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반려하는 것의 무게
은비를 돌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픈 고양이를 반려하는,
그리고 떠나보내는 집사들의 글을 본다.
환묘 카페에는 하나 같이 절절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 뿐이다.
그런데도 외면할 수 없는 건 동병상련의 마음 때문이다.
내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동시에 아이에게 더 좋은 집사가 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 내 아이가 더 오래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
환묘를 케어하는 집사들의 마음은 모두 다 똑같다.
몇 년 전 혹독한 펫로스를 겪었던 나는, 다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길 위의 아이들을 돌보며 펫로스는 많이 치유됐고 덕분에 은비를 만났지만,
지금도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생각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훗날 은비마저 떠나고 나면 더는 동물을 키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펫로스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큰 아픔이었기에
또다시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어서다.
그러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아픔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예쁘고 귀여워서, 혹은 외로워서, 우울해서
남들이 키우는 것만 보고 무작정 데려왔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의 순간을 수차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리고 건강했던 시절은 찰나이고
사람보다 몇 배는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동물들은 순식간에 나보다 더 나이를 먹고, 내가 모르는 사이 병들어버린다.
아이에게 내 손길이 절실히 필요해지는 순간,
내가 아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을 해야만 할 때.
그때가 오면 언젠가는 겪을 일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한 생명의 생과 사가 나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는 순간,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 인생 첫 반려동물이었던 해피는 말년에 심장병으로 투병하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생후 한 달쯤 됐을 때 내게 와서 처음으로 동물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사랑을 가르쳐준 아이.
열 살이 되던 해, 갑자기 아이가 의식 없이 쓰러져 몸이 뻣뻣하게 굳는 증상이 생겼고
어릴 때부터 아이를 봐줬던 병원에서는 기관지가 좁아져서 그럴 거라며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무지했던 나는 기관지 확장제와 관절 영양제만 2년 가까이 먹이며 병을 키웠다.
쓰러지는 증상은 다시 나타났고, 어느 날 뒷다리마저 못쓰고 주저앉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하여
바로 대학병원에 데려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이첨판폐쇄부전이었다.
완치는 불가하고 진행만 늦출 수 있는 심장병.
2기였지만 강심제와 이뇨제를 모두 써야 하는 단계라 아이의 신장에도 타격을 줬다.
심장병이라 수액도 함부로 놓을 수 없었지만, 신장을 위해 피하 수액도 소량으로나마 해야 했다.
아이는 그 작은 몸으로 반항 한 번 없이 수액을 맞아줬고,
하루에 2~3시간 텀으로 약을 10가지씩이나 먹으며 2년을 더 버텨냈다.
병세가 악화될수록 의식을 잃는 횟수도 늘어났고
선잠을 자며 경련으로 굳어버린 몸을 주무르고 새벽마다 구토를 치우는 일상이 반복됐다.
내가 프리랜서가 된 건 그 아이의 간병 때문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더 오래 살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당시 심장병으로 저명하다는 교수님은 강원도에 계셔서 통원이 불가했고,
대신 그분의 제자(지금은 아예 심장전문병원을 운영 중이시다.)에게 진료를 봤으나
병원을 옮겼을 때는 이미 너무 악화된 상태였기에 끝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6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가슴 아픈 건 그 작은 아이가 죽기 전까지 고생을 참 많이 했기 때문이다.
폐수종은 없었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신장에도 타격이 와서 요독 증세가 나타났고,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로 속을 계속 게워내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대 식도증이 생겼다.
막판에 췌장염까지 오면서 고통스러워하던 아이는 -
떠나기 전날 밤 병원에서 나와 함께 날을 지새우고,
마지막 순간까지 심초음파를 받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가 이제 그만 날 보내달라고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마음 편히 놓아줄 수 있었을까.
내가 어느 시점부터 어디까지 하는 것이 옳았을까.
아픈 반려동물을 돌보는 건 매 순간 어려운 선택의 연속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CPR까지 하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이제 그만해달라며 주저앉아 한없이 울었던 그날,
아이를 보내며 내 마음도 함께 죽었다.
이별에 준비란 게 있을 수 있을까.
난 모르겠다. 어떤 방식이든 어떤 각오를 하든 모든 이별은 슬프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진작 집으로 데려와서 편안하게 해 주다 보낼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와 자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떠나는 순간까지 검사를 받다 가게 한 것이 두고두고 가슴에 사무쳐 지금도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말 못 하는 동물이 병마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미칠 노릇이었지만
갈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병원비 또한 감당하기에 벅찬 수준이었다.
심장병은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검사비도 비싸지만 약값도 엄청났다.
처방약뿐만 아니라 함께 먹이는 보조제도 늘 쟁여놔야 했고
매달 숨 쉬는 것처럼 돈이 빠져나갔다.
가끔 그런 생각도 했다.
병원비로 너무 힘들어하니 아이가 그걸 알고 더 빨리 떠나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돈 때문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고통받다 생을 마감하는 작은 생명들이 수도 없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도 그때 처음 했던 것 같다.
사람도 그렇듯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건 굉장히 비참한 일이다.
그만큼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는 경제적인 문제도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쩌면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를 안다면 있을 수도, 있어서는 안 될 일임에도
너무 많은 동물들이 쉽게 거래되고 버려지는 세상.
사람도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사회가 된 마당에 동물에게는 오죽할까.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에 꼭 알았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했던 시간 뒤에는
무거운 슬픔과 눈물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의 마지막 여정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과 책임감 없이는
애초에 시작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아이가 떠나고 나면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가 남지만
이미 한차례 겪었던 만큼 이번에는 최대한 후회하지 않도록
은비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미안하고 힘들었던 순간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린 이미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으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본능에 따라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내 작고 귀한 아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년만 더 살아주길.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날 쳐다보고 있는 은비에게 말한다.
'은비야, 너 대학 갈 때까지 엄마 옆에 있어줘.'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 둥 마는 둥 집사 손가락 사냥에 여념이 없는
이 아이의 묘생을 평생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내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자 행운이다.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고양이를,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현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
동물을 키우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우니 제발 키우지 말라는 말을 하려던 건 아니다.
그만큼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