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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Aug 23. 2022

직장인으로서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방법

모두가 기다리는 주말, 반복되는 쳇바퀴 구조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2년간 주구장창 입었던 ARMY 활동복


2008년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용산 카투사 한국군 지원단본부(단본부)에서 군 생활을 마치는 마지막 날이었다. 실제로는 2006년 8월 28일에 입대를 했지만 약 2주 정도가 군 생활이 단축되어 광복절에 전역날이었다. 약 2년간 군생활을 마치고 파란 730번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그날이 나는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카투사는 한국군 휴일과 미군 휴일을 동시에 쉬는 Training Holiday(훈련일 휴무일)들이 있어 일석이조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땡 치자마자 막사로 돌아가 일요일 저녁 9시까지 복귀하는 땡보 카투사의 생활을 누릴 뿐만 아니라 가끔 화요일까지 쉬는 날들이 많아 금토일월화, 즉 4박을 집에서 보내는 일들이 허다했다. 꿀 같은 2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전역하는 날, 동기들은 짐을 부랴부랴 싸들고 전역 신고식을 마치자마자 용산 부대를 이른 오후 중에 모두 빠져나갔었다. 자유에 목말라했었던지 모두 쏜살같이 빠져나갔었고 나는 막사로 돌아와 남들이 안 하던 것을 하고 싶었다. 고2 시절이었던 2003년부터 꾸준히 헬스를 했었던지라 전역 날 모두가 다 나가고 비어있는 헬스장에 가면 어떨까 싶어서 헬스복으로 갈아입었던 것이다. 아직도 주변에서 이 얘기를 들으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다. 전역 날 부대 내 헬스장을 간다니..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나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현재 환경을 혹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



단순 이 생각에서 출발했다. 23살인 당시 이 생각을 스스로 했다는 것이 뭔가 대단히 있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해가 어둑어둑해진 뒤에야 6시가 넘어서 헬스를 쾌적하게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부대를 등지고 집을 향했다. 남들과 다른 행보를 취하면 그 순간에 엄청나게 머저리처럼 보일 수 있는데 분명히 시간이 지나고 장기적으로 보게 된다면 나에게 유레카 정도의 깨달음이나 마인드셋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남들과 다르게 취한 일련의 액션들이 내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선택하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대가 나를 쫓아낼 수는 없으니 난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남아 헬스를 하고 유유히 나갈 것이다!'라는 주도권을 말하는 것이겠지.


"근육을 키우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인지 왜 계속하는 것일까?"


본인은 현재 직장인 11년차이며 S기업의 그룹 교육을 담당하는 조직에서 교육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듯 직장인의 무한반복 공식 (월요일 싫어하기>금요일부터 기분 좋아지기>주말 놀기>일요일 밤 아쉬워하기 패턴)에 노출되어 있었고 나 역시 이 공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프로젝트는 빠그러지는게 일상이었고, 성과라고 하기에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일들 투성이었고, 회사의 조직개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진행이 되었고, 타 부서 발령이나 사수를 잘 만난다는 것 등등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내 통제 영역에 들어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있었어도 그렇게 느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심지어 오늘 점심 메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겠지. 금일 이미 지정된 구내식당 메뉴가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다. 쉽게 말하면 어떤 것을 '스스로 원해서 하고자 하는 자유'가 결여되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 조직에 속한 직장인이니까.


자, 이제 나는 직장인의 뜬구름 잡는 한탄의 글이나 아재들의 개똥철학으로 써 내려가지 않기를 정말 바랄 뿐이다. 주도적인 삶을 어떻게 본인 삶에서 '녹여낼 수 있는지' (정말 싫어하는 단어다. 보고서에 피드백을 녹여내다..)에 대한 실천 방법을 공유하고 강구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그간 주도적인 삶을 살았다고 느낀 순간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전역일+광복절 날 부대시설 내 헬스장에서 밤까지 헬스를 하고 온 사람의 조언은 무엇일까? 나한테는 삶에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되어 이야기를 공유하는 바이니 일부라도 적용점을 찾을 수 있다면 글의 요지는 다 전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삶의 주도권이 무엇인지 정의해보자.



삶의 주도권 (쉽게 말해, 여건이나 환경이란 면에서 해석해보자)

1. 내가 감옥에 있거나 병원에 입원하거나 물리적인 환경의 제약이 있지 않는 한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여건

2. 내가 원할 시에 바로 할 수 있는 여건

3. 그 하는 행동들이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 (기분 좋음, 행복을 느낌 등)



삶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원할 시'에,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회사의 주도권은 무엇인가 정의해보자.



회사의 주도권

1. 조직에서 하기 귀찮거나 어려운 일을 나의 고용을 통해 해결하려는 권리 (문제해결이라고 치자)

2.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 시간을 정해놓고 그동안 나를 붙잡아둘 권리

3. 회사의 비전/방향에 맞게 나를 이리저리 옮기며 나의 통제권에 변수를 제공할 수 있는 권리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거나 해석에 따른 워딩 배치 이슈일 수는 있겠지만 회사의 주도권은 어림잡아 위 내용으로 생각된다. 즉, 월급을 주는 대신에 트레이드오프로 업무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 업무에 대한 컨트롤은 사실상 전무하거나 불가능하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통제가 무조건 불가능한 '외부 변수'라고 생각된다. 설령 지금 꿀을 빨고 있는 시기가 오더라도 운이 잠시 좋은 시기에 불과하며 반드시 조직개편, 상사 발령, 직무 변경 등을 통해 현 상황이 짧게는 수개월에서 1년 수준일 뿐이다. 나도 여러 회사에서 꿀을 빨아봤지만 절대 이 '꿀질'은 오래가지 않는다. 만약 본인이 현재 이 '꿀질'이 오래가는 회사와 부서에 있다면 운이 매우 좋은 것이고 축하한다. 회사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반드시 내 삶의 주도권과 상관없이 흘러가게 놓인다.


직장인의 이 혹독한 환경에서 삶의 주도권을 일부라도 잡을 수 있었던 계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단, 하기의 한 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만 고민해 보자. 절대 쉬운 질문이 아니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본인이 바로 할 수 있다는 90% 이상은 이미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속성(Sustainability) 또는 꾸준함(Consistency)이 동반된 본인 작품은 무엇인가?"


본인이 10년 이상 관심이 가졌던 취미를 다시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보자. '골프나 배워볼까?', '하모니카나 배워볼까?', '지인은 꽃꽂이를 시작했던데 꽃을 한 번 배워볼까?' 등 이런 생각들은 접어두었으면 좋겠다. 본인이 성인 나이를 훌쩍 지났고 심지어 n년차 직장인이라면 이미 관심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즉, 관심이 있었더라면 직장에 이른 나이에 시작했었을 것이고, 지금까지 시작을 안 했고 미뤄왔던 것이라면 관심이 크게 없고 설령 시작해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이 호의적이지 않다. 육아를 했던 상황이든, 지방 출장을 2주간 갔든지 간에 '와중에' 내가 계속 관심이 있었던 영역(Domain)이 무엇인지 찾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종이 접기여도 상관없고, 꾸준하게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돌아봐야만 한다.


본인은 영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국 유학을 가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영어 표현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었다. 고1 때 나만의 SAT 영단어 노트를 만들었는데 그때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이 너무 재밌어 남들은 SAT Verbal 시험이 고역이었지만 난 영어 단어나 문장 빈칸 채우기 시험 파트만 나오기를 기다렸었다. 동의어와 반의어 파트가 나오면 어쩜 그렇게 재밌었는지 지금 앉아있는 이 순간에도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영어 단어나 표현의 영역(Domain)에 진입하면 나는 어느새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사람들이 "That is not a good idea" 란 표현을 대부분 쓰려고 했었을 때 나는 "That is unpalatable idea"란 정적인 표현을 떠올려 보려고 했고 (*Unpalatable: distasteful, not pleasant, disagreeable), "But"이란 단순 표현을 쓰려했었을 때 나는 "On the contrary"란 표현을 써보려 했다. 2012년 6월,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했어도 나의 영어 표현 메모장은 지금도 핸드폰에 누적되어 표현들이 더해지고 있다.


한>영으로 넘어갈 때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에 대한 나의 고민은 매번 끝이 없었다


영어 번역 의뢰(한글->영어)도 종종 하게 되는데 한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30분 이상 고민을 했던 적이 매우 많았다. 이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관심이 지대했고', '지금도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를 보며 내가 알지 못하는 기갈나는 영어 표현들이 나오면 난 탄식을 내뱉으며 핸드폰 메모장을 켜며 다시 구간반복 재생을 수 차례 해가며 직접 내가 발성하며 얘기해본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그 표현 구간에서 일시정지를 해놓고 그 표현을 체득화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미드에서 'Right in the breadbasket'이란 표현이 나왔다. '정곡을 찌른다'라는 표현이었는데 이 표현 자체가 내가 그간 몰랐던 표현이라 수 차례 내가 말로 연습해보며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을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표현이 나오면 무조건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서 내 것을 체득화 해야 한다. 훗날은 없다.


어떠한 상황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속성을 가졌던 것이면 좋다. 단, 휘발성 취미라던지 소비성 취미는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명품 쇼핑을 꾸준히 해가며 샤넬백을 잘 콜렉트 해왔다'라던지, '시켜먹는 것을 좋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민을 이용해왔다' 등은 본인의 정량적/정성적인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품이 본인 관심사라면 샤넬백이나 명품 업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팔 정도로 관심이 있는 정도를 얘기한다. 적어도 샤넬에 대한 디자인 철학과 역사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하고, 샤넬 디자이너와 3시간 정도 얘기해도 지치지 않아야 할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가져야만 지식의 '체득화'에 가까울 수 있겠다.


명품, 당연히 좋고 본인도 관심이 많다. 스니커즈에 총 2천만원은 쓴 것 같다. 몇 달 전에 계산해보니 2천 조금 안되었다. 집에 스니커즈만 50켤레가 넘고 드라이빙 슈즈, 부츠까지 포함하면 훨씬 그 이상이다. 다만 스니커즈에 대해 리뷰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 외출 치장용이라면 나의 만족감 외에는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소비성 취미는 지양하는 것이다. 영어 표현의 고급화는 나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뿐만 아니라 번역 업무에서도 더 좋은 표현들을 연구하게 된다. 소비성 취미와 생산성 취미를 반드시 구분해야 된다. 신발을 계속 사재끼는 것은 궁극적인 만족감을 주지 못했고 물질적인 것에 불과하다. 특히, 명품은 신제품이 나올수록 관심도가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고 업데이트를 지속적으로 해줘야 되는 특성을 내포하고 있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밑 빠진 독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발장에 신발이 너무 많아서 방 안으로 들여놔도 부족했고 장롱 안에도 꽉 차 있었다"


꾸준히 본인이 관심을 가졌던 영역(Domain)에 대해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고민을 해보고 그걸 퇴근 후에, 주말에 지속적으로 파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파야 한다'가 아니라 '파게 돼있다'. 본인이 주말에도 떠올릴 만한 영역이라면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매진하게 된다. 그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존재 이유가 될 정도로 물아일체가 되는 영역이 된다. 인기 유튜버들은 돈을 벌려고 하는 유튜버들보다 해당 컨텐츠에 본인이 시간을 안 쏟으면 못 살기(?) 때문에 자동으로 수익화로 귀결된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 쳇바퀴 구조는 생각만 많아지게 된다. 30~40대를 향해 가는 성인이라면 이미 본인의 관심사가 파악되었고, 없다면 애석하게도 아예 없는 것이다. 뭘 해볼까에 대한 호기심도 좋지만 지속성 또는 꾸준함의 허들에서는 넘기가 쉽지 않다. 본인에게 반드시 이 질문을 통해 내가 그간 내 삶에서 자유롭게 호기심을 채우고 노력했던 순간들이 어떤 순간들이었는지, 어떤 것들이었는지 찾아야 한다.


높은 확률로 말하건대, 지금까지 없었다면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 찾을 수는 있겠지만 성인의 학습 의지와 불충분한 여건(회사 생활, 육아 등)의 사유로 10배 이상은 더 노력해야 10년 뒤쯤에 서서히 나타날 것이다. 나도 지금 영어 표현의 메모장을 보며 10년 뒤에는 얼마나 더 리스트가 쌓여있을까 기대된다. 어느 누구도 리스트를 만들라고 시키지 않았으며, 이 것을 통해 수익화에 대한 고민은 1도 안 했다. 강한 집착적인 건전한 취미를 통해 삶의 주도권이나 본인의 관심사를 정리할 수 있다.


"주말이 진정 본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랜 시간은 끌지 말되 본인이 집착했던 영역(Domain)들을 찾아보자. 직장인 삶처럼 제한적인 시간, 제한적인 여건에서 주도권을 찾아내는 것은 본인이 광적으로 미친 본인의 모습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도적인 삶은 별도로 따로 없다. 그런 삶이 별도로 있지 않다. 주도적인 삶은 결국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영역의 발견(Exploration)에서 오로지 출발한다. 가장 본인이 몰입할 수 있었던 여건들을 떠올려야 한다.


주도권이란 내가 나를 놓아버리고 몰입했던 순간이며, 심지어 몰입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여야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주도권을 찾는 것은 이 여정의 최종 도착지가 아니라, 내가 직장인이든 백수든 프리랜서든 상관없이 내가 내 삶을 적어도 조금이라도 컨트롤해보고자 하는 열망의 표식이다.



"내 삶의 주도권이란 내가 살아있는 한 생애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상징이자, 표식이자,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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