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_
갑자기 싸늘해진 바람 탓인지 몹시도 우울한 하루였다.
참 오랜만에 들었다.
고양이 밥 주지 말라는 말.
그럴 거면 다 데려다 키우라는 말.
어쩜 저 레퍼토리는 하나같이 다 외운 것처럼 똑같은지 신기할 따름이다.
무책임하게 남한테 피해 주며 아무 데서나 밥만 주는 무개념 캣맘 취급을 당한 것 같아 유난히 더 불쾌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하고 싶은 말들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어차피 그런 말을 쏟아내 봐야 통할 리 없는 부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보다 고스란히 그 피해가 아이들에게 돌아갈까 봐 차마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뱉어내지 못했다.
억지로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돌아서니 그제야 참았던 울분이 터졌다.
그날 결국 새벽 5시까지 잠을 설쳤다.
근 20년을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이곳에는 길고양이가 있었다.
이미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길고양이는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었지만
그걸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인간들은 턱없이 적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부터도 그랬다.
길고양이들은 알려진 바대로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
그렇게 미워하고 밥을 줘라 마라 간섭하지 않아도 현실이 그렇다.
이미 모습을 감춘 애들도 여럿이고 지금 돌보고 있는 애들도 얼마나 살지 나도 모르겠다.
밥 주지 말라며 큰소리치던 그 인간의 명줄이 아무리 짧다 해도
허겁지겁 눈치 보며 먹고 도망가기 바쁜 길고양이들 수명에 비할 바는 아닐 테니까.
그럼 또 어차피 일찍 죽을 애들 뭐하러 밥을 주냐고 하려나?
인간도 죽을 걸 알면서 살잖나.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내는 척박한 길 위의 삶,
적어도 굶진 않고 다녔으면 하는 마음으로 밥과 물을 주고 있고.
조금이라도 덜 고달프게 살아가라고 중성화 수술도 시키고 있다.
고양이가 먹고 간 밥자리를 정리하다 보면
때로는 그 밥을 새들도 먹고 기어가던 개미들이 주워 먹겠다고 몰려들기도 한다.
인간이 싫어한다고 멋대로 사라지게 할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애초에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닌 것을.
길 생활을 하다 보니 몸이 온전치 않은 아이들이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양이가 좋아서. 동물이 좋아서 한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이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하니까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고
생명의 경중을 따지기보다 같은 생명이니 소중하게 존중받길 바랄 뿐이다.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하니까.
남의 거주지에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밥 주는 데 돈 보태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그리들 못마땅할까 생각해봤다.
그 사람들은 그냥 고양이가, 동물이 싫은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저것뿐이었다.
당신들이 싫어하는 그 소리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중성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고,
지저분하게 뜯긴 쓰레기가 굴러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 밥을 주는 거라고 설명해도
그들은 귀를 막고 자기 말만 하고 돌아선다.
어떤 말도 듣기 싫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기분 나쁜 태도.
누구나 좋고 싫음이 있기에 싫어하는 걸 좋아해 달라고 강요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인간이면 최소한 인간다울 수는 없을까.
길고양이 밥 주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 행위도 아니고, 지탄받을 일이 아님에도
늘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이 땅의 캣맘 캣대디들이 안타깝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음에도 싸잡아 똑같이 취급하고
차근차근 설득하려 해도 들으려고도 안 하는 자들을 보면
너무 답답해서 말이 곱게 안 나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애들 때문에 간신히 참고 있다.
누가 그러더라.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면 외로워진다고.
그게 길고양이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디 털어놓을 곳도 없고 공감받기도 힘든 일.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외면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인간끼리도 혐오가 판치는 세상에서
인간다운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건 역시나 너무 큰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겨울이 더 춥게만 느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