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Jae Shin Sep 28. 2021

내 나이도 서른다섯

2021.09.28.

얼마  서재를 정리하다 낡은   권을 집어 들었다. 김연수가 2004년에 펴낸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군대에서 한창 책을 읽던 시기에 부대로 받았으니 2008, 혹은 2009년에  것일 테다. 색이 많이 바랐군, 하고  장을 넘기니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 나이 서른다섯’.


나와 같은 나이의 김연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썼을까. 바닥에 널브러져 제자리가 찾아지기를 기다리는 책들을 잠시 외면한 채 글을 읽었다. 곧 이런 단락이 나왔다.


“이제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산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깊은 밤, 가끔 누워서 창문으로 스며드는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게 불분명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살아온 절반의 인생도 흐릿해질 때가 많다. 하물며 살아갈 인생이란.”


2021년을 맞이하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가? 아닌 것 같다. 외려 김연수가 저 글을 쓴 2004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깊은 밤 노란 전봇대 불빛 아래를 서성이며 “왜 사는 걸까” 심사에 빠졌던 것 같기도. 그 모습을 상상하면 귀엽고 징그럽고 우습다고 할까. 아무튼 낯부끄럽다.


오늘 낮엔 정원에서 미야모토 테루의 산문집 『생의 실루엣』을 읽다가 “나는 그때 서른다섯 살이었다.”라는 문장과 만났다.


서른다섯의 그는 소설 집필을 위한 취재 차 동서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공고하던 때라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한 사내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국경을 통과했다. 당시 경험으로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현실에 생겨나는 현상을 믿게”되었다 한다.


짧은 여행기를 완독한 뒤 책을 덮고 턱걸이를 하면서, 작가들의 시간과 나 같은 보통 사람의 시간은 참 다르구나, 했다. 그러면서도 머지않아 만 9개월을 채울 내 서른다섯을 돌아보았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떠오르는 대로 끄적인다면, 먼저 점심을 거르거나 군것질로 갈음하는 대신 도시락을 싸다니게 되었다. 날이 좋으면 따릉이를 타고 나들이를 떠나는 건 여전하지만. 살이 조금 빠졌고 수염이 약간 옅어졌고 옷을 전보단 깔끔하게 입고 다닌다. 이전의 나라면 상상조차 못할 예쁜 것들로.


제임스와 셰어하던 작업실 ‘각방’을 다른 이에게 넘겼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했다. TV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고, 기계가 개발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로봇청소기랄지, 식기세척기랄지, 건조기랄지, 음식물처리기랄지.


여섯 살 조카가 만든 알록달록 비즈팔찌 대신 시계를 차고 다닌다. 지난주부턴 반지도 낀다. 가족이 두 배로 늘었고 살림은 제곱 이상 늘었다. 물론 부모 더부살이하던 내 살림은 살림이라기도 뭣할만치 빈약했지만 말이다.


잠자리도 바뀌었다. 공간도 침대도 이불도 다 바뀌었다. 그리고 잠을 청할 때면 늘 누군가 옆에 있다. 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이불을 독차지하고, 자신의 오른 다리를 내 왼 다리에 겹치지 않고는 잠에 들지 못하지만, 다행히 나의 수면에 큰 지장은 없다.


써나가다 보니 문득, 서른다섯의 미야모토 테루와 서른다섯의 내가 새로이 믿게 된 게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지금 나를 둘러싼 이 모든 변화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확신이 또 어떤 현상들을 만들어낼까.


두근두근하는 마음만 간직하고, 별다른 각오나 다짐은 하지 말아야지. 서른다섯 김연수가  책에서 “이제 다시는 이런 책을 쓰는 일은 없을 테니까.”라고 했단 사실을 거울삼아.


매거진의 이전글 파도가 부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