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J Jun 20. 2019

오늘의 영화, 로마

당신에게 보내는 애정과 감사의 편지 (약 스포)



LG를 쓰면서 제일 좋은 건 넷플릭스를 TV로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원래는 아트나인에 가서 볼 생각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컨디션이 안 좋아서 넷플릭스 멤버십을 재가입하고 영화를 봤다.

조용한 집안. 거의 적막에 가까운 상태에서 불 다 끄고 집중해서 본 로마.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좋은 영화니까.

그래비티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한 데다가 스토리 설명도 정치적 격랑, 사회적인 억압 등등의 단어로 도배되어 있어서 되게 역동적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영화 자체는 잔잔했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감정이 요동쳤지만.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보는 내내 어떤 아이가 감독일까?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결론은 누구 여도 상관없다. 였지만.)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게 무슨 말인지가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1시간이 지나갈 때까지도 뭘 전달하려는 거지? 어떤 이야기인 거지?라는 의문이 많이 들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쯤 ‘아.. 감독이 그들에게 보내는 애정과 감사의 편지구나.’라는 게 확 와 닿았고 그걸 알고 나니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서 감독의 표현방식이나 바라보는 시선이 되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전달하다니. 축복받은 재능 아닌가?

다시 돌이켜봐도 이 영화에 나오는 성인 남성 캐릭터들은 정말 멀쩡한 인간이 하나 없다. 특히 클레오의 남자 친구는 정말 코멘트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이다. 영화관에서 도망가고 나서 혼자 쓸쓸하게 계단에 앉아있던 클레오의 모습이 충격적이어서 이 영화를 떠올리면 기억에 남을 장면 중에 하나이다.

담담하게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바다 씬에서 클레오의 고백을 듣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버렸다. 내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잘 이겨내고 있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 그녀를 향한 연민이 넘쳤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거친 파도를 뚫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에서 굉장한 생명력을 느껴졌다는 것이다.

상징적인 장치들(차, 개똥, 지진 등)이 많았던 것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를 하나도 유추해내지 못하는 걸 보면서 한계를 느꼈다.

흑백으로 영화를 만든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흑백이라서 더욱 영상으로 된 회고록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멕시코 청년들의 희생을 보면서 영화 ‘1987’이 문득 떠올랐다.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걸까? 이런 희생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참 씁쓸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책, 마음사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