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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찬 Sep 25. 2023

아버지의 해방일지

망자가 남긴 마지막 선물

“아버지의 해당일지”가 손에 들어온 것은 바람이 매섭던 작년 겨울의 일이다. 생일 선물이라며 책을 보내준 부산 출신 후배는, 자기는 경상도 출신이라 등장인물의 대화를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선배는 전라도 사람이니 전부 알아먹을 수 있을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책을 받아들고 보니, 표지가 세련된 데다가 “해방일지”라는 단어가 작년에 유행했던 어느 드라마의 제목을 떠올리게 해서, 막연히 전라도로 귀농한 어느 청년의 사랑과 어려움을 그려낸 작품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작품은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이제는 비정규 유격대원을 뜻하는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생경한 시대가 되었다.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갈등은 여전하지만, 남한이 체제경쟁에서 북한에 완승을 거두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이념 대립은 더 이상 한국사회의 중요한 의제라고 보기 어렵다. 한때 군사독재, 천민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이론적 바탕이자 자본주의의 대안이라고 여겨지던 사회주의는 그 동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바꾸어 말하면, 빨치산이라는 소재는 이제 전혀 “힙”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치산 아버지의 장례식을 다룬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5만 부가 넘게 팔렸고, 더욱이 책을 구매한 사람 중 상당수는 MZ 세대였다고 한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딸의 이야기가 세대를 초월해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각자의 사연을 가진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진지한 주제를 가볍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뛰어난 역량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용서와 화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따뜻한 작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사회주의를 택한 대가는 가혹했다. 전장에서 수많은 동지를 떠나보내야 했고, 자신도 고문 후유증으로 눈의 초점을 잃고 사시가 되었으며, 평생을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살았던 기간은 인생에서 단 4년에 불과했지만, 사회주의자라는 정체성은 아버지의 남은 인생을 평생 동안 규정한다.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가 한국 사회에서 견뎌야 했던 차별과 가난이 이야기의 주요한 소재로 쓰였다고는 해도, 그게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작가는 이데올로기란 과연 인간에게 무엇인가, 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과 이데올로기 중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할까. 작품에는 이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 등장한다. 하나는 아버지의 초등학교 동창인 박 선생 이야기다. 조선일보 구독자이자 교련 선생 출신인 박 선생은 이데올로기만 놓고 보자면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와 상극인 사람이다. 하지만 박 선생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용돈을 대신 관리해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남은 돈을 내역까지 꼼꼼하게 적어 주인공에 돌려주는 올곧은 사람이다. 아버지도 박 선생에 대해 “사람은 갸가 젤로 낫어야.”라고 평가한다. 반면에 아버지와 함께 활동했던 빨치산들은 어떤가.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사선을 넘었던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자수를 했기 때문에 통일애국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처럼 누가 더 나은 인간인지는 그 사람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느냐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이데올로기와는 처음부터 무관한 이기적인 존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위의 시신을 직접 수습해줬던 사람은 끝까지 아버지에게 택시비를 갚지 않고,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보증까지 세워가며 돈을 빌려주었던 식당 주인은 돈을 갚지 않고 야반도주를 한다. 이처럼 인간이란 그저 자기만 생각하는 속물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나 아내가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람들을 욕할 때마다 아버지는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을 오히려 두둔한다. 작품을 읽을수록 주인공의 아버지야말로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그저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의 길로 들어섰던 시기는 토론으로 이념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이데올로기 때문에 언제든 죽임을 당할 수 있고, 나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은 죽일 수밖에 없던 야만의 시대였다.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남한에 남은 사회주의자에게는 가혹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었고, 누구도 그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


비극적인 현대사가 남긴 상처는 깊었지만, 그나마 사회주의를 믿었던 사람에게만 불이익이 미쳤다면 좀 더 견딜만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험난한 시절은 사회주의자의 가족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주인공의 작은 아버지는 면당위원장이었던 형이 자랑스러워 학교로 찾아온 군인들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자초하고, 그 죄책감으로 한평생을 술과 형에 대한 원망으로 보낸다. 큰아버지의 아들은 시험에 합격하고도 연좌제 때문에 신원조회에 걸려 육사에 가지 못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자신을 평생 원망한 것이야말로, 아버지에게는 가난과 사회적 차별만큼이나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해묵은 갈등만 다루는 건 아니다. 작품에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였던 노랑 머리 소녀가 등장한다. 베트남 출신 엄마를 둔 노랑 머리 소녀는 작품에 등장하는 유일한 청년 세대다. 주인공이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빨치산의 딸로 태어나 차별과 가난 속에서 살아온 것처럼, 소녀도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가난한 나라에 시집온 외국인 여성의 딸로 태어나 차별과 가난 속에서 성장한다. 소녀의 존재는 오래된 이념 갈등이 이제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다문화 가정이라는 또 다른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녀는 가정폭력과 가난 속에서도 미용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소녀의 이런 패기야말로 작가가 작품 속에 숨겨둔 희망의 보물상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망자는 세상을 떠나며 세상에 선물을 남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평생 형을 원망하던 작은 아버지는 화장장에 나타나 오열하고, 장례식장에서 훼방을 놓던 상이용사는 형을 잃은 슬픔 때문에 아버지를 오랫동안 원망했음을 절절하게 고백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한다.


특히 주인공은 빨치산 출신 아버지 때문에 모진 가난과 차별을 겪는다. 아버지의 좌익 전력 때문에 사랑하던 남자와 결혼을 앞에 두고 헤어지는 아픔까지 겪는다. 생각해 보면 주인공이야말로 누구보다 아버지를 미워했을지 모른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태워주는 무등과 두껍게 눌린 누룽지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주인공이 커갈수록 가난과 연좌제가 주는 억압을 온몸으로 깨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진정한 화해에 이르게 된다. 아버지가 떠나며 남긴 마지막 선물은 용서와 화해였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마음 속에 담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사람도 사실은 꽤 괜찮은 사람일지 모른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라고. 그리고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과 화해하라고.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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