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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찬 Nov 26. 2019

김은국, "순교자"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인가

순교자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신, 죄,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다룬 묵직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을 앞두고 인민공화국 비밀경찰은 평양에서 목회를 하던 목사 14명을 감금한다. 비밀경찰은 감금된 목사들에게 인민공화국을 지지해 줄 것을 강요한다. 목사들이 협조를 거부하자 비밀경찰은 그들을 고문하다가 결국 처형하기로 마음 먹는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목사들 중 일부는 목숨을 구걸하는 등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비밀경찰은 처형을 실시하기 전 마지막으로 1분의 기도 시간을 허락한다. 목사들은 지도자격인 박 목사에게 몰려가 기도를 부탁하지만 박 목사는 최후의 순간에 신을 부정하고 기도를 거부한다. 처형이 시작되고 12명의 목사가 차례차례 목숨을 잃는다. 처형이 진행되던 중 비밀경찰의 한 중간간부는 평소 자신이 싫어하던 지휘자가 목사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고, 상부의 허가를 받아 지휘자를 비롯한 보좌관 셋을 처형한다. 그 덕분에 신 목사와 한 목사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투옥됐던 14명의 목사 중 신 목사와 한 목사만 살아 돌아오자, 사람들은 이들이 동료 목사를 배신한 대가로 살아남게 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신목사에게 처형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라고 요구한다. 투옥과 고문, 처형 당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알고 있는 신 목사는 고뇌하기 시작한다. 처형을 앞두고 일부 목사가 목숨을 구걸하고 박 목사가 하나님을 부정한 사실을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교인들이 바라는 것처럼 죽은 목사들을 순교자로 포장하고 자신은 배신자의 십자가를 질 것인가.


육군본부 정치정보국 소속으로 소설의 주인공인 이 대위는 신 목사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신 목사는 전시의 비참한 민중들을 위해 결국 거짓말을 하는 편을 선택한다.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불편하고 비참한 진실은 공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숨겨야 하는가?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단아로 자랐다. 결혼 전에도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교회에 다녔고, 결혼 후에도 이런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신앙을 가지라는 부모님과 아내, 아이들의 오랜 설득이 있었지만 결국 꾸준히 교회를 다닐 수는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 라는 신앙의 첫번째 관문을 넘을 수 없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인혁당 사건이 일어났을 때 도대체 무얼 하고 계셨단 말인가? 차가운 바닷 속에서 죄없는 학생들이 죽어갈 때도 지켜만 봤단 말인가?


순교자는 독자에게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작품에는 진실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약하고 힘없는 인간 군상이 있을 뿐이다. 신이 정말 존재하는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선을 구하고 악을 멸하지 않는지 인간으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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