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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남자 Mar 08. 2016

콜로세움과 2인의 도둑


'낯선 이의 친절을 조심하라'.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용되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세상에선 더욱 그러하다. 길가다가 누군가 말을 걸면 의심부터 드는 것이 사실 아닌가? 스마트폰과 지도 어플이 발달한 요즘에는 길을 물어보는 이도 거의 없을뿐더러, '도를 아십니까' 류의 사람들도 그 방법이 진화해서 이제는 대놓고 본론부터 말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시내 교보문고에서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가 신은 신발이 예쁘다며 말을 건 적이 있다. 나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서 어디서 샀으며 가격은 얼마인지를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대화가 끝난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계속 말을 걸어왔고, 그제야 나는 이 사람의 목적이 내 신발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 이들은 진화하고 있구나.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간 인류처럼 말이다.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곳은 서울만이 아니다. 잠시나마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어디서든지 코 베일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슬프다기보단, 피곤한 세상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에게는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유달리 잘 달라붙는 편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외모적으로 내가 엄청 만만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알았다. 비디오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 무슨 일 때문인가 학교에서 우리 반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카메라로 찍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TV 화면으로 그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청나게 멍청해 보였던 것이다. 내 얼굴이지만 어딘가 약간 모자라 보일 정도였달까. 나는 눈꼬리가 많이 쳐졌는데, 좋게 말해주는 이들은 선하게 보인다고도 해 준다.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가끔 (살짝) 놀라기도 한다. 넋을 놓고 있으면, 안 그래도 쳐진 눈꼬리에 초점까지 없어져서 한없이 멍청하고 만만해 보이는 얼굴이 되기 때문이다. 



'어머, 이 아저씨 왜 이렇게 만만해 보이지?'  올림피코 스타디움 경기장에서, 라치오와 토리노의 축구경기를 보던 중. contax, t-3


내가 어렸을 적엔 봉고차를 타고 아이들을 유괴하는 식의 범죄가 많았다. 아니, 실제로도 많았던 건지 아니면 그냥 괴담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90년대의 시골에서조차도 봉고차는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뿌리 깊게 퍼져 있었으니, 그것은 당시 사회적으로도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렇게 길에서 말 거는 이들까지 조심해야 할 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무렵인 2000년대 초반, (내 개인적인 체감으로) 세상은 변했다. 알바를 마친 저녁 무렵 나는 평소보다 더욱 방심한 얼굴로 터덜터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때 골목에서 잠복해 있던 여자 두 명이 말을 걸었는데, 처음에는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주니 호기심이 동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안타깝게 정신을 차린 후에는 이미 봉고차에 탑승한 후였다. 차 안에는 그 여자들 말고도 앞쪽에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납치까지 되진 않았지만, 차에서 내렸을 때는 40만 원 상당의 건강식품을 구매한 후였다. 그것은 무슨 키토산이 함유된 건강식품이었는데, 봉고차에 탑승한 순간부터 사기라는 것을 직감했으니 모든 일이 끝난 후 내 손에 들린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그때부터 나는 키토산 새우깡이니, 키토산 카스테라니 암튼 키토산이 들어간 제품을 보기만 해도 마음속 깊은 속에서 수치스러움이 밀려온다. 하여 이 사건은 내가 낯선 이들에게 경계의 날을 세워야 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그 경계심도 얼마 가지 못해 흐지브지해 졌고, 방심한 나는 다시 몇 년이 지난 후 또다시 2차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로마에서 젤라또를 먹으며. 여행지에서도 경계심을 놓으면 안 된다! -iphone


그것은 내가 군복무를 하던 시절, 말년휴가를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까까머리에 펑퍼짐한 군복을 입고 있었던 나는 마침 배가 고팠고, 김밥 몇 줄을 사들고 고속버스로 들어가 우적우적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출발시간이 조금 남았기 때문에 버스는 정차 중이었고, 그때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승객들에게 번호표 같은 것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금색 시계를 꺼내고, 지하철에서 잡화를 파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계의 성능이나 우수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레퍼토리야 뻔한 것이다. -이 시계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백화점에서도 고가로 팔리고 있지만, 고객 감사 행사로 인해 이런 고속버스까지 행차하게 되었다- 는 류의 전형적인 사기 멘트 말이다. 나눠준 번호표는 응모권이며, 추첨을 통해 뽑힌 이에게 그 고급스러운 손목시계 두 쌍을 선물로 준다고 했다. 놀랍게도, 내가 당첨되었다. 입 안에 김밥이 가득한 까까머리 군인인 내게 그들이 달려들었고, 정신없는 축하 멘트를 날렸다. 나는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뭐 일단 공짜로 주는 거라니까 의심 없이 받아 들었다. 그런데 역시나, 무슨 부가세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게 5만 원이란다. 시계 2개에 5만 원이면 뭐 괜찮겠지 싶어서 지갑을 꺼내고 돈을 주는데, 1개에 5만 원이라며 내 지갑에 있는 10만 원을 쏙 빼서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애초부터 선택된 것이다. 그들은 버스에 타자마자 제일 만만해 보이는 사람을 찾았고, 정신없이 김밥을 먹고 있는 저 만만하게 생긴 군인이 눈에 딱 들어왔던 게다. 나는 돈 10만 원이 털린 것도 속이 쓰렸지만, 이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선택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수치러움을 느꼈다. 



테르미니역에 내려 숙소로 가는 길. contax, -t3


그러니까, 내가 굳이 이런 나의 흑역사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것이다. 언제, 어디든, 특히 나처럼 만만한 인상을 가진 이들은 늘 방심하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이탈리아와 같은 관광지에는 여행의 분위기에 들뜬 이들의 지갑을 노리는 악당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겁이 많은 나는 여행 전부터 이러한 범죄를 우려해 나름의 대비책들을 세웠었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악명 높은 것은 관광객들의 지갑을 노리는 소매치기이다. 나는 거기에 대비해 칼로 그어도 찢어지지 않게 내피에 얇은 철사가 덧대어진 크로스백을 구매했고, 스마트폰은 뒤쪽에 손가락을 걸 수 있는 액세서리를 부착해 늘 손에 끼고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유럽에 있는 한 달여간 다행히도 지갑이 털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비책들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이없게도, 나는 내 손으로 지갑의 돈을 꺼내 도둑의 손에 쥐어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던 콜로세움의 내부. -iphone


로마는 우리가 유럽에 첫 발을 디딘 도시였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두바이를 경유하고, 낮밤이 바뀌는 시간을 지나 처음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의 그 설렘이란! 들뜬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고 주위의 풍광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테르미니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봤던, 기름기가 줄줄 흐르다 못해 허연 비듬이 무성했던 중동 남자의 뒷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이다. 하지만 들뜬 와중에도 순간순간 손가락에서 휴대폰을 빼놓지는 않았나, 가방의 자물쇠가 잘 잠겨있나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의사항이란 몰래 지갑을 노리는 소매치기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말을 걸어오며 사기를 치는 부류는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서두에도 강조했지만, 친절하게 말을 거는 이들은 거의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외국인들은 별다른 이유가 없는 다음에야 동양인에게 먼저 접근하지 않는다는 글을 여행자 커뮤니티에서 읽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외국에서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우리 역시 낯선 이에게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말을 걸지 않으니까 말이다. 


  

포로 로마노에서 미술 수업이 있었던 모양이다. 많은 학생들이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contax, t-3


사건은 관광객들이 즐비한 콜로세움에서 일어났다. 콜로세움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찾는 이가 많아,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하려면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나서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평생 조조영화를 본 적이 손에 꼽을 만큼 아침잠이 많던 우리는 12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서야 그곳에 도착했고, 역시나 사람들은 미어터질 정도로 붐비고 있었다. 입장권을 구매하는 줄만 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섰기에, 우리는 일단 비교적 관람객이 적은 포로 로마노-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약 1000년 동안 제국의 심장 역할을 한 로마 공회장- 부터 둘러보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는 위치가 가깝고, 통합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콜로세움 쪽 보다는 포로 로마노에서 통합권을 구입하는 쪽이 시간이 절약된다).


그때 한 외국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약간 중동이나 인도인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아무튼 내 헤어 스타일을 보고 아주 짧은 영어로 말을 걸었다.


" 우와~ 니 헤어스타일, 호날두 같아. "


나름 머리에 신경쓰고 갔는데, 알아봐주는 녀석에 나는 조금 우쭐했다. -canon, mark-2


남자라고 모두 축구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 녀석은 사람을 참 제대로 골랐다. 유럽축구라면 모르는 이와도 한 시간이고 떠들 수 있는 나였기에 순간 귀가 번뜩 뜨였다고 할까. 거기다가 유럽축구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에 사는 이가 나에게 축구로 대화를 시도한다는 사실에 내 경계심은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나는 싱긋 웃어 보였고 내 호의적인 반응을 본 녀석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먹잇감을 제대로 물었다고 느꼈겠지. 


" 너 일본인이야? 나가토모! 나 나가토모 알아. "


나가토모 유토. 인터밀란에서 뛰고 있는 일본인 축구 선수의 이름이다. 이탈리아에서 동양인을 보면 무조건 제패니즈부터 나온다. 그다음이 차이니즈, 마지막이 꼬레아노이다. 암튼. 여기서 물러났어야 하는데, 나는 외국인과 조금 더 축구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다. 


" 아니. 나 한국 사람이야. 박지성 알아? "


" 아! 꼬레아! 싸이! 강남 스타일! "


그놈의 싸이. 싸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다들 강남스타일을 기본으로 추는 줄 알고 있다. 일전에 괌에 갔을 때도 레크리에이션을 하던 외국인 가이드가 나보고 강남 스타일을 춰보라고 해서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다. 녀석은 우리 앞에서 어설프게 강남 스타일을 추며 사람 좋은 척을 하고 있었고, 솔직히 나는 이때부터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에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랑 녀석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던 모습을 죽 지켜보던 여자친구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였다. 녀석을 그저 유쾌한 외국인쯤으로 인식하고 기분 좋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던 것이다. 


10월 말의 날씨였지만, 햇볕은 마치 여름과 같이 따가웠다. contax, t-3


" 너희 어디에서 왔어? 서울? "


" 아니. 우린 대구에서 왔어. 대구 알아? "


" 아~ 대구! 부산은 알아. "


외국인이 서울도 알고 부산도 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인지, 여자친구의 경계심이란 이미 안드로메다로 향한 지 오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주민번호 열두 자리까지 불러줄 기세였달까. 그렇다고 해도, 남자인 내가 나서서 제지했어야 했는데. 그놈의 소심함이 뭔지 나는 아직도 녀석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100%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저 붙임성 좋은 외국인이라면, 이대로 매몰차게 대화를 끊고 가는 것이 너무 매너 없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이미 우리의 손목에는 그들이 채워주는 팔찌가 매듭지어지고 있었다. 


" 이거, 선물이야. 공짜. 돈 안 받아. "


" 진짜? 고마워! "


녀석은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의 실을 가지고 여자친구의 팔목에 팔찌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또 한 명의 외국인이 나타났는데, 그놈은 나에게도 팔찌를 매 준다며 여자친구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이때는 함정에 빠졌구나라는 것은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 이거, 둘 다 60유로야. 돈 내놔. "


" 공짜라고 했는데? "


" 아냐. 60유로. 빨리 내놔. "


베네치아 광장에 휘날리는 이탈리아의 삼색기. 그날의 악몽이 떠오른다. -iphone


나는 솔직히 당황했고, 겁도 났다. 지금 내 팔목을 잡고 있는 놈은 그다지 무섭게 생기지도 않았지만, 여기는 낯선 나라가 아닌가. 짧은 순간이지만 소매치기를 뒤쫓아 갔다가 뒤를 지키고 있던 마피아에게 살해당했다는 관광객의 기사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했다. 


".. 쟤가 공짜라고 했는데? "


나는 아직도 여자친구에게 웃으며 팔찌를 매 주고 있는 녀석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내 앞에 있는 놈이 나를 거칠게 잡아당기기가 시작했고, 말투는 격앙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욱 겁나게 했다.  


" 빨리. 60유로 내놔. 팔찌 두개 60유로야. "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계속 돈을 안 주고 버텼다면 걔네들도 결국 포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들이 밀집한 콜로세움 같은 곳에는 경찰인력 역시 많이 배치되어 있었고, 녀석의 격앙된 말투는 언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만약에 내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었다면 이 사기꾼 녀석들도 포기하고 돌아섰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조용히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었다. 결국 내 지갑에서 60유로를 꺼내고 만 것이다. 우리 돈으로 8만 원가량. 그리고 나와 여자친구의 손목에는 마치 스무 살이었던 나의 손에 들려 있었던 키토산과도 같은 팔찌가 걸려 있었다.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베네치아 광장. 로마는 이렇게 멋진 곳인데 물 흐리는 도둑놈들이.. contax, t-3


생각해보면 앞선 2건의 피해사례 역시 내가 완강히 저항했다면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와 스물넷의 나, 그리고 서른넷의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약간의 위협과 귀찮아질 소지가 있는 상황이 발생할 때, 나는 대부분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쪽으로 사건을 무마시키는 유약한 남자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수치심과 패배감에 괴로워하는 상황. 뭔가 익숙했다. 국내고 해외고 사기를 치는 녀석들은 사기를 당할 만한 타깃을 기가 막히가 찾아내는구나, 여기서도 인정을 받다니. 뭔가 국제 호구 라이선스를 발급받은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 징표는 손목에 걸린 팔찌였다. 이번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여자친구의 손목에도 똑같이 걸려 있었다. 60 유로면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파스타와 스프리츠까지 한잔 할 수 있는 돈인데! 여행지에서의 기분 좋은 첫날을 국제 호구 커플이라는 낙인으로 시작하다니. 우리는 액땜을 했다 치고 이 수치스러운 사실을 무덤까지 가져가자고 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고 했던가, 재밌는 에피소드이기도 하고 혹여 우리 같은 피해자가 발생할까 싶어 이렇게 브런치에 기고해 본다. 



로마에서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트래비 분수를 관람하던 중 팔에 뜨끈한 것이 떨어졌길래 봤더니 비둘기똥이었다. 옆에 있던 신사분은 '굿 럭!'이라며 박수쳐 주었다.


여행 첫날 호되게 당한 기억 덕분에, 우리는 남은 기간 동안 추가 피해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이러한 팔찌범(?) 들은 유럽 전역에 널려 있었고, 우리는 여행 기간 내내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하며 나는 간사하게도 '나만 호구가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동양인 관광객부터 여자끼리 온 여행객들이 주로 타깃이 되며, 조금 과감한 녀석들은 무시하며 지나치는 이들의 가방 위에 팔찌를 던지까지 했는데, 그마저도 무시할 경우에는 걔네들도 방법이 없어 보였다. 관광객들이 많은 만큼 타깃들은 널려 있으니,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람을 잡을 만큼 끈질길 필요가 없었다고 할까. 


이 외에도 무슨 얼토당토않은 서명서에 사인을 요구한 다음 금전을 요구하는 사기꾼도 있었다. 유럽에서의 친필 사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효력이 크다고 하는데, 그것을 노린 사기라고 한다. 에펠탑 근처의 회전목마 앞에는 피에로 복장을 하고 어슬렁거리는 이가 있었는데, 셀카나 사진을 찍는 이에게 다가가 같이 사진을 찍은 다음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볼 것 많은 유럽에는 관광객들도 많고, 그들의 지갑을 노리는 도둑놈들 역시 많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랄까, 완강히 거부할 경우에는 순순히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로마의 전경. 도시 그 자체가 유적지였다. canon, mark-2


우리 어른들은 예부터 공부를 못한다거나 진로를 찾지 못하는 이에게 '기술을 배워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나도 길거리에서 팔찌로 사기 치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기술이나 배울 것이지'라는 말을 종종하곤 했는데, 생각해보면 걔네들도 그게 기술인 거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관광객들에게 사기를 치려고 달라붙는 사람들은 거의 흑인 아니면 인도 계열의 유색인종들이었다. 어쩌면 유색인종인 그들에게는 좋은 직업을 가질 환경이나 조건이 받춰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제일 좋은 직업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흑인들은 백화점이나 상점의 입구에 슈트를 차려입고 기도를 보는 이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때문에 (관계는 없겠지만) 푸마 매장에 홀로 50% 세일된 가격으로 판매되는 마리오 발로텔리의 져지가 문득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마리오 발로텔리는 이탈리아 국적의 흑인 선수로, 국가대표 선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에 많이 시달리기도 했다-.   


파노라마로 찍은 콜로세움의 모습. -iphone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낯선 이의 친절은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것이 관광객들이 붐비는 유럽이라면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에 질려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 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물론 내손으로 돈을 꺼내 도둑에게 건네주긴 했지만-사실 도둑이라기 보단 양아치가 더욱 걸맞은 단어일 것 같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여행하는 한 달 내내 별다른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출귀몰하게 지갑을 빼내는 소매치기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보통은 어느 정도만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피해를 입지 않을 수준인 것 같았다. 여기서 말하는 정도란, 지갑이 눈에 보일 정도로 툭 튀어나오게 가지고 다닌다던지 음식점에서 휴대폰을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고 식사를 하는 정도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몇몇의 나쁜 무리들이 이런 아름다운 곳의 물을 흐린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다. 맛난 음식에 파리가 꼬이는 게 당연할 일인지도 모르겠고. 마음 한편으로는 그들이 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더라. 하다 못해 크레페 굽는 기술이라도 배워서 장사를 할 것이지. 에펠 탑 앞에서 열쇠고리를 파는 이들은 나름 몇 개 국어를 해 가며 흥정을 하기도 하더라. 그러니 사기꾼들이여, 소매치기여, 기술을 배워라. 팔찌 묶는 법만 배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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