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남성일 때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람들은 묻는다.
대법원에 여성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냐고.
난 ‘9명 전원’이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전원 남성일 때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영화관에 외국인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봤다. 내 앞에도 옆에도 외국인이 앉아서 기분이 묘했고 색다른 경험을 했다. 미국식 유머에 빵 터지고 자막이 뜨기 전에 반응을 하거나 그런 거.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겠지. 난 사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 왠지 끌려서 본 거였지만 말이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짧은 시간에 유머, 감동, 교훈까지 다 잡았다. 완전 추천! 누구나 보면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보다 보면,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다. 내가 보기엔 당연한 것들이 안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그들은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며 자신들을 방어하고 있는 걸까.
첫 회사에서 팀장이 날 승진 대상으로 추천했는데 회사에서 거부했었다. 그 이유가 나이가 어리고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걸 들었을 때 오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그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나보다 더 늦게 들어왔고 심지어 일도 덜하는데 나이가 많고 남자라는 이유로 주임이 된 그 사람에게 ‘주임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마음이 쓰렸고 결국 퇴사했다. 이런 경험을 누구도 하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반대 의견이 너무 멋있어서 찡했고 그게 찡할 정도로 멋있는 게 현실이라는 게 슬펐다. 미국이 저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뭐 말할 것도 없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씁쓸했다.
나는 큰소리를 내면서 외치거나 적극적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생각해도 아직도 고정관념 덩어리라 실수도 자주 하고 앞서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한심하고 틀린 것들 투성일 게 분명하다. 이게 하루아침에 변하지도 않을 거고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바뀔 의지도 없다. 여기서 더 속도를 내면 지쳐서 나가떨어질 게 뻔하니까. 알고 있기는 한데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다하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한 거니까 여기에 집중하자고. 눈치 보지 말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도 멋있지만 솔직히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영혼의 단짝인 ‘마틴’과의 스토리.
저런 관계가 내가 진정으로 꿈꾸는 삶의 여정을 함께 발맞춰 걸어가는 파트너의 모습이라 보는 내내 부러웠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빛나던 그들의 사랑. 마틴의 마지막 편지가 날 펑펑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