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거 아니에요(...) - 뻔돌이 이야기
전에 길고양이에게 냉랭하기만 한 시선에 대해 짧게 쓴 적이 있는데
실제로 아이들을 챙기면서 많이 느끼는 건
정작 대다수의 사람은 길고양이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유독 싫어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크게 내어, 때로는 그들이 다수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보통은 길고양이가 있든 말든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길거리에 비둘기가 걸어가든 날아가든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바로는 그랬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좋아하지 않더라도 관심을 보이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모든 사람이 다 싫어하고 차갑기만 한 건 아니라는 이 당연한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는 날들이 있다.
하루는 집에 오는 길에 아파트 입구 쪽에서
허리를 잔뜩 숙이고 어딘가를 향해 웃으며 손 흔드는 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려다 다시 뒤돌아서 손을 흔들고, 다시 몸을 낮추기를 반복하는 걸 보고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아저씨가 들어간 뒤,
그 자리로 가서 똑같이 허리를 숙이고 뭐가 있는지 살폈다.
... 뻔돌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지만 초면에 참 귀여운(?) 모습을 보고 말았다.
모르긴 해도 고양이를 키우거나 좋아하는 분이실 거다.
넉살 좋은 뻔돌이는 곧잘 아파트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곤 했다.
혹여나 싫어하는 사람이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뻔돌이를 예뻐해 주는 주민들이 많았다.
"야옹아~ 너 밥은 먹었어?"
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아이고, 넌 뭘 그리 많이 먹었길래 살이 통통하냐."
하고 웃음 섞인 핀잔을 주는 어르신도 있었고,
고양이 간식을 손에 쥔 채 어떻게 줘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분을 보기도 했다.
7kg에 육박하는 몸매의 소유자답게 웃지 못할 오해도 많이 샀다.
아마 이 동네 고양이 중에서 임신했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을 거다.
"여보, 쟤 임신했나 봐."
"어머... 배가 만삭이네."
내가 우연히 들은 것만 해도 여러 번이다.
웃으면서 '정정'해준 적도 있지만
아직 실체(?)를 모르는 주민이 같은 오해를 하면 이제는 그냥 웃고 지나간다(...).
정말 '임신'한 고양이인 줄 알고 뻔돌이에게 더 관대한 분들이 많았던 걸까.
어쨌든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니
더는 임신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없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는 중이다.
수행을 떠난 노랭이 자리는 이제 뻔돌이가 홀로 지키고 있다.
처음 녀석이 밥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대장 고양이 노릇을 하려는 속셈이었는지
기존 아이들(밤이랑 토리)을 하도 괴롭혀대서 골치를 앓았다.
겁도 없고 막무가내인 구석이 있어서 이름도 뻔돌이라고 지어버렸지.
그렇게 얄미운 시절도 있었지만 -
알고 있다.
녀석도 살아야 했기에, 자기가 살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한 달쯤 지나서였나.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중성화를 시켰더니
대장 냥이가 되겠다며 폭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몰라보게 순하디 순한 모습으로 돌아온 뻔돌이.
꼬맹이인 토리한테 꼼짝 못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수컷의 몸으로 임신한 묘라는 오해까지 받고 있으니 -
거참,,, 체면이 말이 아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