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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B Jun 10. 2016

관광객 답게 행동하기

영국 Day-2

이런게 시차적응 인걸까?



영국의 아침식사

한숨 푹 잘잔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새벽이었다.

원래 늦잠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터라 눈을 뜬 겸 그대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새벽의 푸른빛을 머금은 영국의 하늘이 나를 반겨왔다. 시계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리는 고요한 새벽에 홀로 템즈강을 내려다 보는 기분은 왠지모르게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했다. 그 묘한 기분과 정막함이 좋아서 나는 한참을 주방에 서서 창문으로 보이는 템즈강을 바라보았다.

동이트는 숙소의 아침 주방

한국에서 느꼈던 복잡하고 무거운 생각들이 모두 시커먼 강물 속으로 가라 앉는 기분 이었다.


함께 시차적응 중인 친구가 일어나고 우리는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식사는 시리얼과 토스트. 제대로된 서양식 아침 식사다. 원래 우리가 아침식사를 가리는 편은 아닌지라 양껏 푸짐하게 먹었다.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노릇하게 구어진 식빵에 누텔라잼을 발라 한사람당 두어장은 먹어치웠던 것 같다.


넉넉히 아침을 먹고 이른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본래 우리가 여행을 할 때에는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주의인 지라 누가 더 자고싶다거나 늦장 부리는 일 없이 통한것이 우리 여행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5월중순이 지나고 있는 시점인지라 유럽은 따뜻하거나 더울줄 알았는데 아침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짐이 될까 싶어 목에 두를만한 것은 챙겨오지 않았는데 첫날부터 당장 후회가 되었다.

오늘 오전 일정을 마치면 고민할 것도 없이 스카프라도 사야겠다고 다짐 했다.


첫날의 일정은 우선 가장 유명한 버킹엄궁전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근위병 교대식이 12시에 있기 때문에 그 앞에서 기다리려는 계획이다. 이리저리 지도를 보며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본래 길눈이 어둡고 친구도 낯선 나라에서 처음 찾는 길 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걷는 것을 택했다. 둘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버킹엄 궁전으로 가는 것은 꽤나 어려웠다. 어딜봐도 비슷해 보이는 건물들 때문이었다. 또 그 유명한 런던도심이 아닌가. 런던에서 택시기사를 하려면 복잡하게 얽힌 런던시내의 지도를 모두 외워야 하기 때문에 몇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우리는 숙소에서 나온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돌고 나서야 이제 겨우 동네를 벗어날 수 있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번 여행의 장점은 우리가 두명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길을 몰라 헤매는 시간에도 몇번이나 같은 길을 돌아 갈때도 힘들기 보다는 추억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수다를 떨었다.

우리 눈에 모든것이 새로웠고 모든것이 이국적이었으며 하다못해 길가에 핀 꽃 한송이마저도 특별해 보였다.


모두가 바쁘게 출근을 하고 있는 듯 했지만 우리만은 여유롭게 런던시내를 활보했다.

추위와 고난함을 뚫고 버킹엄 궁전에 도착 하긴 했지만 시간이 너무 일렀다. 근위병 교대식 까지는 적어도 두어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이른 아침의 한적한 버킹엄 궁전


사진을 찍으며 기다려 보려고 했으나 문제는 날씨였다. 마치 초겨울 처럼 추운 날씨와 맹렬한 바람 때문에 햇빛아래 앉아있어도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이대로 라면 감기에 걸려 남은 일정을 망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시간도 때울겸 우리는 따뜻한 곳을 찾아이동했다. 도중에 영국 왕실의 기념품을 파는 곳에 들러 잠시나마 몸을 녹였지만 아직도 시간은 한시간 이상 남아있었다.

따뜻하게 느낌의 런던시내의 작은 카페

그렇게 왔던 길을 되돌아 가던 중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아담한 것이 마음에 들었고 우선은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일단을 들어서야 했다. 처음으로 가는 카페였기 때문에 우리는 멋도모르고 비싼 곳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주문을 어떤 방법으로 해야하는 건지 잔뜩 긴장되었다. 초보 관광객티를 팍팍 내며 우리가 굳어있자 점원 언니가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자리를 안내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면 테이블로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음료값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안도했고 무엇보다 free wifi도 있었다. 또한 화장실 한번에 1~2유로를 지불해야 하는 유럽 화장실 문화 특성상 이런 곳은 화장실을 사용하기에도 안성맞춤 이었다. 친구는 따뜻한 카페라떼를, 나는 몸을 녹여줄 따뜻한 핫초코를 주문했다. 긴장이 풀리니 음료맛도 훌륭했다.  그제서야 카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아담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포근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화장실은 왔던 길 그대로 돌려 소희에게 어서 가보자며 재촉했을 만큼 예뻤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 이지만 영국은 도시가 오래되었을 뿐더러 워낙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지하실 활용이 잘되어있었다. 작은 가게에서는 대부분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지하실로 안내할 정도였다. 이곳 카페도 화장실은 지하실에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아주 좁고 가파랐지만 내려가 보니 꽤나 넓고 색다른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지하실이라고 하면 어둡고 습한데다 먼지가 굴러다니는 창고 정도로 여겨지지만 유럽의 지하실은 말그대로 지하에 있는 방 정도의 느낌 이었다. 사진을 미처 찍지 못한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화장실 이었다. 작지만 화장대까지 제대로 갖춘 곳이었다. 화장실마저 이국적으로 느껴지다니, 영국은 역시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 이었다.

오후일정을 짜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계를 보니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남지 않아서 부랴부랴 카페를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버킹엄궁전 앞은 이미 만석이었다.  아침일찍 왔건만 좋은 자리는 다 뺏기는 바람에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덕분에 좋은 카페에서 맛좋은 음료도 맛볼 수 있어서 그것으로 만족했다. 시간은 거의다 되어가서 우리도 대충 길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불과 한시간전만해도 휑 하던 거리가 사람들로 꽉찬 것을 보니 도대체 이 많은 인파가 어디에서 왔는지 신기했다.

화려한 제복의 영국 근위병


기다림에 비해 교대식은 허무할 정도였다. 짧은 의식이 끝나자 수 많은 사람들도 각자의 길을 향해서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는 잠시 근처 화단에 앉았다. 우리는 딱히 바쁜것도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여유로움마저 좋았다. 일을 할 때에는 항상 무언가에 쫒겨야 했다. 아침에는 늘 출근시간에 쫒기고 일을 할 때에는 시간에 쫒겼다. 늘 빨리빨리 시간에 쫒기다 보니 나는 늘 쉬고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럴필요가 없다. 가고싶은 곳이 있다면 두 발로 걸어가면되고 가다가 지치면 아무곳에나 앉아서 마음껏 쉬면 된다. 한국에서처럼 주변사람을 신경쓸 필요조차 없다. 나는 잠깐 왔다가는 존재이기전에 그들이 누구에게도 관심갖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완전한 자유였다. 삐져나온 팔뚝살이나 툭 튀어나온 엉덩를 감추느냐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사방으로 조여오는 시선에서 벗어나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쓸수있는 시간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런던의 상징 빅벤과 런던아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가는 방법은 모른다. 와이파이 없이도 GPS만 있으면 위치나 지도를 볼 수 있는 citymap어플이 있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앉아만 있어봤자 누군가 데려다 주는 것도 아니기에 우선은 아주 멀리 보이는 런던아이를 향해 그냥 걷기 시작했다. 버킹엄근처는 공원들이 아주 예뻤다. 녹색의 시원시원한 나무들도 아주 많았다.

이런 공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공원인 로얄파크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실 이지만 대부분의 돗자리없이는 공원에 앉지 않는 한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잔디밭에 사람들이 앉거나 눕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 물론 공원안에 선베드같은 의자가 있지만 그것은 유료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냥 잔디밭에 앉아 여유로운 대화를 즐긴다. 색다른 풍경을 구경하며 걷다보니 정말로 색다른 것과 마주쳤다. 다람쥐였다. 공원에 다람쥐가 있는 것은 처음보는 것이었다. 게다가 공원에 살면서 사람들손이 타는 것이 익숙한지 먹이를 얻기위해 사람들의 손을 피하지도 않고 제법 애교도 부린다.


기분좋은 산책을 마치고나서 빅벤까지는 한마디로 극기훈련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우리가 딱 그 짝 이었다. 버킹엄궁전에서 런던아이만 보고 출발했건만 정말로 거리가 먼건지 우리가 길을 몰라서 그런건지 가도가도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해가 떠가 날씨도 아침처럼 춥지 않았고 우리가 걷던 거리는 웅장하고 멋있는 문도 지나칠 수 있었고 미술책에서만 보던 위인들의 동상도 곳곳에 있었다. 게다가 지칠때쯤엔 어딘지 모를 곳을 지키는 경비병이 탄 말들과 사진찍으며 인사도 할 수 있었다.

런던 곳곳에는 이런 웅장함을 볼 수 있다



원래 관광명소라는 것은 실제로 보는 것보다 남이 찍은 사진으로 보는게 더 멋있는 법이다. 우리도 그것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남이 할것 다 한다. 사진찍고 사진찍기!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끝난 일정이라 우선은 배를 좀 채우기로 했다.
물가가 워낙 비싼곳 이기 때문에 어디 식당에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고 간단히 Tesco에서 파는 샌드위치로 떼우기로 했다. Tesco는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켓 브랜드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홈플러스익스프레스정도이다.  음식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 이지만 그래도 나아보이는 샌드위치 두개와 물 하나를 구매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먹을 만한 곳을 찾아 되돌아 가던 중 사람들이 많이 보여있는 광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노리는 비둘기떼들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나니 그곳은 광장이 아니고 네셔널갤러리였다. 크고 웅장한 규모덕분에 뮤지엄이라고 생각했지만 내부는 달랐다. 화려하고 단정한 그림들이 줄지어 걸린 갤러리였지만 그림을 보는 눈은 영 갖추기 못한 탓에 결국 화장실,벤치,free-wifi를 얻는 곳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캠든마켓에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추위를 견디다 못해 뭐라도 걸칠것을 사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나의 의견이었다. 우선 metro를 이용해서 캠든마켓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캠든마켓은 전형적인 시장인듯 했다. 내리자마자 길 양쪽으로 늘어선 기념품 가게에 들러 구경도 하고 각자 마음에 드는 기념품도 몇가지 골랐다.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파는 캠든마켓


캠든 마켓의 자유롭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지만 여기서 당한 사기행각 덕분에 그닥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꽤나 맘에 드는 스카프를 발견하고 물건값을 지불 하던 것이 문제였다.

10파운드 한장을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받아야할 돈이 부족했다. 다시 가게로 들어가 상황을 설명하니 본인에게 5파운드를 줬다는거다. 하지만 10파운드 한장과 5파운드 한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연히 직전에 확인을 했던것이 큰 행운 이었다. 처음 우리는 순진한 마음으로 가게주인이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이 장부에 기록하고 있다는 소리와 함께 내가 건넸다는 5파운드 지폐를 보여주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땅히 둘곳이 없어 꼬낏꼬깃 접어 휴대폰케이스 뒷편에 넣어두드냐 납작하게 접어뒀던 지폐를 내가 모를리가 없었다. 카운터 서랍에 있던 지폐뭉치 중 내가 건넨 10파운드가 유독 눈에띔과 동시에 내가 줬다며 주인이 보여준 5파운드짜리 지폐는 구김하나 없이 깨끗했으니까 말이다.

작정하고 사기를 친다는것을 알아차린 우리는 혹여나 긴가민가 했던 의심을 버리고 당당해졌다. 아무리 어리숙해 보이는 관광객일지라도 건드릴 사람을 건드렸어야지!!


급하다보니 그렇게 안나오던 영어가 술술 튀어나왔다. 저 지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지폐고 넌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소리치자 그럼 CCTV를 보면서 확인하자는 소리를 한다.

이정도까지 했으면 내가 물러설줄 알았는지 당당한 태도였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는다. 바라던 반데 당연히 확인해야겠다고 옥신각신 하는순간 가게로 손님이 들어와 이젓저것 묻기 시작한다.

주인은 기회가 이때다 싶은지 그 손님에게 대답을 하며 시간을 끌고 나는 당장 확인하라며 소리를 지르고 주인은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한참의 실랑이가 오갔다.

결국 손님이 나가고 나가자마자 주인은 CCTV는 커녕 정산을 맞춰보는척 계산기를 두둘기는척 하더니 그제서야 자신이 계산착오를 했다며 나머지 거스름돈을 더 건넸다.

순진해 보이는 동양인 여자둘 이라고 속여먹으려고 했더니만 호락호락하지 않자 돈을 돌려준 것이다.

이런경우는 듣도보도 못하고 참으로 황당했다. 어딜가나 유럽에서는 동남아계를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 틀린말은 아니었다.  씩씩거리며 가게를 나서고 나니 언어의 장벽으로 더 퍼부어주지 못한게 아쉽기만 했다.


하루종일 걷고 추위와 씨름하느냐 제대로된 식사도 못했는데 황당한 사기까지 당할뻔 하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더이상 돌아다닐 힘도 남아있지 않아 겨우 숙소로가는 24번 버스를 탔다.

런던의 상징인 2층 버스 가장 앞좌석에 앉아 관광버스못지 않는 호화로운 관광을 즐기면서도 피곤함은 어쩔  수 없는지 도착할때까지 꾸벅꾸벅 졸았다.


숙소로 돌아와 분노의 하소연과 함께 라면에 밥까지 거하게 먹고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아직 시간은 8시였고 밖은 여전히 환하게 빛났지만 동네를 산책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하루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우리를 덮쳐왔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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