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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Apr 21. 2017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두 번째 유럽, 세 번째 파리 - 다섯째 날 그 흔한 사기 수법에 당하다

기억 밖으로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바보같이 당했기에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까 봐 몇 번이나 글을 쓰기 망설였고 쓰는 지금도 망설이게 되는 글.


그날로 돌아가자면 딱히 계획이 있었던 날은 아니었다. 지베르니와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오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숙소는 나가야 했고 다들 일찍 나서기에 나도 허겁지겁 준비를 했다.


그때부터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이 날도 어김없이 숙소에서부터 시청까지 걸어갔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고 지도를 따라간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걷다 보면 항상 시청에 도착했다.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고 춥기도 매우 추워서 바람을 피할 겸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어갔다.


노트르담을 한 바퀴 둘러보고도 시간이 남아 밖으로 나왔다. 정말 추웠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노트르담이 주말이 아니었다면 예배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 참을 앉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서 딱히 할 것이 없으니 이리저리 방황을 시작했다. 다음 목적지는 스위스였는데 갖고 있는 옷들이 부실했기에 얇은 패딩을 구입할 겸 근처에 있는 마레 지구로 향했다.


지난번에 들렸던 메르씨(Merci) 매장은 마레 지구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본격적인 마레 지구라고 일컫는 곳은 처음이었다. 가로수길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우중충한 날씨까지 더해져서 빛바랜 우중충함의 끝이었다.


매장을 찾다 보니 꽤 유명한 케밥 집에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케밥을 좋아해서 사 먹으려다 말았다. 만약 거기서 케밥을 사 먹었다면 이후의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



마레 지구를 둘러보다 유니클로 매장을 찾아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일요일이었는데도 매장이 오픈해 있었다. 리버티와 콜라보가 진행 중이었는지 입구에는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나의 목적이었던 초경량 울트라 라이트 다운재킷을 향해 직진했다. 가격을 보니 베스트가 49.95 EUR 패딩은 59.90 EUR이었다. 거북이걸음을 걷는 인터넷을 부여잡고 국내 가격과 비교해봤다. 프랑스에서는 대략 7만 원가량이었는데 한국에서는 3~4만 원대로 세일을 하고 있었다. 환율 계산이 잘 못 된 거라 생각하고 한 참을 들여다봤다. 20분 정도 앞에 서서 고민을 하다 지금 옷으로도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설득하며 매장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 루브르에 가려고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나 보다. 이날은 꼭 케밥 집을 들려 튈르리 정원에 앉아 밥을 먹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케밥집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 아까 마주한 케밥집을 떠올렸지만 마레 지구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걸어왔었다.


마레지구에서 루브르 쪽으로 향하다가 맥도날드를 발견하고 들어가려고 했다. 아랍과 남미 계열로 보이는 외형의 남자가 먼저 들어가고 내가 뒤이어 들어가게 됐다.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걸어서 대충 대답을 해줬다. 메뉴판을 보려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불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러더니 그 남자는 자신이 더 좋은 장소를 알고 있다며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는 좋은 곳이 있다고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곳이 나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건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었다. 좋은 식당을 소개해줬으니 돈을 요구하는 수법.


그걸 왜 따라갔지 XX. 어쨌든 걸어가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남자의 이름은 미셸이며 여자 친구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고 한국인 친구도 많다고 했다. 그는 소르본 대학교 근처에 살고 있으며... 애매하게 말을 흘릴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처음에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가 자리가 없어 이층까지 올라가 자리가 없어서 밖에 테라스에 앉았다. 나보고 앉아 있으라며 본인이 주문을 하겠다고 했다. 이것도 이상했지 내가 먹을 건데 왜 자기가 주문을 하나 XXX.


나는 자연스럽게 얼마냐고 물었고 그는 뭐라고 말을 했는데 나는 못 알아 들었다. 나는 10 EUR로만을 건넸다. 그런데 그는 내 지갑에 있던 20 EUR를 보고 내놓으라고 했고 나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돈을 요구했다. 강탈하듯이 돈을 가져간 그는 바꿔주겠다고 하며 옆 식당으로 가 돈을 바꾸는 척하더니 다시 나와서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알았다.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5분 정도 기다리다가 그 사람이 사라진 곳을 따라갔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루브르 쪽으로 가서 경찰을 찾으려고 했지만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루브르 광장 쪽으로 가 군인에게 경찰의 행방을 물었다. 멘틀이 붕괴된 상태에서 “누가 내 돈을 가져갔다”라고 말했다. 군인 옆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젊은 프랑스 친구들 셋이 영어로 내 상황에 대해 물었다. 영어로 설명하다 프랑스어로 설명하다 단어조차 기억이 나지 앉아 힘겨워하자 괜찮다며 다독여줬다. 전형적인 집시들의 사기수법이라는 것도 알려줬다. 그 아이들은 경찰서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줬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고맙다고 말하고 거리로 나섰다. 경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걷다 경찰차가 오기에 손을 흔들어 세웠다. 그리고 돈을 잃어버린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스타벅스 직원들은 내가 경찰과 함께 오니 매우 놀란 눈치였다. 나는 경찰들에게 사기꾼은 이미 떠난 뒤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다행히 스타벅스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 직원이 많이 도와줬다. 여전히 고맙다. 고맙다고 충분히 전하지 못해 미안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찾을 수 없었다. 스타벅스 직원이 경찰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됐다. 경찰서를 찾아갔지만이 쪽 담당이 아니란다. 허탈했다. 비도 내렸고 우산도 없었다. 더 이상 경찰서도 가고 싶지 않아서 아껴 뒀던 지하철 티켓을 사용해 숙소로 돌아왔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에 노숙자가 뭔가를 달라고 몇 번이나 말하더라 그냥 무시하고 숙소로 향했다.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도 잠겨 있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고 있는데 숙소 이모가 도착해 문을 열어줬고 엄마한테 다시 전화를 했다.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너무나도 뻔한 수법에 바보같이 당한 것이 억울했다. 프랑스 사람과 오랜만에 대화를 했다는 것이 너무 신나서 그래서 그렇게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



엄마가 3만 원어치 경험했다고 생각하라고 다독여줬다.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운 상태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엄마가 밥 먹으라는 말에 케밥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마침 까르푸도 있어서 제일 좋아하는 과자 레이즈(lays)를 사서 돌아와 밥도 먹고 간식도 먹었다.


다시 생각해도 담담한 척 이야기를 해도 바보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여전히 분하고 억울한 걸. 그리고 그 스타벅스 직원에게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 직원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더 억울할 뻔했으니까. 여전히 화나고 바보 같았던 행동을 했던 나지만 엄마의 다정했던 목소리가 남았던 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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