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민기 선생님의 1주기를 기념하며.

by 이병찬

며칠 전에 김민기 선생님의 1주기가 지났다.

김민기 선생님에 대해서는 "상록수"와 "아침이슬"의 작곡가라는 것 말고는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SBS의 3부작 다큐멘터리가 선생님의 생애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큐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얘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씨의 중재로 가왕 조용필과 김민기 선생님이 어느 술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별다른 말 없이 한참 술을 마시던 조용필은 술집 구석에 있는 낡은 노래방 기계를 켜고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조용필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신같은 존재 아닌가. 그런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자기 노래를 불렀다면 답가를 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김민기 선생님은 마이크를 잡지 않으셨다고 한다. 수많은 명곡을 남겼음에도 김민기 선생님은 자기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도 싫어하셨다고 한다(학전에서 10년 넘게 공연을 한 후배들도 그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렇게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꺼려하던 김민기 선생님이 기꺼이 노래를 부른 곳이 있다. 인천의 어느 피혁공장이다. 군대를 제대한 김민기 선생님은 먹고 살기 위해 공장에 사무직으로 취직한다. 고된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김민기 선생님은 짧은 점심 시간 동안 기타를 연주하며 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조용필이 자기 앞에서 노래를 불렀음에도 답가를 하지 않았던 김민기. 그렇게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던 김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노동자들을 위해 기꺼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던 김민기.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 어른이 계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가 만든 보석같은 노래들은 그저 덤일 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