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Lee May 18. 2016

군인이 부족하다?

이공계 병역특례는 과연 특혜였을까?

먼저, 나는 군대 갔다 왔으니까 니들도 가라는 의도로 이 글을 작성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나는 거의 20년 전인 97년 11월 11일 306 보충대를 거쳐 6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다. 대학 입학을 90년대 초에 했으니까 20대 중반으로 상당히 늦게 군대를 가게 된 셈이었다. (하긴, 가보니 더 늦게 온 분들도 계셨다. 해외 유학, 사시 준비 등이 이유였다.) 대학 초기에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의무라고 해도 아직 제대로 놀지도 못했고 (그때는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면 여자(남자) 친구는 저절로 생긴다고 말하던 시절이었다. 아, 물론 공대는 예외였다.) 막연하지만 26개월의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어영부영하고 있던 사이, 발 빠른 입학 동기들은 2학년 마치고 군대를 간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냥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덧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다. 비싼 대학원 학비 문제도 있었지만 이왕 공부하는 것 병역을 확실히 해결하면서 제대로 하자는 생각도 들어 머리 싸메고 진짜 고 3때보다 열심히 했더니 KAIST 석사과정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는 그 분야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석사과정에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박사 과정은 안 해봤지만 들리는 말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KAIST의 석사과정은 그다지 만만하지 않았다. 코스웍도 힘들었고 나름 겉멋으로 전자과 수업을 듣다가 학점에 심각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개별 연구는 당시 나름 첨단 분야였던 인공신경망을 통한 NP-complete 문제[1] 풀이였는데, 요즘에야 알파고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 딥러닝 등을 접했지만 그때는 관련 논문 찾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2년 차에는 모두들 졸업 준비에 바쁘고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여러 고민을 할 때였다. 어차피 궁극의 목표였던 병역특례를 위해 KAIST에서 석사를 하고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여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박사과정 5년은 기본이고 7년 차에도 학위를 받지 못하고 졸업해도 포닥으로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군대 26개월과 비교할 때 특혜라고 하기에도 좀 무리가...) 그리고 그 당시에만 해도 정부출연연구소나 기업연구소에서 석사급 연구원을 병역특례로 채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과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다 이런 길로 나갔다. 아마 내가 알기로는 석사 졸업 후 군대 간 사람은 내가 거의 전무후무하지 않나 싶다. 사실 이건 표면상의 이유고 실제 이유는 정말 똑똑한 사람을 많이 만나서 기가 죽었달까? '아, 내가 낄 곳은 아니구나... 이 정도면 충분하고 취직해서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정말이지 지금도 그 똑똑한 선후배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정상적이라면, 졸업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이력서를 주욱 넣고 어디 갈까 고르면 된다. 근데, 웬일? 그렇게 많던 병역특례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정출연은 정출연대로 기업연구소는 기업연구소대로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다. '어랏, 이러다 군대 가는 것 아냐?' 결과는 역시나...


11월에 전방으로 입대하면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것 외에도 군대에서 햇수로 4년이 바뀌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나는 97년에 입대해서 2000년 1월에 제대할 수 있었다. 혹자는 도움이 된다는 군대 생활이 사는데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없는 것 같고 다만 해외 이주에 있어서 병역 미이행에 따른 걸림돌은 없었다는 것이 그나마... 누구는 재입대하는 꿈도 꾼다지만 그런 적은 없었고 군생활 중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바로 그때 부르던 군가다. (아마 철원 지방에서 군생활 한 분들은 많이 불렀던 노래일 것이다. 사실 공식 군가는 아니고 사제? 군가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정다운 목소리 귓가에 와서 닿는다 빠밤~ 빠바바바바 밤~~ 
떠나올 때 손 흔들며 짓던 그 미소 눈앞에 아른거린다 빠밤~ 빠바바바바 밤~~ 
태극기 새겨 넣은 가슴 한 곳에 언제나 웃는 얼굴 어머님 얼굴
밤새워 고향 찾아가는 철새야 사랑한다 전해 주려마 빠밤~ 빠바바바바 밤~~


아무튼, 갑자기 옛날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에 누가 생각한 건지는 몰라도 현역자원이 부족하니 이공계 특례를 제한하는 방안으로 2019년부터 박사과정 전문요원을 시작으로 병역특례를 폐지하여 현역자원 수준을 유지한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한국 뉴스를 안 보고 사는 게 속편한데, 브런치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이처럼 언발에 오줌누기 식의 임시방편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텐데, 더욱 우려되는 것은 1997년의 데자뷔인 것 같다는 점이다. 97년 2월, 어쨌든 석사학위를 받고 모기업 연구소에서 몇 개월 근무하다가 11월에 입대를 하다가 훈련소에서 잠깐 뉴스를 봤는데 환율이 1600원을 돌파하는 이례적인 경우를 보고 '이게 뭔 일인가?' 하다가 나중에 들은 소식이 한국이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신입 연구원 채용을 중단한 것이 가장 먼저 발생한 경제 위기의 전조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당장 급한 불을 이공계 인력을 동원하여 줄어드는 현역자원이라는 불을 끄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은 큰 화를 자초할 가능성은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군에서 26개월을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해보려고 짬밥 좀 먹고 나서는 틈나는 대로 GRE를 공부하면서 외국으로 나갈 궁리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업을 계속하지는 못하고 이민의 형태로 캐나다에 오게 되었다. 만약 병역특례를 받았더라면, 한국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살고 있었을 것이고 이런 식의 발표에 무기력함을 느꼈을 것 같다. 나는 어차피 병역필이니까 상관없지만 내 아들은? 지금 누가 이민 와서 좋은 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들이 군대를 안 가도 된다는 것을 고를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번 발표는 한국 정부의 손해다. 한국정부는 26개월을 담보로 20~30년 동안 고급인력을 저렴하게 활용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대신 똑똑한 인재들은 26개월만 눈 딱 감고 버티면 남은 평생 자유롭게 대우받으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KAIST, 서울대, 포스텍 등지에서 반발의 움직임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공계에서 단합된 목소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거의 그럴 일 없다고 보면 된다. 그냥 순서대로 끌려가겠지... 장기적으로 볼 때, 이왕 이렇게 된 거 20세 전에 입대하여 빨리 병역 의무를 해소하고 해외로 나가 향후 인생에 있어 더욱 큰 발전 기회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애국심과 희생은 강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일단 현지 학교 진학이 가장 쉽고 빠를 것이다. 단언컨데, 그대들의 머리라면 여기 커리큘럼은 누워서 헤엄치기다. 졸업 후에는 학계로 진출하거나 산업계로 진출할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의 스타트업을 실리콘 벨리에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취업 시장은 꽤 유연한 편이라서 자기의 능력만 있다면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에서 일할 수도 있고 테슬라에서 들어가서 하이퍼 튜브를 만들거나 유명한 엔지니어링 펌에 들어가서 엔지니어 천국을 경험할 수도 있다. 또한 삼성에서 리크루트하러 올 수도 있다. 한국이 그래도 좋다고 생각되면, 한국에서보다 좋은 조건으로 금의환양할 수도 있다. 만약 캐나다로 온다면, 능력되는데까지 도움을 줄 의향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정부가 여러 분의 진로 결정에 있어서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 https://ko.wikipedia.org/wiki/NP-%EC%99%84%EC%A0%8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