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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Aug 13. 2021

고양이의 시선 끝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다

여름이 두려운 이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폭염의 기세가 드디어 한풀 꺾였다.

한낮의 볕은 여전히 따갑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올여름도 끝을 향해 가는 모양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은비는 내 옆에서 턱을 괸 채 평화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일하느라 모니터에 정신이 팔려 있긴 했지만,

흘깃 쳐다봤을 때 분명 잠들어있었는데...

몇 분쯤 지났을까.

곤히 자던 녀석이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더니

쏜살같이 달려가 거실 구석에서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고양이 집사라면 대충 짐작할 것이다.

이 불길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보지 않아도 직감할 수 있었다.

분명 내가 혐오하는 무언가가 나타났음을.

고양이들의 예민한 감각과 반응 속도는 실로 경이로울 정도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소리로 감지한 걸까, 아니면 수염?


처음은 아니었다.

작든 크든 뭔가 움직이는 생명체가 나타나면 고양이는 가장 먼저 반응한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것도 그보다 더 빠를 순 없을 거다.


웬만한 건 그런대로 잘 참는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 바로 벌레다.

부끄럽지만 나란 사람은 하루살이 정도의 크기가 아닌 벌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벌레가 널 잡아먹냐!'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어쩌란 말인가, 무서운걸.

호주에서 매미만 한 바퀴벌레를 여러 번 목격한 후로 어지간한 크기에는 충격을 덜 받는 편인데

그래도 보기 싫은 건 싫은 거라서(오열).

여전히 벌레는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평소에는 벌레를 볼 일이 거의 없는데 여름만 되면 꼭 이런 일이 한 번씩 생긴다.

무슨 연중행사도 아니고...

이러니 도무지 여름을 좋아할 수가 없지.

제발 내 눈앞에만 안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굳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은비 덕에 매번 강제로 보게 된다.


"아... 또 뭐야. 이래서 여름은 진짜 싫다니까."

구시렁대며 일어났지만 현장(?)을 본 순간 눈을 질끈 감고만 싶었다.

식은땀이 줄줄 나는 집사 심정도 모르고

은비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옆에서 또 다른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다.

차라리 대신 없애주기라도 하면 모를까,

장난감처럼 툭툭 건드리기만 하고, 도망가면 쫓아다니기 바쁘니

 웃픈 상황에 집사는 그저 환장할 지경(깊은 한숨).


잡아주지 못할 거면 방해라도 하지 말아 줄래? 요놈아!

갑자기 우리 집 고양이가 무언가에 홀린 듯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면

일단 긴장하시라.

거기엔 집사가 반기지 않을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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