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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May 19. 2019

슬픈짐승

떠난 반려동물에게 뒤늦게 전하는 나의 안부 - 1. 장례식

01. 장례식


그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청이가 내 옆에 누워있었다.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한 번도 내 곁에 온 적 없던 아이였다. 몸은 여전히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전날 연차를 내고 오늘은 출근을 하기로 했던지라 더 같이 있지 못하고 일어나야 했다.


화장대 앞에서 출근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청이를 한번 더 살피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청이의 아래에서 짙은 갈색의 물이 나왔다. 일으켜 세우니 도로 고꾸라졌다.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언니와 병원과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먼저 도착한 언니와 형부는 청이의 상태를 보고 뭔가를 예감한 것 같았다. 형부는 청이가 곧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죽을 것 같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말이, 몇 주 동안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그 말이 청이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화가 나기보다 무력함을 느꼈다. 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병원에 가기 위해 청이를 안았을 때. 청이가 무섭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급하게 내려놓자 가쁘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모든 게 멈췄다. 모든 게, 멈췄다.


나는...

나는 원체 비관적인 사람이라 인생은 원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꽤 오래전부터 인정해 왔다. 취직도, 꿈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모든 건 대개 흐르는 물살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그 물살에서 나는 떠다니는 나무 조각 같은 거라고. 살면서 겪은 좋고 나쁜 일들은 보통 나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었기에, 인생이 딱히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청이만은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청이는 살 수 있고, 내가 그렇게 해줄 거라고. 지치지 않을 자신 있으니 내가 노력하겠다고. 그렇게 비관적인 내가 단 한 번도 청이의 죽음을 상상하지 않은 건 절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청이가 죽었다. 청이가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던 큰 부분 하나가 허물어졌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청이를 품에 안고 누웠다. 푸석한 털. 억지로 먹이느라 지저분해진 입가. 우리 청이는 깔끔한 걸 참 좋아했는데.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우리 청이 기분 좋아지게 목욕도 시켜주려고 했는데. 평소처럼, 아프기 전처럼 품에 꼭 안긴 청이는 곧 돌아올 것 같았다. 청이야, 돌아오렴. 제발 돌아오렴. 사랑하니까 제발 돌아오렴. 청이는 이제 아파 보이지 않았지만 내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상황일 때, 그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 건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청이를 안고 누워있는 동안 남자친구는 장례업체를 알아보고 몇 군데에 연락해 스케줄을 물었다. 그중 당일 장례가 가능한 곳은 한 곳이었다.


당일 장례인 편이 나았다. 하루 정도는 반려동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는 듯했지만. 내겐 그럴 자신이 없었다. 싸늘해진 청이를 부모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돌아올 리 없는 아이를 안고 밤새 우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절망스러웠다.


몇 시간 후 운구차가 왔다. 평소 입던 외투에 청이를 감쌌다. 마지막으로 청이를 안고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14년 동안 청이가 돌아다녔던 베란다, 내 방, 거실, 안방과 화장실까지. 떠나기 전에 청이도 미련이 많이 남았을 것 같았다.


장례식 자체를 처음 해봤는데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사람과 다른 것 같진 않았다. 운구차라기 보단 장례식장까지 픽업을 위한 승합차였지만, 운전기사님은 매우 정중했다. 몇 시간쯤 지나 경기도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직원분들도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보통 반려동물이 생전에 좋아했던 물품들(불에 탈 수 있는 것)을 관에 넣어준다는데. 청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나였어서 달리 넣어줄 게 없었다. 그저 잘 먹던 영양제 몇 알과 다 나으면 주려고 했던 쮸르 두 개 정도를 넣었다.


화장을 마친 청이는 옥색 단지에 담겨 나왔다. 나는 지금도, 그게 청이란 사실을 잘 받아들이기 어렵다. 낯설다. 아직도 내 입술과 손과 가슴엔 청이의 촉감이 남아있는데. 이런 조그만 단지 안에 든 것이 청이라니.


단지를 두 손에 안고 돌아오는 길. 상상했다. 내가 준 간식과 영양제 몇 알을 보자기에 싸고 먼 길을 떠난 청이. 가는 길이 배고프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이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무서워했는데. 겁이 많아 낯선 인기척만 느껴도 신경을 곤두세우던 아이였는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먼 길을 혼자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집에 도착하니 청이가 없다. 항상 누워있던 그 자리에 청이가 없다. 청이의 부재를 견뎌야 하는 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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