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소영 Jan 02. 2021

토종쌀 채소 빠에야 꾸러미 만들기

2020년 하고 싶어서 하는 프로젝트

지난 한해는 모두 살아내느라 더 애쓰셨을 것 같아요. 마음이 새큰해지네요. 


긴 장마에 역병에 자연과 인간의 안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과 마음으로 알게된 한 해였어요.

일 년간의 농사가 순식간에 물에 잠기고 젖어 헛수고가 되는 허망함을 곁에서 보았고요, 바뀌지 않으면 제가 요리하고 싶었던 것, 우리 가족이 먹고 싶었던 것 앞으로는 마음껏일 수도 없겠구나 깨달았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전 봉금의 뜰 김현숙 농부님의 소개로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K3-V1j-zMZw&feature=youtu.be


이미 공기 중에 배출된 탄소를 규제하는 것으로는 지금의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대요. 탄소를 대지로 돌리는 유일한 방법은 땅을 살리는 것이래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공기 중의 탄소를 땅으로 돌리는 것(탄소 고정), 모두 기억나시지요? 동물은 식물을 먹고 유기질을 다시 땅에 공급하여 땅을 비옥하게 하지요. 이 순환을 제대로 회복하는 방법은 자연 농법 뿐이에요.  그리고 자연 농법을 살리는 쉽고 확실한 실천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난 채소와 곡물을 먹는 일이지요.


요리사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봤습니다. 사람들에게 우리 근처에서 나는 건강한 채소와 곡물로 요리할 수 있는 재료와 레시피를 쉽게 얻도록 해주자. 2020년이 가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꼭 하자.


이 언니의 순진하고 무모한 계획에 동생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


주인공 쌀 구하기 (12월 6일)


빠에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쌀이라고 생각합니다. 쌀을 잘 익혀야 맛있는 빠에야가 되지요.

우리의 주식인 쌀을, 그것도 길쭉한 쌀이 아니라 찰지고 동글동글한 단립종을 스페인 사람들도 먹는다는 걸 알고 참 반가웠었지요. 이번 빠에야의 주인공은 우보 농장의 북흑조입니다.


일제 시대를 거치며 1400여종에 이르는 우리나라 전역의 다양한 토종쌀들이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 많은 쌀들이 얼마나 다양한 맛과 멋을 지니고 그 마을 고유의 문화로 존재했을까... 궁금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다행히 십여년전부터 우보 농장의 이근이 농부님이 토종쌀을 발굴하고 이어나가는 소중한 작업을 하고 계세요.


농부님께 어떤 쌀이 좋을까 여쭈었는데, 북흑조를 소개해주셨어요.


*** 


북흑조

- 극만생종 메벼(평안남도)


벼의 모습이 북방 지역의 강인한 풍모를 연상케하여 이름 붙여진 듯 싶다.

이삭이 검고, 토종벼 가운데 키가 가장 큰 품종 중 하나이다.

마디가 튼실하게 이어져 있으며 까락이 없다.

이삭이 팰 때부터 흑자색을 띤다.

줄기가 굵어 단단해 쓰러짐에도 강하다.

볏대 속의 색은 자주색을 띈다.

볏대 마디에 검은 띠를 두른 것처럼 선명하다.

현미색 또한 진녹색을 띄어 백미와 어울려 밥을 지으면 좋을 듯 하다.

평안남도의 주요 재래종이다.


북흑조는 낱알이 크기도 하고 찰기도 과하지 않아서 우리네 쌀보다 살짝 덜 찰진 쌀을 사용하는 빠에야에 잘 어울립니다. 요사이 인기가 있는 개량종 쌀들은 구수한 향이 강해서 오히려 육수의 맛을 입혀야 하는 빠에야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북흑조의 은은하면서도 묵직한 뒷맛은 빠에야에게 안성맞춤이네요!


꾸러미 준비를 위해 우보 농장에서 갓 도정한 북흑조를 데려왔어요. 우리는 쌀의 낱알만 기억하지만 사실 이렇게 멋드러진 이삭을 지닌 식물이랍니다. 정말 많은 품종의 벼들이 다양한 키와 모양새를 자랑하고 있었어요.


고스란히 영양을 간직한 현미로 빠에야를 만들고 싶지만, 조리에 들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농부님께 빠에야에 적당하며 최대한 덜 쌀겨를 깎은 8-9분도 사이의 도정을 요청드렸어요. 언젠가 현미 빠에야도 꼭 만들거예요!


수차례의 실험을 거쳐 북흑조에 맞는 쌀 익힘 시간을 알아냅니다. 북흑조로 더욱 당당하고 건강한 마하키친 빠에야 꾸러미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


꾸러미의 탄생(12월 10일)


빠에야(Paella)는?

스페인은 유럽 다른 지역과 달리 쌀을 키울만한 기후 조건(강수량)을 갖추고 있고, 700년간 이베리아 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지역)가 아랍 문명의 영향권 아래 있었기에 오래전부터 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쌀로 만든 빠에야가 스페인의 전통 음식으로 널리 알려지고, 특히 좋은 쌀을 생산하는 발렌시아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예전엔 들에서 농부들이 일하다가 밭의 토끼, 달팽이를 잡아 쌀과 끓여 먹던 새참이기도 하고, 바다에선 어부들이 해산물과 밥을 끓여먹던 선상의 식사였답니다.

오늘날의 빠에야는 주말 오후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천천히  만들어 먹는 특별한 집밥이기도 하고, 지역 축제에 빠지지 않는 잔칫상이기도 하지요.


마하키친의 빠에야는?

바쁘고 요리가 아직은 어려운 우리들을 위한 쉬운 빠에야입니다.

조리법은 스페인 식이지만 우리의 주식인 쌀을, 이 땅에서 자라온 토종쌀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음식입니다.

기후 위기의 주범인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채소 중심의, 자연농법으로 길러진 로컬 채소를 최대한 활용한 식사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음식물과 용기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한 밀키트입니다.


만들기 동영상

https://youtu.be/GyvBPWkIw4g



***


꾸러미 보내는 날(12월 22일)


드디어 꾸러미들을 챙겨서 떠나보내는 날입니다.

요사이 코로나로 이런 저런 계획들이 미루어지다보니 준비를 차근차근 해둘 수 있었어요. 

그래도 오늘 아침엔 걱정이 되었는지 세상 잠꾸러기가 눈을 번쩍 뜨더라고요.


햇볕 아래 거의 한 달을 말린 양배추랑 무를 챙겨서 채수 재료로 챙겨 놓고요.



북흑조도 한번씩 살핍니다. 

농부님께서 정성껏 도정해주셨지만 부서진 낱알이나 겨가 섞여있으면 걸쭉하거나 식감이 좋지 않은 빠에야가 되니까요. 


북흑조 설명도 붙이고,



깜짝 선물(?) 뚜론Turron도 담습니다. 뚜론은 스페인에서 성탄절 즈음에 먹는 과자입니다. 

주로 아몬드와 꿀, 설탕으로 만들고 다양한 재료로 변주가 가능하지요. 저는 올 여름에 장마로 큰 피해를 입으신 만나 농원의 건포도와 국산 땅콩, 생강, 공정무역 초컬릿으로 만들어 봤어요. (설탕과 꿀을 캐러맬화해서 굳히는 과정이 저한테는 처음이고 어려워서 5번을 망친 끝에 완성했어요. 참 ㅎㅎㅎ)

만드는 과정에서 궁금해서 유래도 찾아봤는데 스페인에서는 뚜론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누가, 이탈리아에서는 또로네, 이렇게 주변 나라에도 비슷한 과자가 있더라고요. 



최대한 환경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비닐을 덜 쓰고 종이를 쓰려고 해봤습니다. 박스에 붙이는 테이프도 떼지않고 그대로 버릴 수 있도록 종이로 샀는데 자꾸 찢어져서 애를 먹었답니다.  



쌀은 용기를 계량컵으로 활용할 수 있게 생각해봤는데, 나중에 병을 돌려주시면 환불해드리려고 합니다.



정말 맛있는 올리브유(엘 트루할)는 새지 않도록 꽁꽁 싸맸고 친구에게 한번 보내서 테스트도 해보았는데 제발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어요. 


우체국은 정말 선물을 보내는 사람들로 붐비더라고요. 코로나로 인해 더욱 그렇겠지요. 쉽게 만날 수 없으니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요.

꾸러미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선물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올 해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시도해본 것도 뿌듯하고요. 저의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과 실수에도 늘 함께해주는 동생에게 참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꾸러미를 신청해주신 분들에게 참 고맙고요.   


제발 별 탈없이 도착하길, 제 역할을 잘 해내길 기도해 봅니다.   


***


토종쌀 채소 빠에야 꾸러미는 사랑을 싣고(오늘)


 성탄절 아침은 빠에야 후기를 확인하느라 핸드폰을 자꾸 들여다 보았습니다.

이틀 전에 가장 섬세한 유리로 만들어진 올리브 오일 병이 깨져서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다시 보내드리는 사건도 있어서 더욱 마음을 놓지 못하였어요. 다행히 다른 꾸러미들은 모두 무사히 도착하긴 했습니다. 


 꾸러미가 잘 도착해서 제 몫을 해내고 있을지 걱정하는 절 어찌 아시고, 집집마다 특별한 손길과 재료를 담아 고유한 빠에야를 완성해 주셨습니다. 작은 아기가 있는 집은 이유식 용으로 잘게 자른 채소를 넣고 소화가 잘 되는 귀여운 빠에야를 만들기도 하시고, 식욕이 왕성한 청소년 자녀를 두신 댁은 해산물을 듬뿍 넣고 풍성한 빠에야를 만들기도 하시고, 냉장고의 잠자던 재료를 꺼내 알뜰하게 근사한 저녁을 차려낸 분도 계시고, 요리가 아직 낯설어서 저희 유튜브로 예습하시고 조심스레 완벽한 빠에야를 완성한 사연도 듣고요, 듣고 볼 때마다 안심하고 놀라고 기뻤답니다. 모두 제가 만든 것 보다 멋지고 훌륭한 빠에야였습니다.

 게다가 세상에, 몇년 전 강의에서 인연이 된 어머님을 꾸러미를 통해 다시 만나기도 했습니다.

 


 “ 메리 크리스마스~

 선생님 빠에야를 오늘 점심 특식으로 해서 먹었는데 넘넘~맛있게 먹 었어요~

저희 남편께서도 감탄하시며 드셨답니다. 정말 특별한 성탄절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택배 발송과 포장재(종이 테이프와 포장재, 보냉제를 최대한 활용했지만 더 개선할 부분들), 대부분 로컬 친환경 채소를 재료로 사용했지만 맛 부분 때문에 토마토 같은 수입 재료를 썼던 부분에서 환경적인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합니다. 소스를 담았던 병과 주머니를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콘텐츠로 만들어서 알려드리는 것도 하고 싶고요.


 아직 이렇게 갈 길이 멀지만, 우리 곁에서 나는 자연의 재료들로 잠시 스페인 여행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꽤 잘했다고 저희를 칭찬해주려고요.(부끄) 제가 요리를 만들어 대접해드리는 것보다, 직접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는 경험을 드리는 것이 요리의 긍정적인 영향을 더 깊이, 멀리 퍼뜨리는 것 같아요. 아버님이 꾸러미를 통해 빠에야를 처음 만나셨다는따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깨달았어요.(고마워요, 해리님)


 올해, 아니 지난해 한 일 중에서 가장 기쁘고 보람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새해에도 이어나가야지요!

작가의 이전글 시금치 구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