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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Aug 11. 2022

꼬리표를 뗀 가수,
김현성의 Heaven 1

나의 응원가


       2021년 12월, JTBC 싱어게인2, MC 이승기가 ‘43호 가수’를 호명한다. 43호는 본인을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 가수, 라고 소개한다. 심사위원장 유희열이 질문한다. 싱어게인2를 통해서 떼고 싶은 꼬리표가 있다구요? 43호는 심호흡하며 어렵게 말을 잇는다. 그런 후 암전,



       캄캄한 무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의 머리카락이 빛난다. 고개 숙인 그의 몸은 약간의 움직임도 없다. 그가 기도하듯 눈을 감는다. 적막이 공간을 채운다. 그가 숨을 고르고 고갯짓한다. 전주가 흘러나오고. 드디어 입을 열어 노래 부른다. “왜 이제 왔나요. 더 야윈 그대” 어! 음이 흔들린다. 첫 소절에서 아! 끝났다, 하는 감탄을 줘야 하는데... ... “나만큼 힘들었나요” 당황한 걸까? 저음에서 음이탈이 났다. “두 번 살게 하네요.” 탁하고 거친 소리에 그루브를 탈 수가 없다. 영락없이 탈락할 것 같다.


       이대로라면 클라이맥스까지 가지도 못할 거 같다. 더 망신당하기 전에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굴욕 영상으로 영원히 박제될지도 모르는 이 가수의, 이 노래를 제작진은 무슨 마음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성대 결절이라는 핑계로 도망가지. 왜 나와서 자폭하냐] 무수한 악플이 달릴 것 같다.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나는 그가 끝까지 노래 부르기를 응원한다. ‘꼬리표를 떼야 하잖아. 반전이 있을 거야.’ 심사위원이나 동료 가수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두 손을 모으고 귀 기울인다. 넓은 무대의 중압감일까, 홀로 서 있는 그의 목소리가 자꾸 움츠러든다.


       “그댄 나의 전부 그댄 나의 운명 헤어질 수 없어요”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미성이 고음으로 나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줘야 하는데, 목이 쉰 것 같은 탁성에 혼란스럽다. 이래도 2라운드 진출을 응원해야 하나? 미소년의 얼굴에 미성이 매력이었던 가수였는데. 심사위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떨군다. 대기실의 동료 가수들도 하나둘 눈물을 흘린다. 그러던 중 나의 눈에 들어온 게 있다. “그대와 나 영원히 행복한 이곳, Heaven” 마지막 소절을 온 힘을 다해 부르는 그의 표정이 후련해 보인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홀가분한 모습 말이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나는 ‘노동해방’이라는 이상을 꿈꾸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졸린줄도 모르고. 열정을 불사르며 살아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거대한 자본주의에 맞서기엔 너무나 어리고 약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생운동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나. 스스로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내가 만든 감옥 속에서 살았었다. 형벌로 받은 건 지독한 불면증이었다.

      불면의 고통을 삭이길 여러 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 책을 만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을 지은 빅터 E. 프랑클은 말했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고통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고. 내가 겪은 고통을 극복해서 언젠가 나와 같은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덤으로 사는 인생.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기운 차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2화 계속


https://brunch.co.kr/@pressari2/83/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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