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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Oct 15. 2020

잘 견뎌보자, 올 겨울도

밤이랑 토리를 만난 지도 이제 1년이 넘었다.

녀석들이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무사히 사계절을 잘 보내줬다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스럽다.

작년 여름과 지난겨울이 생각보다 혹독하지 않았던 덕분인 것도 같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늘 평화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터줏대감이었던 까망이한테 늘 쫓겨 다니고

3개월 전부터 갑자기 나타난 뻔돌이한테 공격을 당하기도 일쑤.

그럴 때마다 잔뜩 긴장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위험천만한 곳까지 도망친 적도 있었다.

바람 잘 날 없는 길 위의 생활 속에서도 매 순간 잘 넘기고 버텨서 지금까지 왔다.


수컷 치고 덩치에 비해 너무 겁이 많고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 했던 밤이는

올해 중성화 수술할 때 2살 추정이라고 했으니 작년에 막 성묘가 된 게 맞았나 보다.

애기 티가 폴폴 나던 토리도 무사히 사계절을 다 났구나.


그 사이 우리 은비와 꼭 닮았던 금비는 모습을 감춘 지 반년이 넘었고

구내염으로 고생하면서도 겨울집을 알차게 써주던 호냥이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두 녀석들의 빈자리는 이제 노랭이와 뻔돌이가 채워주고 있지만

계절이 바뀌듯 그렇게 녀석들의 자리에도 소리 없이 변화가 생겼다.

이렇다 보니 밤이와 토리 그리고 토토의 자리도

언젠가 그렇게 다른 녀석들로 채워질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영역이니 마음 아프고 서운해도

그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하지만 영 쉽지가 않다.


10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찬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올 겨울은 만만치 않으려나 싶어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녀석들을 챙기면서 매년 계절의 흐름을 함께 느끼고

인간의 것과 무엇 하나 다를 바 없는 고단한 삶을 보며

여느 때보다 허무하고 힘들었던 올 한 해도 이렇게 무심하게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우리, 다가올 겨울도 잘 이겨내 보자.

누구보다 강하고 기특한 녀석들아,

부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줘.

쪼꼬미들 언제 이렇게 컸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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