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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Apr 26. 2016

안녕하십니까?

짓밟지마세요. 우리도 사람이예요.

 하루에도 수백 번 허리를 굽혔다가 편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사를 던지고, 미소를 짓는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다. 리모델링 직전의 아파트에서 마치 선거 유세처럼 건설사 홍보를 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쉬운 일이겠지만 내가 던지는 인사와 미소가 거의 90% 이상 짓밟히는 기분을 느끼고 나면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깔보는 시선과 한참 어린 아이들의 조롱, 따가워지는 햇빛을 견디면서(- 불과 몇 일 전까지는 추위였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어야 하는 일. 나를 비롯해 이십대 초반에서 서른 하나까지 20명 남짓의 청춘들이 유니폼을 입고 서서 미소 지으며 허리를 굽힌다.


 2주 간의 일정에서 이제 반 쯤이 남았나. 이 아파트에서 탈출 할 때 쯤이면 내 허리와 어깨는 바스라 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자존심 따위는 떨어지는 벚꽃처럼 봄바람에 휘날려 사라진지 오래다. 자존심이 없어졌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남아 있다. 그것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한 아저씨가 지나가며 혀를 끌끌 차댔다. 모두가 아파트 입구에 모여 있는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

 "공부를 더 해서 훌륭한 직업을 가져야지. 여기 서서 이러고 있나? 그러게.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그랬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공부해."

 길에서 일을 하노라면 지난 번에도 얘기 했듯 '지식이 짧은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대부분이다. 웃고 서있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 우러러 보는 SKY를 나와도 백수가 된다. 공무원 시험이나 사법 고시, 취업 준비를 한다고 고시원 단칸방에 앉아서 서른이 넘어서까지 부모님 용돈 타서 사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하루 온 종일 발이 퉁퉁 붓도록 일하는 이 친구들이 나는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참다 못해 말했다.

 "공부 잘 했어요. 요샌 SKY 나와도 백수 많아요."

 그러나 그 아저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지껄여댔다. 내가 뭐라 말한다고 그의 생각이 바뀌었을리는 없지만 그의 말에 짓밟힌 내 옆의 꽃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이제 갓 피어난 꽃 같은 청춘들. 한창 아름답고 빛나야 할 그 나이. 내 눈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이 꽃들이 그의 말 한마디로 피지도 못한 꽃이 되는 것이 아니꼬왔다.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시건방진 농담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는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터질듯한 울분을 참으며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하루 온종일 무시 당하는 인사를 하노라면 가끔 가다가 사람들이 말하는 "수고하세요.", "고생하시네요."라는 말이 눈물 겹도록 고맙다.

 따뜻한 봄이 왔다. 하지만 이곳은 폭풍우 치는 겨울이다.

 꽃들은 짓밟혀도 계속 일어나겠지만 나는 그들이 꽁꽁 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진정 안녕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일까,

 단지 귀찮아서 일까 묻고 싶다.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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