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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비 Jul 04. 2022

니코틴 토끼를 사랑하련다

엄마 성장기

토끼와 니코틴..

너무나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나는 결국 이 두 조합을 떨어트려놓을 수 없다.

때문에 선택해야 했다.

멀어질 것인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을 것인가!

올해 연세로 일은 여섯이 된 나의 친정아빠가 바로 이 니코틴 토끼의 주인공이다.

아빠는 손주가 태어나면 담배를 꼭 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엔 성공하지 못했다.


장 힘들었던 백일까지의 육아 시절, 본래 나의 첫 마음은 아빠가 금연을 하지 않으신다면 아빠의 도움을 지 않으리란 마음을 강하게 먹었더랬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못 가서 나는 매일 점심쯤이면 아빠의 육아복을 준비하고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결국 나의 신념은 니코틴을 이기지 못했다.


마흔 넘어의 출산과 육아는 정말 고됐다.

아가는 3.7kg로 열 달을 꽉 채우고 나왔는데 단 두 번의 힘주기로 아기가 머리를 내밀자 출산을 집도하던 나의 주치의는 아기가 내려오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시원하게 매쓰를 그었다.

병원 곳곳에 붙여져 있던 회음부 열상 주사의 포스터는 열 달 동안 예비 산모들에게 아주 든든한 보험과도 같았지만 그렇게 든든해 보였던 열상 주사의 효과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 채 항문 안쪽의 직장 근처까지 찢어지는 3도 열상의 아픔을 감당해야만 했다.

누가 그랬던가! 자연분만은 하루 만에 일어나서 걸어 다닌다고! 어쩌면 제왕절개를 했던 산모들보다 더 큰 후유증을 안고 8개월이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불편함을 받아들인 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나는 아빠의 도움이 절실했다.

친정 아빠가 오셔서 아기를 봐주는 세네 시간이 내겐 너무도 절실했다.


흡연자가 신생아를 돌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쟁 같은 육아의 현실은 신념 따위를 가볍게 이겨버리고야 말았다.  

"아빠, 마스크 하고 옷 갈아입어요."로 아빠의 육아 도움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아기는 친정 아빠의 품에서 매일 같이 잠이 들었고 이제 8개월이 된 아기는 아빠를 너무나 좋아한다. 요즘은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친정집에 아기를 안고 가는데 친정 아빠가 없는 날이면 아기는 보행기를 신나게 밀며 아빠가 주무시는 방문을 두드리며 할아버지를 애타게 찾기도 한다.


그리고 하루 일과 중 빼놓지 않고 아빠로부터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할아버지는 온갖 재롱을 부리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스스로 산토끼가 되어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 나는 아빠의 재롱에 약간의 쓴소리를 담아 "와!! 니코틴 토끼다!!" 하며 잔가시가 담긴 인사를 건네고야 만다.

 "아빠, 니코틴이 좋아 손주가 좋아?"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아기를 바라보는 니코틴 토끼의 눈은 이미 온 맘을 다해 아기를 사랑하고 있다.

아기도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온 세상의 따스함과 사랑을 듬뿍 받아내기에 오늘도 나와 아기는 니코틴 토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니코틴 토끼를 사랑하고야 말았다.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 14년간 나는 하고 싶은 건 꼭 해봐야 하고 하고자 하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고집과 주관이 분명했다.

더욱이 운동을 쉬어본 적이 없고 쉬고 싶을 땐 늘어져 쉴 수 있으니 나에겐 체력의 한계도 없을 것 같았다. 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리란 마음으로 열한 번의 이사를 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항해하듯 살아갔던 내가 기가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바닥난 체력의 한계를 대면해야 했다. 처음 겪는 일 앞에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한계를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삶, 전혀 알 수  없었던 삶 아니 외면하고 싶었던 삶이었기에 이 정도일 거란 예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내 성격은 상황을 둘러보고 내 것이 아닌 삶이라면 고민하거나 부여잡고 있지 않고 재빨리 인정을 하고 받아들인다. 그것이 포기일 지라도...


나는 이 조그만 이쁜이 하나가 남편과 나를, 아니 우리 집 네발 가족들까지 전부를 이리 흔들어 놓을 줄 몰랐다! 그렇다 나는 요즘 육아를 하면서 적잖게 포기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내가 부여잡고 있었고 가장 나답다고 고집했던 것들이 정말 내 것인지 아닌지를 하나하나 펼쳐놓고 포기할 것들을 찾아내고 있는 요즘이다. 마치 입을 옷을 남겨놓고 입지 않는 옷들을 과감히 정리하듯이 말이다.


니코틴 토끼에게 아기를 부탁한 것 역시 내 신념을 포기한 일부였다. 그리고 이 포기로 인해 나에겐 서너 시간의 자유가 주어졌다.


그래! 나를 받아줄 만한 누군가에게 나의 힘듦을 내려놓는 것이 짐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어, 바로  사랑이었어!


결혼을 하고 14년간 가족들을 뒤로한 채 제주도까지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부모님, 그리고 네 명의 언니들과 형부들, 대학생과 중고등학교가 되어버린 조카들은 얼마나 치열했던 순간들을 보내었을까?


부모님과 언니들에게 조심스레 기대는 나의 이기심을 이들은 사랑으로 받아준다.

그리고 가장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담아 우리 아기에게 예쁜 눈맞춤을 쏟아준다.

나의 아가가 아닌 우리의 아가가 된 조그만 예쁜이는 매일매일 적잖은 사랑을 받아내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 가장 큰 사랑은 매순간 영상통화로 산토끼 춤을 추며 아기에게 재롱을 부리는 니코틴 토끼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결혼을 하고 나의 성장은 멈춘줄만 알았는데 뒤늦은 육아를 하고 있는 나는 아가와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 틈에서 여전히 성장중이다.


_봄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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