬슬 재택근무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남 얘기 같았다. 워낙 재택을 싫어하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재택을 허용해왔지만 악용을 하는 직원들이 간간이 있어 재택을 특수한 상황 외에는 금지시켰다). 


회사는 Piccadilly Circus에 위치해 있고 그 근처에는 큰 차이나 타운이 있어 동양인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마스크를 쓰는 동양인들이 보였다. 조금씩 두려워졌다. 특히 런던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사는 대도시에다가 Piccadilly Circus는 런던에서도 중심지인 곳이어서 코로나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들을 비아냥거리며 직원들이 코웃음을 쳤다. WHO가 마스크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글을 접한 이후로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떠다니는 세균 또는 바이러스 입자가 공기로 지나치지 않고 마스크 안에 갇혀 더 번식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기가 찼지만 더 이상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고, '너는 너 갈 길 가라, 나는 내 갈 길 갈 테니'라는 마인드로 아마존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30장 구매했고 점심시간에 약국을 들려 작은 손세정제도 구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세정제는 분명히 여유로웠다.


3월 16일 저녁에 회사 메일을 받았다. 당시에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1,543명이었다. 영국 정부는 펍과 극장, 영화관 출입은 물론 불필요한 여행 등 사회적 접촉을 최소화할 것을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이어서 기업들에게도 재택근무를 권장했다. 회사 CEO가 내일부터 우리도 재택을 돌입해야 해서 오전까지 출근하고 오후에는  알아서들 퇴근하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재택이 시작된 지 6일 후, 3월 23일부터 3주간 영국 봉쇄령이 저녁 시간에 내려졌다. 'Lockdown'... 참으로 생소한 단어였다. 아직도 3월 23일 저녁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기사를 접하자마자 동생과 남자 친구에게 마지막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집 근처 가까운 타이 식당에 가서 거대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정말 이게 마지막 외식이 될 줄이야... 하나 감사한 건, 남자 친구가 내 동네에 살아서 락다운이 내려져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집 앞으로 이사 온다고 했을 때 기분이 묘하면서 걱정이 앞서며 좋았는데 이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매일 기사들을 몇 시간 씩 확인하면서 무슨 제한령이 내려지고 확진자 수는 얼마나 많아졌는지 체크하기 바빴다. 락다운이 내려지고 첫 일주일은 말 그대로 펍과 극장, 영화관 출입을 금지시켰고 모든 식당들과 카페도 테이크아웃만 허용시켰다. 다행히도 슈퍼마켓과 약국은 정상영업이었다. 



동네 대형 마트 오픈한 지 30분도 안된 상황









하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슈퍼마켓에 장을 보려 내려갔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는 백인들이 80% 사는 동네로 마스크를 쓴 백인들을 보는 게 다소 신기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슈퍼마켓의 재고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게 바로 듣기만 했던 '패닉 바잉'인가? 신선한 야채, 과일, 고기 그리고 계란들이 텅텅 비어있었다. 결국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던 브랜드의 우유 한 각과 오렌지 주스 그리고 주로 사 먹지 않던 재료들을 소량 구입해 올라갔었다. 













Waitrose의 텅빈 재고 모습



사람들이 패닉 바잉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 마켓들은 이 심각성에 대해 논의를 하고 몇 가지 규칙들을 새로이 만들었다. 마트마다 취약계층이나 NHS 의료계 종사자 등의 key worker들이 쇼핑할 수 있는 시간대를 따로 마련해두었고 이들은 신분증을 제시해야 이 시간대에 입장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제품을 마켓마다 2-3개까지 구입할 수 있는 개수 제한령도 내려졌다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취약계층이나 의료계 종사자들이 오프라인 마켓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대



이런 규칙들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마켓 재고들은 서서히 괜찮아졌다. 


락다운의 2-3주 차에는 마켓들이 2m 사화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대형 마켓은 17명까지 출입 통제시켰고 소형 마켓은 규모에 따라 1-10명 출입통제를 시켰다. 그러기 때문에 피크 타임은 줄을 서는 데만 30분 정도 소요돼서 가능하면 바쁜 시간대를 피해야 한다. 우리 동네 체인 약국도 작은 규모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명씩 출입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180도 바뀌었다. 장을 보러 가는 것이 쉽지 않기에 가기 전에 쇼핑 리스트를 체계적으로 작성하는 습관을 들였고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욕심부리지 않고 내가 양손으로 들 수 있는 양만 구매하기 시작했다. 하필 가정용 프린트기도 작년 말에 처분해서 우편물이나 편지를 보낼 때에는 이웃에게 인쇄를 부탁하면서 서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체크하는 등 우애도 쌓아가는 중이다. 


우리 플랫의 공용 마당은 규모가 작지만 잔디밭이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락다운이 시작되고부터 이 정원은 내게 더 소중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테라스에 나가서 라떼 한 잔을 마시면 기분 정화가 되기 때문에 내 하루 일과가 되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남자 친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갓 찐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광합성을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헬스장도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소박하게 동네를 조깅하거나 산책하는 게 내 유일한 재미였다. 남자 친구와 평소 가보지 않던 곳들도 탐색하며 우리는 목적지 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심심하면 민들레 씨도 불어보고 잠시 앉고 싶으면 낮은 돌 담벼락에 앉아서 쉬고 갔다. 또 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던 한인마트도 왕복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서 운동 겸 장도 보고 오며 해보지 않던 것들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락다운으로 인해 사소한 것들을 다시 감사하기 시작했고 내 소확행들을 하나씩 늘리는 재미도 찾고 있다. 사람들과도 만남을 하지 않으며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왔던 스트레스도 없어졌다. 늘 이것저것 신경 쓰는 일이 많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적었는데 이번 계기로 건강한 나로 다시 되찾아 가는 중인 거 같아 기분이 좋다. 


복잡했던 내 삶을 다시 원점으로 리셋해서 심플 라이프를 사는 요즘 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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