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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익명 Sep 20. 2019

쇼미더머니8 인맥 힙합 논란과
20대가 생각하는 공정함

<공정하지 않다>로 본 20대가 생각하는 '공정함'

<쇼미더머니8>이 매주 방영될 때마다 논란도 매주 일어나고 있다. 모든 래퍼들이 공정하게 랩으로 평가받는다는 프로그램 취지와는 걸맞지 않은 '인맥 힙합' 논란이다. 심사위원이 40초 동안 제대로 랩을 하지 못한 래퍼를 '지난 작업물이 괜찮았다는 이유'로 패스시킨 일, 1:1 랩 배틀에서 패배한 탈락자들이 심사위원의 선택에 의해 다음 단계로 올라감과 동시에 배틀에서 이긴 승자가 탈락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문제는 그런 공정하지 않아 보이는 절차를 거쳐 본선으로 가는 티켓을 거머쥔 래퍼들이 죄다 심사위원의 크루이거나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이라는 것이다. 쇼미가 끝나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힙합 커뮤니티 HiphopLE의 게시판 리젠 속도는 빨라진다.


그리고.. 이 논란에 기름을 부은 기리보이의 인스타그램.


기리보이의 인스타그램 글로 화력 퍽발한 게시판 현장.보통 힙합엘이의 댓글은 5개를 채 넘지 못할 때가 많다...


사실 이런 불공정 심사 논란은 쇼미더머니 매 시즌마다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런 논란이 쇼미 속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책 얘기로 스무스하게 넘어간다) 책 <공정하지 않다>에서 예시로 보여주듯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배달의 민족 인플루언서 무료쿠폰 이벤트' 등등... '공정하지 않은' 기업의 행태나, 정부의 행태를 볼 때마다 20대는 분노한다. (물론 20대인 나도)


오죽하면 이런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를 이용하여 장사까지 해쳐먹는(?) 유튜버까지 나타났다. 구독자가 20만 명이나 되는 유튜버 '정배우'는 일명 '유튜버 인성, 사건 폭로'를 이용해 자신의 유튜브 세를 불리고 있다. 우리 세대 사이에서 인기 유튜버나 BJ는 노력에 비해 쉽게 돈 번다는 이미지가 박혀있는 직업이다. 그들 나름대로 노력은 했겠지만, 내가 이렇게 피땀 흘려 매일같이 출근하고 노동할 때 그들은 단 몇 시간 만에 몇백에서 몇 천씩 번다. '나보다는 적게 노력하지만 더 많은 성과를 얻는 사람들'이다. 정배우는 그런 사람들의 민낯을 폭로해(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순식간에 정상에서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무슨무슨 BJ는 많은 돈을 쉽게 벌면서도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은 부도덕한 언행과 행실을 해온 사람이고, 이는 곧 구독자(민심)를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폭로한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고 돈을 벌 수 있는 건 구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구독자들은 그들이 돈을 번만큼 노력하는 사람이길 원한다. 그게 바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니까.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잦은 빈도로 이뤄지는 이런 폭로전은... 정작 우리가 직면하여 맞서 싸워야 할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려버린다. 사실 '정배우'가 인기를 얻는 것 또한 공정하지 않은 일인 데다가, 근본적인 문제점은 모든 직장인의 장래희망(?)이 유튜버가 되어버린 현실에 있는데, 이에 대해 분노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않다> 책에서는 이를 '나쁜 개인에 주목하는 사회', '허상과 싸우지 말자'라는 챕터 등에서 다루고 있다.


아무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왜 이런 '정배우'의 폭로가 20만 명에게는 정의구현처럼 느껴질까? 그에 대한 답은 책 <공정하지 않다>를 구입하여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는 농담이고, 책에서 나온 여러 이유 중 한 가지 포인트를 발췌해서 이야기하자면 무한 경쟁에서 비롯된 업적주의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20대는 IMF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거나 자랐다. 우리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우리 눈에 비친 한국사회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평생직장보다는 상시 해고가 일상이 된 모습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세대보다 더 일찍, 더 길게 경쟁해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10대에도 경쟁, 20대에도 경쟁, 30대가 되어서도 경쟁이다.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삶을 사는 우리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만 경쟁을 견뎌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들인 노력은 매우 소중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노력과 나의 노력 사이에 엄격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이는 업적주의를 낳는다. (업적주의란 주어진 신분, 출신,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지위나 임금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뜻한다. 고 책에 적혀있다.ㅎㅎ) 이런 업적주의에 위배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이런 20대를 이해할 생각도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엘리트 기득권 기성세대는 피라미드 사회 꼭대기 층에서 한국사회 시스템을 모조리 관장한다. 우리가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공정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 그들은 우리가 교육을 받지 못해 보수화되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안위를 챙기느라 바쁘다. 요즘 20대들은 불-편해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우리를 별종 취급하고는 챙겨준다는 시늉을 내기 위해 '꼰대 문화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 


우리의 일상 속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는 우리가 뭐 특별한 종족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기성세대의 꼰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사회 시스템이 우리가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는 선택지는 현재로썬 없다. 책 <공정하지 않다>에서 두 저자는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건 우리 세대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21세기 이후 어떤 나라에서도 성공한 적 없는 국가 원수를 직접 끌어내린 세대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정하지 않다>의 두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더 이상 누가 더 불쌍한 피해자인지 경쟁하지 않고, 실제 세계에 집중하며, 서로의 다른 점을 주목하기보다 같은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깜빵에 넣은 것처럼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우리가 직접 만드는 변화, 그 첫 과정에는 <공정하지 않다>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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