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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찬 Jun 18. 2024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한 인생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매일 엄청난 인기와 돈,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면, 음바페는 불과 19살의 나이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마크 주커버그는 26세의 나이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극히 소수라는 걸 잘 알지만, 그들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과 비교하는 걸 멈추기는 힘들다. 내 인생은 도대체 뭐지? 유명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성취를 거둔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면 나의 평범한 삶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이렇게 살다가 죽을 거라면 왜 굳이 살아야하는 걸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다만 그 시기가 남들보다 조금 빨랐을 뿐이다. 그녀는 7살 때 휴가지에서 아빠에게 묻는다.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과학자인 아빠는 자신의 생각을 어린 딸에게 가감없이 전달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아빠의 솔직한 대답에 밀러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한다.


시간이 지나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안정을 찾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만, 자신의 외도로 남자와 헤어지면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실연으로 방황하던 중 그녀는 우연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된다. 스탠포드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조던은 똑똑하고 성실한 생물학자로 평생을 물고기 수집에 바친 인물이다. 조던은 오랫동안 수집한 물고기 표본들이 지진으로 파괴되고, 랑하는 아내와 딸, 제자를 잃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신의 연구를 계속한다.


밀러는 무엇이 조던으로 하여금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해주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의 삶을 궤적을 쫓아간다. 조던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낸다면, 그녀 역시 무의미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조던은 루이 아가시를 선생님으로 만난다. 루이 아가시는 신의 뜻을 밝히기 위해 생명체를 분류하는 연구를 해온 사람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인간을 정점으로 서열이 정해져 있는데, 생명체를 서열에 맞게 분류하는 과정에서 신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조던은 스승을 존경했으나,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게 되면서, 신의 뜻을 밝히기 위해 생명체를 분류한다는 스승의 입장과 결별한다. 조던은 생명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고등하게 진화했을 뿐, 신의 뜻과는 무관하다고 결론내린다.


비록 신은 버렸지만, 생명체에 서열이 있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던 조던은 결국 우생학에 빠진다. 우생학에 빠진 조던은 장애인 등 자신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열등한 사람들은 인류의 진화에 방해가 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조던의 불굴의 의지를 동경하며, 그 의지의 기반을 찾으려던 밀러는 조던이 우생학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우생학을 기초로 지어진 강제수용시설에서 불임수술을 당한 피해자를 직접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존경하던 조던을 오히려 증오하게 된다. 조던이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며, 이들 덕분에 누군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밀러는 인간이 한낱 우주의 먼지가 아니며, 모두의 삶은 중요하다고 소리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반전이 하나 숨어있는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류학자들의 결론이 바로 그것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분류학자들에 따르면, 물고기는 바로 물에 산다는 그 사실 때문에 하나의 종으로 분류되어 왔을뿐,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조던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분류한 '물고기'라는 범주는 애초에 하나로 묶을 수도 없는 임의의 꾸러미에 불과했던 것이다. 밀러는 이를 통해 조던의 일생의 노력을 허물어뜨리고, 조던의 연구에 기반한 우생학의 기초를 파괴한다.


나의 삶이 지나치게 평범하다고 느껴질 때는 가끔 조던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불굴의 의지와 탁월한 지능을 가진 살인마가 되는 것보다야, 평범하기는 해도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이 훨씬 의미가 있을 테니까.



이병찬 변호사(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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