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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Aug 14. 2016

두 번째 유럽, 세 번째 파리

익숙하고도 낯선, 파리의 첫날

AMSTERDAM



비행기에 올라 불편함에 한참이나 몸을 뒤척였다.  옆자리가 비어 여유로웠음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언제쯤 도착하나 싶었으며 겨우 잠이 들었을 때쯤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2시간 30분 정도의 경유 시간에 혹여나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까 서둘렀다. 다행히 그럴리는 없었다. 제일 먼저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게이트에 도착해서 멍하니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앉아 있었다. 창 밖으로 새벽에서 아침으로 향하는 시간을 보고 있자 그제야 여행이 시작된 듯 설렜다.


마침내 바로 앞자리에 인천에서부터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여자분이 앉았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나는 무턱대고 말을 걸었고 그냥 여행자들이 이어갈 법한 소소한 대화들을 시작했다.


우리 둘은 비슷한 일정이었으나 각자의 계획이 있어서 함께하자는 말은 오가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에서 파리 행 비행기에 올라탔고 내려서 짐을 찾고 각자의 터미널까지 동행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면서 '만날 수 있으면 만나요'라는 덧없는 기약을 하고 각자의 길로 가게 됐다.



PARIS   


5년 만에 돌아온 파리는 낯설기도 했지만 익숙했다. 두 번의 여행 덕분이었는지 도시 곳곳이 익숙했다. 예전과 같이 RER을 탄다는 것은 똑같았으나 매표기의 내용들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RER을 타고 무거운 캐리어를 듣 상태로 지옥 같은 샤틀레를 지나 낑낑 거리며 숙소에 도착했다.


옷만 간편히 갈아입고 피곤이 가득한 상태로 쫓기듯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무모하게도 예전처럼 걷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 걷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숙소에서 나와 정처 없이 '이쪽이겠지'라는 막연한 느낌만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헤매기도 했지만 어쨌든 파리 시청에 도착했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왔다는 것이 소소하게 기뻤다.


파리 시청에 도착하니 이제야 내가 알고 있던 도시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앞에서 잠시 앉아 있다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포인트 제로 앞에 다시 한 번 서서 빙그르르 돌았다. 어디선가 본 이야기인데 포인트 제로 앞에서 한 바퀴 돌면 파리에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는 자신감에 찬 상태로 한 바퀴를 돌았다. 아, 두 바퀴였었나. 그리고 다시 오는데 5년이 걸렸다.


뭐 어쨌든 오기는 다시 돌아왔다. 과연 이다음에는 얼마나 걸릴지, 다음이 존재하기는 할지 반신반의하며 한 바퀴를 돌았다. 사실 이번에 돌 때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지나 에펠탑을 향해 쭉 걷기 시작했다.


에펠탑의 뾰족한 부분이 보였고 그 근처에 왔다. 그러나 에펠탑에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에 가려 가려져서 한참을 애를 먹었다. 그러다 사요 궁도 튈르리 쪽도 아닌 옆 골목에서 만난 에펠탑은 환상적이었다. 파란 하늘 사이로 짙은 브라운 컬러의 거대한 철골이 나타났고 여전히 압도적인 크기에 훨씬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났다. 그야말로 넋을 놓았다. 낮의 에펠탑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이날만큼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Le jardin des tuileries


여유롭게 에펠탑의 경치를 즐기고 싶었지만 공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집시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미친 듯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날 유독 집시들이 넘쳐나서 셀카를 찍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피해서 벤치에 잠시 앉았다. 아주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그리고 앵발리드 미로에 입성.


무슨 행사를 하는지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서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한참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겨우 빠져나와서 콩코드 광장을 지나 루브르 앞으로 이동했다. 지난번에 먹지 못했던 안젤리나의 몽블랑이 생각나 안젤리나로 향했다. 몽블랑이랑 에끌레어를 구입해 튈르리 정원에 앉아 여유로운 한때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꿈이었다. 튈르리 정원에 앉아 에끌레어를 먹는 상상은 그야말로 여유로움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몽블랑은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달았다. 나름 단 것을 잘 먹는다고 여겼던 나인데도 몽블랑이 유난히도 달게 느껴져 반도 먹지 못했다. 에끌레어는 그냥 맛이 없었다.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빵은 약간의 퍽퍽함을 갖고 있었고 초콜릿의 되직함 섞여서 최악의 조합을 자랑했다. 몽블랑은 반쯤 먹고 버렸고 에끌레어는 꾸역꾸역 먹었다. 여행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 입맛이 없었던 것이라 억지로 믿었다.


시간이 남아서 몽쥬 약국으로 향했다. 몽쥬 약국에 가니 한국 사람들이 넘쳐났다. 내 귀는 얇았고 홀린 듯 물품을 결제했다. 쓸데없는 물품들이었다. 그리고 첫 여행지에서 짐을 늘리는 무모한 짓을 한 것을 깨달은 건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였다.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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