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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20. 2021

나의중동여행기54_몰랐던 오만의 멋

실은 고오급 여행지였네

합승택시는 버스처럼 승객들을 간간히 떨구었다. 대중교통이 잘 다니지 않는 대신 합승택시가 사실상의 이동수단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오후2시께 출발한 택시는 오후5시가 다 되어서야 무트라에 도착했다.


아까 내게 말을 걸었던 노령의 승객은 상당히 친절한 사람이었고 영어도 잘했다. 그는 내가 혼자 여행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내리기 직전에 자기 전화번호를 적은 작은 종이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택시기사가 당신에게 바가지 씌우려 하거든 내게 전화하시오."


실제로 택시기사는 내가 내릴 때쯤  약속한 것보다 돈을 올려받으려 했다. 재빨리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SOS를 요청했더니 택시기사가 마지못해 원래대로 요금을 낮춰주었다.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던 것인데 승객배려가 고마웠다.


무트라 시장에 들러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 줄 선물을 고르며 시간을 보내다 저녁 6시쯤 나를 데라러 와 준 J의 차를 타고 J 집으로 갔다. J가 닭꼬치를 포장해주어 와인과 함께 그것들을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함께 먹은 닭꼬치

다음 날 J가 출근하고 오전 10시쯤 일어났을 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따가 혼자 시내로 나가야 했는데 지갑에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 기념품 산다고 마지막 1리얄까지 다 써버린 게 이제야 생각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두 푼은 남겨둘걸. 난감했다.


그 때 '혹시 한국의 카카오택시처럼 여기도 카드로 계산할 수 있는 택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웹서핑을 해 보니 가장 다운로드 수가 많은 택시앱 '카림'(careem)이 있었다. 중동 여기저기서 우버처럼 이용되는 택시 앱이라고 했다. 일단 앱을 다운로드하고 카드 정보를 등록하려는데 엇!첫 거래 이벤트로 2리얄을 그냥 준다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혹시라도 이벤트가 취소되거나 모바일 지갑에 들어온 돈이 빠져나갈까봐 곧바로 시내로 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J가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했으므로 시내에 있는 그랜드 모스크로  생각이었다. 덜커덩거리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J의 집을 빠져나왔다.


모스크 내부는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나 여성 관광객에게 계속 히잡을 쓰고 다니도록 해 상당히 불편했고 또 불쾌했다. 안 그래도 훅훅 올라오는 열기가 히잡 때문에 더 뜨거워졌다. 모스크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가 아름다웠지만 히잡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됐다. 밖으로 나올 때가 되자 냉큼 그것을 벗어다가 수납데스크에 반납했다.

아름다운 샹들리에
모스크 내부 통로
내부도 이렇게 화려하다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은 뒤 볕 잘 드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켜놓고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는 촌스러운 벽 문양에 아랍식 차 냄새가 나는 여느 아랍 다방같지 않았거의 서양식 카페 같았다. 무슬림 전통 옷을 입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면 한국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오만에 이런 세련된 문화가 있다니 며칠 전에 여행하던 곳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무슬림룩을 입은 손님이 아니면 한국이래도 믿겠음

그 뒤로도 지난날과 비교할 수도 없이 고급진 무스카트를 즐겼다. 내가 지방에서 택시비 갖고 씨름하는 동안 다른 여행객들은 이렇게 지냈겠구나, 원래 무스카트 여행이란 이렇게 편안하고 쾌적한 것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를 들어 오만 시내에는 항구와 맞닿은 쇼핑몰 '워터프론트'있는데, 여러 척의 보트가 떠 있는 바다를 옆에 끼고 화려한 빛을 내는 레스토랑이 줄줄이 들어서 다. J의 소개로 마지막 만찬을 해보리라 하고 간 곳인데 아랍식 백반이 아닌,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가는 건 오만에서 처음이었다.


바다를  수 있는 노천 레스토랑 한 곳선택해 들어갔더니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메뉴판에 있는 어떤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건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가 직원이 약간 당황하길래 더 묻지 않고 다른 걸 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와서 '치킨 앤 라이스'라고 설명해 준다. 이미 다른 메뉴를 시켰는데도 손님이 궁금해한 것을 설명해주러 오다니. 직원의 친절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조명이 화려한 워터프론트 거리 & 새우버터구이
디저트로 시킨 아랍간식 크나파

오만의 럭셔리한 멋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J의 손에 이끌려 '크라운 플라자'라는 호텔의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수영장과 고급스러운 바가 나타났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였다. 밖으로 난 테라스에 몸을 기대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음료가 나올 때까지 자리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는데 어떤 가수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들려왔다. 가수를 초빙해 라이브로 노래를 듣는 무대가 마련돼 있었다. 무대엔 기타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도 함께였다.


가수의 허스키하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바를 가득 채웠다. 목소리가 워낙 좋아 누군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으나, 말해줘도 아랍어를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노래가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힘껏 박수를 쳤다.

바닷내음을 맡으며 노란 불빛 속에서 노래를 듣는 맛이 그만이었다.

크으으으 경치
바의 분위기 넘치는 테이블

다음번에 또 오만에 온다면 이렇게 멋진 경치즐기고 고급 레스토랑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 바다거북 본다고 길거리에서 택시를 흩날리는 밥을 사 먹었는데 정반대의 여행 방식도 가능했것이다.


"여기 유럽인들도 많이 오거든, 주로 편하게 관광하려는 어르신좋아해."

최근에 부모님이 오만에 오셔서 관광시켜드렸던 J가 말했다. 심지어 오만 사막 투어는 뷔페에 간이식 소파까지 준비해 준다고 한다. 요르단 와디럼 사막의 천막텐트에서 아빠와 오돌오돌 떨면서 날밤을 샜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아빠 죄송해여!)


밤11시 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오후 8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J가 차에 시동을 걸고 공항으로 가는 길을 네비게이션에 찍었다. 조수석에 앉아 가족들에게 카톡을 남겼다.

"내가 잘못 알았음. 돈만 챙겨오면 오만 완전 천국임. 담번에 같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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