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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Jun 30. 2024

[허송세월]

작가 김훈의 새 에세이집

작가 김훈은 어느덧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현대 한국 문단에 쏟아진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장한 그의 작품들은 당대의 한국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미학적이고도 완정한 형태를 보여준다. 문법과 어법, 수식, 수사 등의 모든 측면에서 그의 글은 완벽에 가깝다. 물론 이런 평가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다. 그의 글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의 글에 내장된 미학적 아우라만큼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김훈은 언어불신론자이다. 그는 언어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그 능력이란 언어가 사물이나 개념의 전모를 드러내고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으로서의 능력이다. 김훈은 언어가 이런 능력을 가지지 못했거나, 매우 불충분하게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언어가 도달하기 이전의, 혹은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사태의 본질 앞에서, 자신의 표현대로 늘 중언부언하거나 기진(氣盡)한다. 그런 김훈의 언어가 다가가지 못하는 이 세계는 생명이 약동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장엄한 자연사(自然史)적 세계이며, 거기에 인문의 상처가 얼룩진 인간의 세계이다. 풍경과 상처, 자연과 인간, 언어와 언어의 저편, 김훈은 이 대립된 개념의 틀 속에서 일생을 허우적거리며 필경(筆耕)의 먹고사는 운명을 민망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걸 또 "민망하다"고 썼다. 무릇 글쓰는 이들에게 강림한 지옥이란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의 필설이 이 세계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심정을 온전히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는 예감일 것이다. 그는 평생을 이 지옥 속에서 보냈다. 본질적으로 이런 세계에서 할 수 있는 말은 "A는 A이다"의 동어반복 밖에는 없다. 꽃은 그저 꽃일 따름이지 그것이 아름답고 어쩌고 운운하는 순간 꽃 그 자체는 이미 사라진다. "꽃 그 자체", "사태 그 자체"는 현대 철학이 도달하고자 했던 엄정한 이념이었으나 그건 결론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꿈이다. 칸트의 인식론에 따르면 우리는 "꽃 그 자체"를 알 수 없다. 모든 말이 그렇고 사유가 그렇다. 그러니 무언가를 글로 쓴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헛수고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글로 쓸 수 없다"고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이 바로 필경의 운명일 것이다. 원효가 그랬고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다.


그의 새로운 에세이집도 기존의 글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의 세계관은 이제 완정한 형태에 도달하여 더 확장될 경우는 없을 듯 싶다. 다만 나이듦이 주는 체념과 관조의 색채는 짙어졌고 그의 노구에는 병이 깃들었다. 김훈이 아니라 그 누구도 도저한 세월 앞에서는 자연사적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글은 여전히 가파르고 삼엄하며 자기모멸적이다. 자기모멸은 자기반성의 위악(僞惡)적 버전이다.


부디 이 언어비관주의자가 오래오래 건강하여 모든 사유하는 이들의, 그래서 글쓰는 이들의 등불이 되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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