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두려운 이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폭염의 기세가 드디어 한풀 꺾였다.
한낮의 볕은 여전히 따갑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올여름도 끝을 향해 가는 모양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은비는 내 옆에서 턱을 괸 채 평화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일하느라 모니터에 정신이 팔려 있긴 했지만,
흘깃 쳐다봤을 때 분명 잠들어있었는데...
몇 분쯤 지났을까.
곤히 자던 녀석이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더니
쏜살같이 달려가 거실 구석에서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고양이 집사라면 대충 짐작할 것이다.
이 불길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보지 않아도 직감할 수 있었다.
분명 내가 혐오하는 무언가가 나타났음을.
고양이들의 예민한 감각과 반응 속도는 실로 경이로울 정도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소리로 감지한 걸까, 아니면 수염?
처음은 아니었다.
작든 크든 뭔가 움직이는 생명체가 나타나면 고양이는 가장 먼저 반응한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것도 그보다 더 빠를 순 없을 거다.
웬만한 건 그런대로 잘 참는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이 바로 벌레다.
부끄럽지만 나란 사람은 하루살이 정도의 크기가 아닌 벌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벌레가 널 잡아먹냐!'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어쩌란 말인가, 무서운걸.
호주에서 매미만 한 바퀴벌레를 여러 번 목격한 후로 어지간한 크기에는 충격을 덜 받는 편인데
그래도 보기 싫은 건 싫은 거라서(오열).
여전히 벌레는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평소에는 벌레를 볼 일이 거의 없는데 여름만 되면 꼭 이런 일이 한 번씩 생긴다.
무슨 연중행사도 아니고...
이러니 도무지 여름을 좋아할 수가 없지.
제발 내 눈앞에만 안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굳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은비 덕에 매번 강제로 보게 된다.
"아... 또 뭐야. 이래서 여름은 진짜 싫다니까."
구시렁대며 일어났지만 현장(?)을 본 순간 눈을 질끈 감고만 싶었다.
식은땀이 줄줄 나는 집사 심정도 모르고
은비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옆에서 또 다른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다.
차라리 대신 없애주기라도 하면 모를까,
장난감처럼 툭툭 건드리기만 하고, 도망가면 쫓아다니기 바쁘니
이 웃픈 상황에 집사는 그저 환장할 지경(깊은 한숨).
잡아주지 못할 거면 방해라도 하지 말아 줄래? 요놈아!
갑자기 우리 집 고양이가 무언가에 홀린 듯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면
일단 긴장하시라.
거기엔 집사가 반기지 않을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