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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Jul 21. 2022

프롤로그

육아/출산/경단녀 지옥을 빠져나가는 방법

[아이를 가지면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한여름에 딸기를 찾고 남편은 기적처럼 딸기를 구해온다]

드라마속 이야기가 내게도 일어났다.


"여보, 나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어졌는데, 딸기 살 수 있어?"

"들어가면서 마트 들러볼께"


저녁에 나눴던 전화통화. 

일찍 잠들었던 나는 '혹시?' 하는 기대감에 냉장고 문을 열었다.

거의 텅 빈 냉장고 한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딸기 요플레 하나.


'.........'


딸기가 너무 비쌌나?

남편이 사업을 배우겠다며 안정적인 공직을 그만둔지 2년 째, 통장잔고 역시 세월이 흐르듯 흘러 사라져갔다.

그놈에 돈이 뭔지, 돈이 뭐길래 딸기 하나 사 먹을 수 없는 형편이 됐는지. 

TV드라마에서는 임신한 아내가 새벽에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남편이 뛰어나가 잘만 사오던데.


상황이 풀리길 바라지만 벌이가 없는 남편.

경력단절에 임신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


캐나다에서 하루 4시간만 자며 요리학교와 레스토랑일을 함께했고

지옥같은 일정을 소화하며 레스토랑 부주방장까지 올랐던 내가.

넉넉한 급여에 멋진 아파트, 휴일이면 미국으로 미식여행을 다녀오는게 취미였던 나였는데,


텅 빈 냉장고 속 홀로 자리를 지키는 딸기 요플레 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딸기라는 흉내만 내는 그런 모습처럼

내 자신이 그렇게 느껴져 소리없이 흐느꼈다.


혹여나 내일도 일 하러 나가는 남편 잠이 방해받을까,

3평 단칸방에서 어디 갈 곳도 없이,

냉장고 앞에 쭈그려 하염없이 눈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드디어 우리 아이를 만났다.


정말 작고 여린, 손에 쥐면 바스라질것 같은 그 모습을 보며,

출산의 고통으로 아팠던 내 몸보다 아이에게 내 가난, 

내 어려움을 대물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슴아픔이 앞섰다.


남들은 산후조리원이다 출산 선물이다 떠받들여지며 몸을 풀고 육아를 시작하는데

아이에게 최선의 육아용품을 준비해 주고 소중하게 보듬으며 세상 첫 만남을 준비시키는데.

나는? 우리는?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거지?


의사선생님의 퇴원 허락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나마 병원에서 준 출산 축하용품 덕에 준비해야 할 아이 용품에 대한 한 시름을 던 채로,

병원 앞에서 남편과 택시를 탔다.


"출산하셨나 보네요~ 축하드립니다. 어디 산후조리원으로 가세요?"


택시 기사님의 축하에 쓴 웃음으로 답했다.


"집으로 가요. 000 앞으로 가셔서 내려주세요."


그렇게 남들 다 간다는 산후조리원을 문턱 구경도 못 해본 채 집으로 향했다.



우울했다.

산후 우울증이라는게 있다더니 이런걸까? 그 탓에 이런 기분인걸까?

세상 모든것들이 원망스러웠다.

왜 우리 집은?

왜 남편은?

왜 나는?

그러다 눈을 감고 이제 막 세상과 마주한 내 아이에게 시선이 향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내 아이에게 만큼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이 후회를 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된다.

엄마라는 이름이 가진 최소한의 책임이라는걸 느낀다면.



오래간만에 진실로 원하는게 생겼다.

확고한 목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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