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이었지만 널 기억할게
정확히 작년 이맘때 낯선 아이가 밥자리에 나타났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동네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노란 고양이었다.
어디서 얼마나 떠돌다 왔는지 꾀죄죄한 몰골로 행색이 말이 아니었던 녀석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눈치를 보며 밥을 먹었다.
다행히 이곳이 맘에 들었는지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녀석은 매일 같이 모습을 보이며 그렇게 일 년 가까이 밥자리에 찾아오는 손님이 되었다.
흔하디 흔한 노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다른 아이들과도 곧잘 지내는 듯하여 별 걱정을 안 했는데
어쩌면 처음 본 그날, 아니 그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혹독했던 지난겨울, 홀로 겨울 집도 알뜰하게 써줬던 녀석은
그 차디찬 겨울이 끝나갈 무렵 돌연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고 -
노랭이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양쪽 모두 딱딱하게 굳은 눈곱으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에
몸은 말도 못 하게 야위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어디가 아픈 걸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던 걸까.
의문 투성이었지만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니란 걸 알아서였는지
녀석의 경계는 더욱 심해졌다.
밥도, 간식도, 물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내내 그 모습이 너무나 눈에 밟혀 병원에서 약이라도 지어오려 했지만
녀석은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영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겁도 많고 의심도 많아 포획에 여러 번 실패하고, 유일하게 중성화도 못해준 녀석이었지만
치즈 태비답게 참 순한 아이였다.
진작 몸이 안 좋은 걸 알아채고 약이라도 먹였다면 좀 나았을까.
뒤늦은 죄책감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작년에 어느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기로 했다.
어느 날 홀연히 모습을 감춘 고양이는 모두 동네 야산으로 수행을 떠나
'나는 아직 미숙하다'라고 일상의 행동을 반성하며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는다고 믿었다는
어느 마을의 전설에 관한 이야기.
그 동네의 옛날 사람들은 아끼던 고양이가 사라졌을 때 그러한 전설을 믿고 슬픔을 견딘 모양이다.
아무도 그 고양이가 '죽었다'라고 말하거나 그렇게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돌아오기라도 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그 고양이의 '무사귀환' 소식에 웃음꽃을 피웠다고.
그 발상이 몹시도 귀여워 웃음이 나면서도 아련하게 와 닿는 구절이었다.
내 이기적인 바람인지도 모르겠으나 차라리 녀석도 수행을 떠난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부디 그 수행 길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