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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02. 2022

Memento Mori

2022년 사순절을 시작하며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재의 수요일, 미사 중 사제는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어주며 이렇게 외친다. 창조주가 사람이 되어 수난을 당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묵상하는 40일간의 기간인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프란치스코 델 루시 '카밀루스의 생애'

다신교 국가였던 로마시대에 사두마차(Quadriga)는 사람이 아닌 신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자 승리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이 탄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태양의 신인 아폴론도 사두마차를 끌고 하늘을 누비는 것으로 그려졌다. 백마 네 마리가 끄는 사두마차에 사람이 오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예로 외적의 침략에서 로마를 구한 군대의 지휘관이 로마로 개선할 때나 탈 수 있는 영광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개선장군이 오른 마차에 가장 비천한 노예가 함께 타고 개선했고 그 노예는 환호성 속에서 손을 흔드는 장군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외쳐댔다고 한다. 


"Memento Mori! Memento Mori!"

볼쇼이 극장 입구의 사두마차에 몸을 실은 아폴론상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인 Memento Mori.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말라, 너도 인간이며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라는 뜻으로 외치는 이 말로 자칫 승리에 취한 이의 교만을 경계하고 인간으로써의 겸손을 강조하던 외침이었던 것.


마침 2022년의 사순절을 앞두고 강대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애초 개전과 동시에 엄청난 군사력으로 승리를 점하고자 했던 러시아의 바램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 처음의 자만심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전쟁이라는 절대악에서 Memento Mori를 떠올리게 되는 것, 어쩌면 올해 사순절의 초입에서 새삼스레 주어지는 교훈이 아닐까.


모쪼록, 더 많은 피를 뿌리는 비극없이 이 전쟁이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창세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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