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한남자 Mar 03. 2016

자전거 천국, 밀라노

'바이크미'와 함께 한 밀라노 여행 

'밀라노의 혼'이라 불리는 밀라노 대성당. canon, mark-2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운전 경력이 이제 10년 가까이 되었으니 나름 관록 있는 운전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10여 년의 운전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운전실태에 대해 평해보자면 이러하다. '옆 차선에서 깜빡이를 넣으면 액셀을 밟는다', '양보하면 바보', '도로에서는 무조건 차가 우선'. 너무 부정적인가? 안타깝지만, 내가 10여 년간 운전을 하면서 체득한 진리는 이러한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운전을 잘 한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물론 끼어들 타이밍을 잘 안다던지, 공간지각 능력이 뛰어남은 물론이겠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운전법규를 어길 줄 알아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 그것은 융통성이라는 말로 포장되고, 규칙을 교묘히 어겨가면서 남들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은, 언뜻 삶의 한 진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너무 과장된 비유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예 맞는 구석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가 (거의) 성공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고, 실제로도 신호위반을 하고 칼치기를 하는 이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겉으로는 그것을 비난하면서도 내심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그간 운전대를 잡으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물론 나 역시도 거기에 완전히 결백하지는 않으니, 앞서 적은 글은 나의 고해성사라고 해도 되겠다(하지만 난 운전할 때도 소심해서 잘 그러지 못한다).


유럽에서는 도심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canon, mark-2


밀라노뿐 아니라 유럽에 머무는 동안에는 도로 위를 달리는 자전거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정작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한없이 평안해 보였지만, 초반에는 그것을 보는 내가 위태로운 마음이 들어 움찔거렸던 기억이 난다. 도로 위에서 자동차와 자전거가 저렇게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라니. 그것은 마치 유럽의 웅장한 건축물을 볼 때 느꼈던 경외심과도 비슷한 감정이었었다. 물론, 그네들의 생활환경과 도로 사정 같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이런 평화로움을 이뤄 낼 수 있는 배경이었겠지. 사실 '무턱대고 남의 나라 것이니까 좋아 보인다'와 같은 사대주의적인 시선이라고 해도 딱히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부가적인 요소와 시스템 이전에, 운전자들의 인식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밀라노의 자전거 신호등. 자전거 도로에 관한 시스템이 참 잘 갖춰져 있었다. contax, t-3


내가 사는 곳에는 바로 앞에 2차선 도로가 나 있다. 때문에 어디를 가려면 무조건 이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신호등도 없고 차들이 워낙 쌩쌩 달려서 늘 불안함을 느끼며 도로를 건너곤 한다. 나는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들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아이가 생기고 시간이 흘러 걸음마를 뗄 정도로 크게 된다면 무조건 이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우리 동네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에 보행자를 기다려주는 운전자는 100번에 한번 꼴로도 나타나 주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운전자들이 도로에 나온 자전거를 바라보는 시선이란, 자신의 통행에 걸리적거리는 방해물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렇게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나는 마치 밤길에 나온 고라니와 같은 심정으로 도로를 건너야 한다. 사람이 기다리건 말건 멈춰주는 차들은 없으며, -조금 과장해서- 목숨을 걸고 내가 먼저 도로를 어느 정도 가로질러서 사고의 위협이 존재할 때, 그제야 달리던 차들은 브레이크를 밟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면, 차창 너머로 보이는 운전자의 표정은 여지없이 좋지 않다. 



'바이크미'를 비롯해, 밀라노에는 특히 자전거 시스템이 잘 발달된 것 같았다.  contax,t-3


밀라노 중앙역에 내려서 숙소로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던 중, 마치 영화에서처럼 슈트를 차려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신사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기에 그 신사가 타고 있던 자전거를 유심히 보게 되었다. 바구니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초콜릿인 '포켓커피'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개인 소유의 자전거는 아닐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밀라노에는 '바이크미(bikeme)'라는 무인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있으며, 그것은 어플을 깔고 약간의 금액만 지불하면 누구든지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였다. 밀라노 시내의 곳곳에는 엄청난 숫자의 대여소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때문에 어딜 가더라도 쉽게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조차도 두려워하는 쫄보였던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도보로만 이동해 왔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던 상태였었다. 그렇기에 밀라노에서 머무르는 기간 동안에는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결정했고, 나는 아까 봤던 신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한껏 들뜬 마음으로 '바이크미'의 이용법을 숙지해나가기 시작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나. canon, mark-2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이동한 당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밀라노에 머물 기간은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기에 여러 곳을 다닐 계획은 세울 수가 없었다. 쇼핑을 제외하면 두오모 정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여행 코스였고, 숙소에서 두오모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나는 전날 설치해놓은 '바이크미'의 어플을 이용해 가까운 곳에 있는 자전거를 두대 대여했고, 그렇게 설레는 자전거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보았던 어떤 두오모보다도 크고 웅장했던 밀라노 두오모. canan, t-3


정말이지 밀라노의 도로는 자전거를 타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특별히 가파른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평지를 달리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을뿐더러, 자전거 전용 도로를 비롯해 차도로 달리는 자전거들 조차 매우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한 두 명의 배려가 아닌, 전체 운전자들의 자전거나 보행자를 우선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비단 자전거뿐 아니라, 보행자가 도로를 건너려는 낌새만 보이더라도 알아서 정차를 하고 기다려 주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거기에는 어떠한 짜증도, 생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흰머리가 지긋한 70대의 할머니가 왕복 4차선의 시내 도로를 우아하게 주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사대주의라고 여겨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늘 불안함에 떨었던 집 앞의 횡단보도를 떠올렸고, 그들의 이러한 도로문화를 한없이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두오모 광장 근처 쇼핑몰에서. 가제타 스포르트에서 기념품을 샀다. canon, mark-2


나는 이러한 경외감을 몇 해 전 괌을 갔을 때도 느낀 적이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보행자를 보고 차들이 멈춰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려주는 것은, 여태까지의 운전문화에 길들여진 내게는 문화충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한두 사람만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그러했다는 점이 나를 더욱 감탄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주행을 방해했다는 생각에 인상을 오만상 찌푸리지도 않았고, 오히려 미소 지으며 손인사를 해주는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였던지. 관광업이 발달하고 기후가 따뜻한 열대지방 특유의 여유로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유럽인 이곳에서도 똑같이 보이고 있었다. 한두 명만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배려일 수 있겠지만, 전체 운전자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문화인 것이다. 


 

두오모 광장의 동상. 사람 만큼이나 비둘기떼도 많았다. canon, mark-2


물론 내가 여태까지 적어놓은 유럽과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에 관한 비교는 절대적이 될 수 없음을 (당연히) 인정한다. 내가 사는 지역과, 밀라노를 비롯해 내가 방문한 유럽의 극히 일부 지역에 대한 개인적인 체감일 수도 있는 일이다. 어떠한 통계자료나 지표를 제시할 수 없으니, 누군가 반박을 한다 해도 나는 내 경험을 들어서 밖에는 대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횡단보도가 불안한 동네에서 살고 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나서 집 앞 편의점을 나설 때 조차도 위협적으로 달리는 차들에 불안해하며 좌우를 살펴야 하는 현실에 맞닥들여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실이다.


밀라노 두오모. contax, t-3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조심해서 저 차들 사이로 안전하게 도로를 건너는 일이며, 반대로 내가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유럽에서 보았던 그들처럼 배려를 보이는 일이 것이다. 내가 문화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지만, 배려를 보일 수는 있으니까. 가끔 뒤차가 빵빵거리며 클락션을 누르는 일도 있다. 하지만 손인사나 목례를 해주며 감사를 표하는 보행자들을 볼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짧은 여행에서 얻어온 잠깐의 생색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역시도 보행자가 되었을 때 이런 식으로 다른 이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나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이런 배려가 당연한 일이 되어, 걸음마를 뗀 내 아이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부터도 까먹지 않게 늘 노력해야겠지.


명품샵들이 즐비한 갤러리아의 내부 모습. canon, mark-2


앞서 말했듯이 체류기간이 짧았기에 밀라노의 많은 곳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우리는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 인테리어와 디자인을 맡았다는 '바 루체(Bar Luce)'에도 들릴 예정이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갔던 날에는 문을 열지 않았었다. 때문에 밀라노에 대한 기억이라면 두오모와 '바이크미'가 전부일  수밖에. 사실은 자전거를 타고도 그리 많은 시간을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현지인들은 한없이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릴 수 있었지만, 나는 우리나라에서의 도로 사정이 자꾸 떠올라 관성적으로 움츠러들었다고 할까. 차들은 양보해주고 나를 기다려 주었지만 정작 내가 거기에 적응을 하지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밀라노를 생각하면 '패션의 도시'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고, 명품샵들이 늘어선 '쇼핑의 도시'라고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AC밀란이나 인터밀란과 같은 축구 클럽을 떠올리기도 하겠지. 나 역시도 축구팀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바이크미'를 비롯해 자전거의 천국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 멋지게 슈트를 차려 입고 자전거를 타던 신사, 백발의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우아한 노파가 자전거를 타고 4차선 시내 도로를 달리던 도시. 밀라노는 나에게 그런 멋과 문화가 있었던 도시라고 기억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리노의 노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