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은 나를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구원해준다
초반보다는 후반이 더 재밌어서 뒷부분을 더 집중해서 봤다. 책에 대한 관점이나 세상을 보는 시선이나 이런 것들이 좋았다.
문유석 판사님의 글은 항상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쾌락독서’를 읽으며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솔직해서 마음이 간다. 어렵게 배배 꼬는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표현해줘서 좋다.
책 장르를 잘 가리지 않아서 이것저것 읽는 편인데 읽다 보면 어려운 말로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해 혼자 떠들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소설도 그렇지만 인문학 쪽은 특히 더 심하다.
첨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주눅이 들었는데 ‘아픔이 길이 되려면’, ‘타인의 고통’ 등의 책을 접하며 지식을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제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안쓰러워졌다. 능력치가 저것밖에 안 되는 거거나 자기 자랑 욕구가 크거나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 거겠지. 아님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판사 유감’을 샀다. 기대된다.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생활태도를 갖고 있는 나인데도 요즘 나의 이런 모습에 대해 고민이 많다. 이 나이를 먹고도 말이다. 고민하는 이유는 비생산적이어서가 아니라, 결국은 즐겁지조차 않아서다. 티브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얼마 동안은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콘텐츠는 언제나 부족하고, 눈은 피로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중독자처럼 끊임없이 다른 걸로 다른 걸로 넘기고 넘기고 넘기게 된다. 무한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인 것이다.
쾌락독서, 173p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걷고 싶지는 않다는 생존 본능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몰라서 남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잠시라도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은 나를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구원해준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관습에 따라, 지시받은 대로, 조직 논리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악의 실제였다. 흑인과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면 병균에 감염된다고 진심으로 믿은 미국 남부의 숙녀들, 유대인을 가스실에 보내는 일이 맡은 바 행정절차일 뿐이라고 믿는 독일 공무원들, 미국 한주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호남 사람들은 다 뭐가 어떻고 저떻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킬킬대며 지껄이는 사람들, 여자의 ‘노’는 ‘예스’니까 남자가 좀 터프하게 밀어붙여야 된다고 믿는 남자들. 누구에게는 좋은 부모고, 자식이고, 친구였을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악마였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무지가 곧 악인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라는 이경규의 말을 들으며 웃을 수 없는 이유다.
쾌락독서, 19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