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B Dec 27. 2016

영국에서 파리로

영국 day-5

영국의 마지막날이 밝았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내친구 땅콩과 내가 처음으로 밟아본 유럽의 땅 이기도 했고 도착한 날부터 숙소를 찾기위해 고생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나라였다. 모든것이 낯설었고 처음보는 풍경, 처음먹는 음식, 모든것이 설레기만 하고 즐기기보다는 적응하기위해 보냈던 시간들 이었다.

새로운 나라와 도시를 방문한다는 설렘과 흥분도 있었지만 이제막 적응하던 곳을 떠난다는 아쉬움도 컸다.

새벽공기를 맞으며 숙소 주방에서 내려다 보던 템즈강의 풍경도 그 중 하나였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친구와 마주보고 앉아 땅콩잼을 잔뜩바른 빵을 입에 물고 허겁지겁 먹던 시리얼의 맛은 이제껏 먹었던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맛이었다.


런던을 출발해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 철도는 런던에서 오후 3시 31분 출발이었다. 출발시간까지는 아주 넉넉히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숙소근처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있는 Tesco에서 음식을 몇가지 구매하고 항상 숙소 창문에서만 바라보던 템즈강 근처의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간식타임을 가졌다. 그동안 이렇게 멋진 풍경을 두고 왜 관광지만 둘러봤는지 후회가 될 정도였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 정말 런던의 일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숙소근처의 cafe를 찾았다. 몇 안되는 테이블을 가진 아주 작지만 깔끔한 카페였다.

유럽의 대부분의 가게는 야외 테이블이 있다. 요즘에는 많이 사정이 달라졌다고 느끼지만 몇 년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야외테이블은 건물안에 자리가 부족하거나 혹은 흡연을 위해서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위치였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가볍게 맥주 혹은 티를 즐기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가게안에 자리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도 가게 바로앞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영국의 커피맛은 이미 전에 맛 보았고 어떤 걸 주문할까 고민하다 오렌지주스와 페퍼민트 티를 주문하자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찻잔세트가 준비되었다

이국적인 느낌의 찻잔 셋트를 받은 페퍼민트 티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한적한 주택가를 바라보았다.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길을 가다 지인을 만나 그 자리에 서서 진득한 수다를 떠는 모습은 우리네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문득 이런 풍경이 어느덧 우리에게 일상처럼 녹아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타던 24번 버스와 지하철을 뜻하는 언더그라운드. 버스정류장을 찾아 매일 찾아헤매던 것도 점심을 떼우던 Tesco의 샌드위치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없다면 허전할 것만 같았다.


한참을 따뜻한 햇빛 아래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시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모름지기 초행길은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옳은 법이다.

숙소에 들러 매니저님과 작별인사를 했다. 처음 우리가 숙소에 오던 날 맘마미아를 외치던 사장님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고생담을 전해들은것인지 유난히 우리에게 신경써주시던 매니저님 이었다.


이제는 다시는 기다릴 일이 없을 24번 버스를 기다렸다. 숙소 앞 정류장은 24번의 종점 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했다. 꽤 넉넉히 시간을 맞춰 나왔으니 일찍 도착하면 쓸일없는 영국파운드를 유로화로 환전하자고 이야기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비극의 시작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버스를 기다린지 15분째. 원래는 자주오는 버스인데 오늘따라 좀 늦는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기다린지 30분째. 여기는 종점이라 버스가 잘 안오나? 항상  돌아오는 버스만 이용 해서 잘 모르겠다.

버스를 기다린지 45분째. 이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린지 1시간째. 지금 타지 않으면 기차시간도 아슬아슬하다.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린지 1시간 15분째. 한참 전에 작별인사한 매니저님을 만났다.


매니저님은 헛것을 본건마냥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까 나가지 않았어요?"라는 질문에 우리는 할말이 없었다. 나간건 맞다. 우리도 진짜 가고 싶었다.


사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도 되지만 그동안 우리의 전적을 보아하니 지하철역 찾겠다고 나섰다간 저녁이 되서야 지하철 역에 겨우 발을 붙일거 같아서 버스를 선택한건데 버스마저 제대로 못타고 쩔쩔매는 걸 들키니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지하철역이 여기서 10분만 걸으면 된다는 매니저님 말에 우리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그럼 10분만 걸으면 될거를 한시간이넘게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렸단 말이야?


매니저님의 도움으로 지하철을 타러가며 매니저님은 이래가지고 여행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제 파리로 갈건데 파리는 집시나 소매치기가 많기로 악명높다던데 정말인지, 파리 북역에서 내리면 지하철표를 끊으려고 돈을 꺼내는 순간 소매치기가 와서 지갑채로 가지고 달아난다던데 진짜인지 걱정섞인 질문을 잔뜩 해대는 우리에게 매니저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마디 하셨다.

"파리도 사람사는 곳이거든요?"


이 두 어리바리가 길을 잃지않고 무사히 다음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기어이 유로스타를 타는 역인 킹스크로스역까지 바래다 주신 친절한 매니저님과 정말로 작별인사를 했다.

한시간전에는 도착해야 된다는 정보를 얼핏 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아슬아슬 했다. 처음으로 유럽 내륙을 이동하는 것인데 혹시나 기차를 놓칠까봐 서둘러 체크인까지 하다보니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서 목에 걸고있던 동전주머니를 깜빡하는 실수까지 했다.

땀을 흠뻑 흘리며 체크인까지 하고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처음타는 유럽기차 였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긴장했지만 유럽이든 어디든 기차를 타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내가 타야하는 열차의 출발 시간과 목적지를 알고 있으면 된다. 열차 출발시간이 다가오면 전광판에 열차 도착정보와 플랫폼이 뜬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가야하는 오후 3시 15분에 영국 런던을 출발해서 프랑스 파리 북역에 도착하는 유로스타 열차정보 앞에 19. 라고 적혀있다면 19번 플렛폼으로 열차가 들어오니 그곳에서 대기하라는 뜻이다. 전광판을 읽었다면 해당하는 플렛폼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다.


파운드를 유로화로 바꾸긴 했지만 꽤 남은 동전은 환전도 되지 않고 처치곤란이다. 한두개 정도야 기념으로 가지고 있을 법 하지만 그 이상은 무게만 차지할 뿐이기 때문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샀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 음식으로 놀림 받는다지만 우리가 먹었던 영국요리는 실패한 적이 없었다. 고무처럼 질긴 비릿한 생 베이컨을 샌드위치에서 뱉어내기 전까진 말이다. 영국의 킹스크로스역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를 누군가 꼭 먹어야한다면 부디 베이컨이 들어간 샌드위치만은 피하길 바란다.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우리는 밀린 일들을 했다.

미뤄뒀던 일기를 쓰고 사진을 인화하는 일이다. 그날의 가장 좋은 순간을 그대로 붙여두고 싶어 챙겨온 포포 기계는 이외로 유용하게 쓰인것 같다. 예쁘지도, 화려하게도 꾸밀 수 없지만 사진한장 붙이고 하루일과를 적다보면 나만이 여행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노고를 보상하듯 햇살이 아름답게 넘실거렸다.


유럽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햇살 이었다.

우리나라이 한 여름 땡볕에서나 만날 수 있는 눈이 멀어버릴듯 아찔한 햇살은 날씨가 조금만 좋다면 유럽어디를 가도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여행의 끝무렵,  서있기만 해도 숨이 막힐듯 했던 여름에서 조차 이 햇살을 너무나 사랑 했던것 같다. 온 몸으로 그 따사로움을 받으며 반쯤은 졸았고 반쯤은 친구와 노닥거리며 여행의 여유로움을 한껏 즐겼다.


기차는 머지않아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유로스타의 최종 목적지 이기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특히 북역은 집시나 소매치기가 많기로 악명 높기 때문에 등에맨 가방의 지퍼고리에 자물쇠를 단단히 잠가맸다. 돈과 카드는 카타르항공에서 이어캡등을 담아 주는 작은 주머니안에 넣어 옷 안에 넣어 두었다. 아주 얇은 재질로 된 이 주머니는 긴 끈이 달려있어 목에 걸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숙소를 늦게 구한편은 아니었으나 원하는 곳을 예약하지 못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잡아야했다.

에펠탑 근처에도 많은 숙소들이 있지만 파리는 워낙 역사이가 가깝고 지하철노선이 잘 되어있어서 조금 멀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파리 지하철 노선도에서 7호선 끝에 있는 velliejuif-p.vailant-couturier역이었다. 7호선은 malson Blenche역에서 두 노선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velliejuf역으로 가는 방향인지 mairie d'lvvy역으로 가는 방향인지 확인한 후 탑승해야 한다. 북역에서 숙소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지만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엄청난 캐리어를 들고 말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이 세계적으로 가장 잘 정비되어있다는 말은 정말 틀린말이 아니었다. 걷기만 해도 힘든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하나 없는 좁고 어두운 파리지하철을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이지 한번의 경험으로 만족한다.


복잡하게 얽힌 파리시내의 지하철 노선과 지하철 티켓



숙소가 위치한 곳은 한적한 주택가 였다. 유럽의 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을 말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꽃이라고 말할 것이다. 주택가에는 작지만 화단이 항상 있고 화단이 없더라도 창문에 항상 꽃으로 장식되어있다. 전원주택이 아니면 외부에서 집을 장식한 꽃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캐리어를 끌고 끝도없는 내리막을 걸어내려가 이렇게 걸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걷다보면 나온다는 숙소에 드디어 도착했다. 온통 불어로 가득한 지하철에서 고생했던지라 한국어로 씌어있는 민박집 이름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처음엔 파리시내에서 멀리떨어져 야경을 보며 맥주한잔 하지 못하는 것도, 아침마다 끝도없는 오르막을 올라가 지하철을 타야한다는 것도 싫었지만 이제서 생각해보면 유럽에서 묵었던 숙소중 가장 정겨운 숙소가 아니었나 싶다. 주택가에 위치 했기 때문에 가장 파리스러웠고 무엇보다 차분한 분위기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피하기는 커녕 알아서 피해가라며 드러눕는 배짱좋은 고양이들 덕분인것 같다.

각기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닌 파리의 길고양이들

숙소는 복층구조였는데 1층은 늘 은은한 조명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라면 2층은 대조적으로 탁 트여있는 테라스와 함께 밝고 모던한 분위기 였다. 우리는 1층 가장 안쪽 4인실을 배정받았는데 내부는 작으면서도 아주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짐을 풀었던 우리는 이층침대의 위,아래를 배정받았다. 영국에서는 나란히 배치된 침대를 썼기 때문에 이층침대는 처음 이었다. 자리는 내가 아래층, 친구가 위층을 쓰고 다음 숙소마다 번갈아 가며 쓰기로 결정 했다. 


두둑히 배까지 채운 우리는 이 아담하고 따뜻한 숙소에 마음을 주었다. 비록 한달동안 방치한 듯한 걸레냄새를 풍기는 룸메이트 덕분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는 역시 쇼핑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