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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Apr 06. 2020

<모로코 메모리즈>를 시작하며

Two weeks in Morocco with Sigma fp





팬데믹의 날들 속에, 받아들이기,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힘을 내어 <모로코 메모리즈>를 시작해본다.








나의 여행은 호기심에 기인한다. 소설이나 시, 혹은 그림이나 사진 같은 것에서, 아니면 음악에서, 아니면 지명 같은 것에서. 이 모로코 여행도 그렇게 시작됐다. 러시아 여행 중에 들른 모스크바의 푸쉬킨 미술관에서, 푸른 물감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96~1954)의 그림들을 앞에 두고, 유독 푸른, 저 빛들의 근원이 궁금했다.



그림은 모로코 북부의 ‘탕헤르’였다. 어딘가 모르게 바다 냄새나는 이름, 아직 밟아 본 적 없는 알제리의 오랑이나 티파사처럼 여행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낯설지 않은 그 이름은 10년도 더 전에 브루노 바르베(Bruno Barbey, 1941~)의 사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카메라 하나 들고 저 길을 걸어 봤으면 싶었다.



인생이 뜻대로 되면 좋겠지만 한 치 앞도 모르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것 같기도 하다. 모로코를 마음에 두고도 그 해 여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나라들, 북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 몬테네그로를 여행하게 되었고, 또 그 해 겨울에는 유럽 국가에 한 달 이상 머물 일이 생겼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모로코는 어떨까? 그저 궁금해서 항공권 검색을 했던 것이 그동안 엇갈리기만 했던 모로코 여행으로 이어졌다. 암스테르담 발 카사블랑카 행 편도 티켓이 40유로에서 몇 센트 빠진 39.59유로였다. 당장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또다시 무언가가 시작되려 할 때의 잔잔한 기쁨 같은 것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어쨌든 가장 보고 싶은 곳은 탕헤르였고, 카사블랑카에서 시작한다면 탕헤르는 마지막 도시가 되어야 가장 아름다운 동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친구 Y는 에싸우이라에서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 친구가 그런 기분을 느낀 곳은 어떤 곳일까? 마라케시는 아마도 가장 모로코적일 것 같았고, 무엇보다 마조렐 정원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들보다 오래 머물고 싶었다. 페즈는 워낙 악명 높은 후기들이 많아 넣을까 뺄까를 수도 없이 고민하다 사흘을 할애했다. 셰프샤우엔은 인도의 블루시티 조드푸르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서 넣었다.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관문인 메르주가는 썩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이집트와 요르단, 인도 등지에서 이미 여러 차례 사막을 경험했다는 이유였다. 내게도 처음에 사막은 ‘하늘을 천장 삼아 별을 이불 삼아’ 잘 수 있는 어떤 로망의 장소였으나 지금은 ‘밤에 추운 곳’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꺼려지는 곳이었다. 원래 3주로 계획했던 여행은 돌아오는 길에 포르투와 마드리드를 넣으면서 2주가 되었다. 내 여행 계획을 들은 그리스인 친구도 받아 놓은 일주일의 휴가를 모로코에서 보내고 싶다며 내 동선에 합류하기를 원했다.  



나는 직업상으로도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라는 낯선 환경 속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내가 애정을 줄 수만 있다면 어떤 기종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했던,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는 카메라들은 크기가 크지 않은, 무게가 비교적 가벼운, 그래서 자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기종들인데, 시그마 dp 콰트로 시리즈들과 제3세계 여행 때 즐겨 썼던 시그마 DP2, 그리고 리코 GR, 언제나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 등이다. 아무래도 무거운 카메라는 기동성이 떨어져 내가 하는 여행의 형태와는 잘 맞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 보통 하루에 2만보 씩 걷는데, 체구가 크든 작든 무거우면 시작도 전에 지친다. 러시아 여행에서는 5~6대 정도를 들고 다녔었다. 가벼운 카메라들이어도 동시에 여러 대를 메고 다니면 고되다. 이번에는 ‘무거운’ 여행의 고달픔을 잠시 내려놓고 제발 가볍게 떠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작년 가을에는 시그마 fp라는 카메라의 앰배서더로 선정되어 테스트로 이것저것 찍어보고 있었다. 그러던 ,  항공사 기내지 촬영 건으로 며칠간 부산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물론 다른 카메라들도 가져갔으나 시그마 fp 45mm 렌즈가 만들어내는 색감, 셔터감, 특히 무게가 마음에 들었다.  정도면 카메라 하나로도 여행이 가능할  같았다. 그래서 콰트로 시리즈들도 빼고, 노트북도 뺐다. 매일  메모리 백업과 충전으로 녹초가 되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노트북이 빠지면서 마우스와 외장하드, 배터리들도 자동으로 빠지고, 카메라  대가 빠지면서 따라다니는 충전기와 배터리들 또한 빠졌다. 짐이  줄었다. 만일에 대비하여 호주머니에 넣을  있는 사이즈의 카메라를 서브로 챙기고,  외에  두어 , 신발  켤레, 신세  때를 대비한 조그마한 선물들과 소형 전기매트 정도만 챙겨 가방을 꾸렸다. 대신 메모리 카드는 넉넉하게 챙겼다.



그렇게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지 거의 1년 만에 모로코로 떠나게 되었다. 이집트 이후로는 두 번째 아프리카행이었다.













Way to Essaouira, Morocco, 2020.  © Julie Mayfeng





일곱 시간 반의 여행길에서

절반의 시간은 이 푸른 바닷길을 따라 달렸다.






Tangier, Morocco, 2020.  © Julie Mayfeng





탕헤르의 그랜드 호텔 빌라 드 프랑스.

마티스가 머문 그 호텔에 이틀을 묵었다.

1월은 모로코의 우기, 저녁마다 비가 쏟아졌다.





Casablanca, Morocco, 2020.  © Julie Mayfeng






카사블랑카의 한낮.

나도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와 함께 거기 그렇게 있고 싶었다.






Essaouira, Morocco, 2020.  © Julie Mayfeng






지구의 서쪽, 에싸우이라의 석양 녘은 이렇게 아름다웠다.
















<모로코 메모리즈>는 2주 간의 모로코 여행에서의 감상과 일별(一瞥)의 이미지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모든 사진은 시그마 fp와 45mm F2.8 DG DN 컨템퍼러리 렌즈로 촬영하였으며, 카메라와 렌즈는 시그마 fp 앰배서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그마 본사와 세기 P&C 측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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